▲쉬라즈에 있는 사디의 무덤에서 큰 애. 이곳에서도 적극적으로 나서서 영어를 할 줄 아는 이란인에게 사디에 대해서 질문도 하고 나름대로 대화를 시도했었다.
김은주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계산서를 받고 또 대화가 필요한 상황에 놓였습니다. 우린 당연히 샐러드는 공짜고 스파게티와 리조또 값만 쳐서 10불 정도를 예상했는데 음식 값이 우리가 예상한 돈의 배 이상이 나왔습니다. 물론 배부르게 맛있게 먹었으니 이 정도 가격도 비싸다고는 할 수 없지만 분명 처음에 본 메뉴판 가격하고 다르기에 왜 이렇게 나왔는지 아이들과 머리를 맞대고 궁리했습니다.
문제는 샐러드에 있었습니다. 샐러드를 당연히 공짜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샐러드 값을 사람 숫자대로 받는 것인지 아니면 빈 접시 수를 보고 가격을 책정하는 것인지를 짚고 넘어가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이 집이 너무 맛있기 때문에 우린 이스파한에 머무는 동안은 이 집에서 매일 저녁을 먹을 생각인데 그걸 정확하게 알고 있으면 돈을 절약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선희는 우리가 궁금해 하는 사항을 영어로 적었습니다. 그래서 어렵게 샐러드에 대한 가격 책정에 대해 질문했고, 영어 잘 하는 웨이터는 샐러드가 사람 숫자에 따라서 가격이 매겨진다고 성실하게 답해주었습니다.
선희는 자신의 영어 실력으로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한 것을 무척 자랑스럽게 생각했고, 그래서 하늘로 튀어오를 만큼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물론 영어에 대한 흥미도 부쩍 늘었고요. 이때부터 선희는 영어를 쓰려고 애를 썼던 것 같습니다.
영어를 자신이 갖고 있는 능력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엄마와 동생은 자신에 비해 영어실력이 한참 뒤떨어지니까 엄마와 동생 앞에서 잘난 척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영어를 이용하는 것이었지요. 사실 따지고 보면 그다지 뛰어난 영어실력은 아니지만 어쨌든 다른 두 명 보다는 나으니까 영어로 자신의 존재감을 보여주려고 애썼던 것입니다.
이렇게 선희는 영어로 인해 자신감을 회복하고 또 여행의 즐거움을 찾았습니다. 그래서 이후부터는 그간 소심하게 뒤로 물러 서있던 태도를 버리고 앞으로 나서서 영어를 쓸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면서 영어를 쓰려고 했습니다.
나중에 키쉬섬에서는 놀라울 정도의 일을 해냈습니다. 우리가 묵은 호텔에서는 해변을 달릴 수 있게끔 자전거를 빌려주었는데, 우린 호텔에서 낡은 자전거를 2천 원에 빌렸는데 해변에서는 새 자전거를 1500원에 빌려주고 있었습니다.
호텔에서 우리에게 바가지를 씌웠다고 생각했지만 영어가 안 되니 그냥 포기하려고 했는데 선희가 자기가 한 번 나서서 비싸다고 말하겠다고 했습니다. 좀 뜻밖이었습니다. 사실 선희는 식당에서 반찬 한 가지 더 얻어오라고 해도 쭈뼛거릴 정도로 소심한 아이인데 이런 상황에서 나서는 건 정말 의외였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영어실력을 뽐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판단했는지 기꺼이 나섰습니다. 선희는 자신이 하고픈 말을 영어로 열심히 연습하더니 정말 호텔 프런트에서 매니저에게 자기 의견을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직원은 빙그레 웃으며 순순히 값을 깎아 주었습니다. 사실 얼마 안 되는 돈을 이익 본 거지만 선희는 일확천금이라도 얻은 것처럼 행복해했습니다. 이렇게 영어는 선희에게 많은 즐거움을 주었습니다.
여행을 하다가 터미널이나 식당 등지에서 가끔 영어를 쓰는 이란인을 만나면 볼까지 빨갛게 된 채 자신이 쓸 수 있는 영어를 다 쏟아내면서 영어를 사용할 수 있는 현재를 즐겼고, 그게 선희가 여행을 즐기는 방식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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