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해 명칭에 관한 홍보자료이런 작은 도시의 대학교에까지 잊지 않고 자료를 보내주는 일본 정부가 대단합니다. 동해에 관한 자료는 있냐고요? 보내줄 자료가 있기는 할까요?
서진석
어쨌든 이 행사를 하겠다고 마음 먹고 추진한 후부터 저는 이 끝이 없는 생고생의 모래 지옥으로 거침 없이 발을 밀어넣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제가 해결해야하는 문제가 한 두 개가 아니었던 것이죠. 그 중에 하나를 소개해 드리지요.
구 유고 연방인 마케도니아의 학생인 경우에는 유럽연합 회원국민이 아닌 관계로 비자를 받아야만 입국이 가능하고, 제가 추진하는 강습회 이름으로 초청장을 보내주어야 그 학생이 참가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많더군요. 일단 제가 일하는 아시아지역학과 (사실 아직은 일본학과라고 불립니다)의 학과장은 일본으로 출장 중이라 6월 말에 돌아오고 그외 다른 대학교 간부들도 많이들 자리를 비운 상태더군요. 말하자면 그 서류에 서명을 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결국 두 시간에 할 일을 이틀 걸려...리투아니아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것 몇 가지를 들라면 바로 유럽 최강의 농구, 방송에 나와 강호동을 번쩍 들어올렸던 '스트롱맨' 사비츠카스(많이들 사빅카스라고 알고 있죠), 그리고 엄청난 관료주의입니다. 이 나라에서 무엇을 처리하려고 하면, '어떻게 하면 할 수 있습니다'라는 말보다 '이것이 왜 안됩니다'라는 설명을 듣는 일이 더 많을 정도입니다.
학교 직원들에게 도움을 청해도 어디에 가서 누구를 찾고 어디에 가서 누구를 만나고 고질적인 동유럽 스타일의 똥개훈련을 요구하곤 했습니다. 그런 쓰잘데기 없는 똥개훈련에 적응할 준비를 하고 들어왔으니, 저는 웬만큼 참고 일을 하려니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러나 그 가엾은 똥개는, 가는 곳마다 다른 곳으로 가라는 말만 들을 뿐 문제 해결의 기미는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자리를 비웠으니 대신 할 사람은 없고, 그래서 다른 곳에 가보면 그 사람은 안되고…. 그래서 그 마케도니아 학생에게 보낼 초청장은 거의 이틀 동안을 여러 사람들의 손에서 왔다갔다 했습니다.
그러다가 끝내 그 문제를 해결해줄 만한 사람한테 가게 되었죠. 여러 사람의 의견을 종합해 본 결과, 국제협력업무를 담당하는 한 직원이 모든 사람을 대신해서 제 문서에 서명을 해줄 거라는 결론에 이른 겁니다(어찌보면 아주 당연한 것 같지만, 업무분담이 지나치게 많이 되어 있다 보니 국제협력업무과에서 국제협력업무를 담당할 거라는 상식이 통하지 않을 때도 있거든요).
그래서 저는 이 지긋지긋한 똥개 훈련을 어서 끝내고 마케도니아로 그 망할 놈의 서류를 보낼 생각에 그 담당자를 찾아갔지요. 그 여직원은 저의 이야기를 듣더니 단번에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당신이 직접 서명하면 되겠네요."
"뭐라구요?"
"아니 강습회 추진하시는 분이 당신인데, 왜 서명을 못 한다고 생각하셨어요?"
"아닌게 아니라 저도 여러 사람들한테 물어보긴 했는데, 다들 여기 저기로 가라는 말 뿐이고…. 제가 할 수 있지 않느냐고 물어보긴 했어도 다들 높은 사람만 찾아가라고 했거든요."
"걱정말고 그냥 그 초청장에 서명해서 가지고 오시면 저희가 공증을 해드릴게요."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는데, 여기저기 굴러다니면서 쓸데없이 힘과 시간을 낭비해야했던 것입니다. 몇 시간 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었는데 이놈의 몹쓸 관료주의는 이틀이나 시간을 낭비하게 만들었습니다. 정말 파랑새는 가까운 곳에 있다더니….
한국과 중국이 헷갈리는 세관원들한국의 어느 단체에서는 이번 강습회에 쓰라고 사물악기와 풍물복을 사서 보내주었습니다. 그런데 리투아니아 세관은 그 사물악기를 붙들어 놓고는 엄청난 양의 서류와 관세를 요구하더군요. 비싼 물건이기도 하지만, 저희 학교 행사를 위해서 구입해 준 그 단체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더 가슴이 아팠습니다. 물론 값비싼 물건이라서 통관에 어려움이 많겠지만, 세관에서 온 공문서에 적혀있는 내용이 정말 제 창자를 뒤집어 엎고 말았습니다 .
'중국에서 4개의 소포가 배달되어왔습니다. 내용물과 가격 등을 증명할 수 있는 증빙서류를 지참하여 관세청으로 전달해주시기 바랍니다.'관료주의가 하늘을 찌르는 이 나라의 세관원들은 중국과 한국조차도 구분을 못하는 모양인가 봅니다. 한국 물건이었다는 것을 알았으면, 그 악기들이 세관에 걸렸을까, 중국과 한국을 제대로 구분하는 똘똘한 세관원이었다면 나를 이렇게 쓸데 없이 고생시키지는 않지 않을까. 과연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악기를 받는데 도움이 되기는 하는 것일까. 정말 관료주의 신도들에 의해서 또 시간만 버리는 것은 아닐까. 여러 가지 생각들이 일처리를 더욱 더디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