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서 2분쯤, 아니 1분쯤 걸어나가면 옆골목으로 나무전봇대 있는 길이 나오고, 나무전봇대를 사이에 두고 계단과 꽃그릇이 사이좋게 어우러져 있습니다.
최종규
동네에 있는 인성학교 아이들이 골목을 재잘거리며 걷습니다. 지난날 일본사람이 살던 으리으리한 집자리 울타리에 소담스러운 장미가 활짝 피어 있습니다. 나즈막한 골목집 옥상에 꽤 널찍하게 텃밭이 이루어져 있습니다. 옥상텃밭에 배추포기가 벌어져 있고, 벌어진 배추포기 한복판에는 배추꽃이 앙증맞게 피어나 있습니다.
우리는 어느덧 중국사람거리로 들어섭니다. 해안동성당 앞에 닿습니다. 성당 안쪽으로 들어가 볼 수 있나 했지만, 문은 굳게 닫혀 있습니다. 조그마한 해안동성당에서도 날마다 미사가 있기는 하지만, 오늘은 아침 열 시에만 한 번 있다고 적혀 있습니다. 집에서 여기까지 생각보다 멀다고 느끼는 사이, 아이는 조용히 잠듭니다. 발걸음을 조금 더 늦추며 천천히 걷습니다. 우리는 우리 새 집이 깃든 내동에서 송학동3가를 거쳐 송학동2가를 지났고, 북성동2가와 선린동을 지나 중앙동1가와 중앙동2가를 지났습니다. 중앙동2가에는 조선일보사 지국이 있는데, 이 건물은 창문과 대문을 빼놓고 온통 담쟁이에 뒤덮여 있습니다. 신문사 나무간판은 이곳이 꽤 오래된 곳임을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신문사지국 건너편에 있는 술집 '民'이라는 곳을 살짝 넘겨다보고 지나갑니다. 술집 안쪽에서 나이 지긋한 아저씨가 나오더니 우리한테 손짓을 합니다. '누구지?' 하고 생각하며 가까이 다가서고 보니, 인천에서 사진찍는 아저씨입니다. 《청관》 《바다 사진관》 《수복호 사람들》 같은 사진책을 낸 김보섭 아저씨입니다. 아저씨는 오래도록 이 동네에서 사진을 찍어 오고 있는데, 하루일을 마치고 저녁 여섯 시부터 여덟 시쯤까지 술집 민에 들러 술 한 잔을 비우며 몸을 쉰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