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짐(1997년)/푸른 시간의 흰빛(1997년)
민병일
시골 태생이라면 누구나 부엌이나 주방보다는 '정지'라는 말을, 가마솥 가득 메주콩 삶아 만들던 날의 달짝지근한 냄새와 펄펄 끓는 아랫목을 추억하리라. 푹 퍼지게 잘 삶아진 콩이 이제 갈 곳은 어디? 이 콩들은 메주가 되고 된장이 되어 도회지 어린 손주에게까지 갈테지. 참 많은 것들이 오염 되어버린 오늘날, 어머니의 먹을거리들이 가장 진실하다는 것을!
접시하나, 대접 하나 참 귀하던 시절 시골 동네에 그릇을 가득 실은 트럭이 오곤 했다. 트럭이 동네에 도착, 온 동네를 떠들썩하게 할 마이크도 꺼내기 전 마을의 아녀자들과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그리하여 필요한 그릇들을 사곤 했는데 몇 달에 한번씩 오는 이 트럭에서 그릇을 고르는 엄마의 얼굴이 참 진지하고 행복했었다.
선이 잘못 그어졌거나, 그릇이 거칠거나 등 아주 조금씩의 하자가 있어서 도시의 그릇 전에서는 팔 수 없는 것들이라 값싸고 볼품없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순정한 시골 아낙네인 어머니는 진지하게 고른 이 그릇들을 윗목 찬장에 모셔두고 명절이나 곗날 등 많은 손님이 오는 특별한 날들에만 썼다. 그것도 이가 나갈까 아주 조심스럽게.
이제 이런 그릇들은 시골에 가도 쉽게 볼 수 없다. 이처럼 투박하고 무거운 그릇들 대신 얇고 매끈한 도자기 그릇들과 여러모로 쓰기 편한 플라스틱 용기들을 대부분 쓰기 때문이다. 이 사진을 보며 처음으로 생각했다. 이 투박한 그릇들이 옛 농촌 사람들을 닮았다는 걸. 그런데 아쉽다. 젊은 사람들이 거의 없는 우리의 농촌이 사과 궤짝에 버려진 그릇들 같아서.
작가는 이 사진 제목을 '거대한 짐(1997년)'이라고 붙였다. 먹고 사는 일은 언제나 우리들의 가장 큰 짐이다. 정말이지 먹고 산다는 것은 크고 무거운 짐이다. 때문에 이런 제목을 붙였나 보다. 이 사진을 보면서 내 어린 시절 그릇 트럭이 올 때마다 가장 진지하고 행복한 모습으로 그릇을 고르던 젊은 날의 어머니와 동네 어르신들의 젊은 날들이 떠올랐다.
사진들은 <토지>라는 소설이 세간에 널리 알려지고, 드라마로 더욱 더 유명해지고, 이 유명한 소설의 배경이라는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찾으면서 사라진 모습들이다. 나쁘게 표현하면 개발과 발전이란 명목으로 우리들이 버린 모습이요, 빼앗긴 모습이랄 수 있다.
작가가 이 사진들을 찍은 것은 1993년~1998년이다. 이후 평사리에는 소설 속 최참판댁과 분이네, 용이네 등이 들어섰다. 최참판댁에 하동 평사리 문학관도 들어섰다. 이렇게 발전한 평사리를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는다. 그곳읋 다녀온 사람들 입을 빌리면 '한 집 건너 한 집 꼴'로 가게가 들어섰단다.
평사리가 짧은 시간동안 얼마나 많이 변해버렸는지 저자는 "…그리고 2007년 봄 십 여 년 만에 다시 찾은 이 작은 마을에서 길을 잃었다. 내가 기억하는 흙길은 지워지고 길 위에 또 다른 길이 포장되고 건물이 섰다"고 저자는 말한다.
"사라지는 삶의 문화에서 사라지지 않는 삶의 인정을 가슴 가득 느끼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