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보수 눈엔 미국·영국도 좌파국가
오바마식 '함께 성장하기' 진보 승부수"

[대담] 홍종학-최재천 '성장친화적 진보 정책'을 논하다

등록 2009.06.10 18:13수정 2009.06.10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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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장친화형 진보>를 번역한 홍종학 경원대 경제학과 교수(오른쪽)가 9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스튜디오에서 최재천 전 민주당 의원과 함께 '진보, 성장을 말하다'를 주제로 대담회를 하고 있다.
<성장친화형 진보>를 번역한 홍종학 경원대 경제학과 교수(오른쪽)가 9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스튜디오에서 최재천 전 민주당 의원과 함께 '진보, 성장을 말하다'를 주제로 대담회를 하고 있다.유성호

오바마노믹스와 엠비노믹스.

유례없는 글로벌 경제 위기라는 상황은 같은데 해법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민주당의 오바마가 대통령이 된 미국에서는 부유층과 기업에서 더 많은 세금을 걷어 빈곤층 세금을 깎아주고 중산층 이하 계층에게는 교육혜택과 건강보험을 확대하기로 했다.

오바마노믹스를 설계한 이는 클린턴 행정부 시절 백악관 경제보좌관이자 현재 오바마 경제팀의 재무장관 티모시 가이트너의 고문인 진 스펄링이다. 스펄링은 1992년부터 8년 동안 백악관에서 클린턴의 경제정책을 보좌했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2005년 <성장친화형 진보>(Pro-Growth Progressive)를 썼다.

오바마노믹스의 근간을 이루는 부유층에 대한 증세와 저소득층에 대한 교육지원 확대 및 의료지원 확대는 모두 <성장친화형 진보>에서 제시된 정책들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다. 물론 책 제목에서 잘 드러나듯이 스펄링은 이들 정책이 분배만을 확대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함께 성장하기' 위한 정책이라고 말한다.

반면 한나라당의 이명박 대통령이 집권한 대한민국은 정반대로 가고 있다. 부유층과 기업의 세금을 대폭 깎아주고 규제를 완화하는 한편 대운하와 같은 토건개발을 통한 성장전략을 밀어붙이고 있다.

과연 세계화 시대에 한국의 진보 진영은 어떤 대안을 가지고 엠비노믹스와 맞대결을 펼쳐야 하는 것일까. <성장친화형 진보>를 번역해 국내에 소개한 홍종학 경원대 경제학과 교수는 "진보가 성장에 대한 수세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지난 88년 이래 지속적으로 하강하고 있는 경제성장률 추세를 바꿀 수 있는 정책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 교수는 9일 오후 4시 <오마이TV>로 생중계된, 최재천 변호사(전 국회의원)와 나눈 대담에서 "지금 보수 정권이 빌딩을 짓고 강을 정비하겠다고 하는데 그런 정책으로 이 추세를 바꿀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우리 진보진영도 이 추세를 바꿀 수 있는 정책을 내놓고 보수와 경쟁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스펄링이 진보진영이 추구해야 할 정책으로써 제시한 생산성 높은 고급 인재를 길러내는 교육정책, 의료와 사회보장, 저축 지원과 같이 국민의 소득을 높여주는 복지정책 등 '성장친화형 진보 정책'은 이 땅의 진보진영에게도 유의미한 것일까.

홍종학 교수와 최재천 변호사의 대담에서 답을 찾아보자.


"경제발전사상 진보 집권시 성장률 결코 낮지 않아"

 최재천 전 민주당 의원
최재천 전 민주당 의원 유성호
최재천(이하 최) : 책 소개를 먼저 해달라.

홍종학(이하 홍) : '성장친화형 진보', 제목에서 내용이 다 드러나는 것 같다. 특히 부제가 '함께 번영하는 경제전략'인데 이게 더 중요하다. 저자인 진 스펄링이 클린턴 행정부시절 경제보좌관이어서 이 책에는 구체적인 경제정책들이 나온다. 세계화가 빠르게 진전되고 지식정보화 사회에서 진보가 추구해야할 경제정책이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해 알기 쉽게 정리한 책이다.

: 저도 이 책 나오자마자 읽었고 서평도 썼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 진보와 성장에 대한 담론은 무성했지만 구체적인 정책이 제시된 것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 이 책에 제시된 정책들은 지난 클린턴 행정부 시절 8년 동안 실험을 거친 것이다. 저자가 꾀돌이처럼 아이디어를 내서 현실 속에서 정책을 추진했고 임기가 끝난 후에는 부족했던 부분들에 대해서 연구해 2005년에 출간한 책이다. 미국의 헌책방에서 우연히 발견했는데 흥분이 되더라.

: 이런 점을 보면 미국이 좀 부럽다. 정책파트에 몸담았다가 연구소나 학계로 돌아온 학자들이 내놓는 대안을 보면 대단히 구체적이다.

: 분명 본받아야할 필요가 있다. 행정부에서 일하다가 연구소에서 정책을 개발하고 이번에 오바마가 당선되면서 이 연구결과들을 보고 토론했다. 그런 과정을 거쳐 추진할 정책들이 결정되고 바로 실천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시행착오가 적다.

: 맞다. 오바마 대통령의 책 <담대한 희망>을 봐도 대단히 구체적인 정책이 나온다. 이는 공화당 쪽도 마찬가지다. 서문에 이 책을 번역한 의미에 대해 "보수의 칼을 들고 보수가 점령하고 있는 진영에 들어가 승부를 결정짓는 정면돌파"라고 썼는데 어떤 의미인가.

: 보수 철학의 핵심은 '기회의 평등'이다. 이 책은 그동안 보수가 정말 기회의 평등을 보장하는 정책을 펴왔느냐를 분석한 것이다. 그리고 진보야 말로 기회의 평등을 확대하기 위한 정책을 폈고 이를 통해 파이를 키우고 분배도 균등하게 하는 정책을 펴왔고 성공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미국은 물론 어느 나라의 역사를 보든지 진보가 집권했을 때 성장률이 뒤지지 않았다. 오히려 보수가 집권했을 때 경제위기가 발생하는 경제 상황이 악화되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나라도 보수는 기회의 평등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부자들이 좋은 고등학교, 대학교 나와서 더 부자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가난한 아이들도 좋은 대학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균등입학제를 보수들은 반대한다. 그래서 진보도 수세적인 자세에서 벗어나서 누가 더 성장과 분배, 기회의 평등 보장에 있어서 잘하고 있는지 따져보자는 것이다.

"성장전략으로 두바이 언급하는 우리나라, 너무 안타까워"

: 일반적으로 진보는 성장에 무관심하다는 편견이 있는데.

: 표를 하나 준비해 왔다. 1971년부터 2006년까지 국내총생산 증가율이다. 1986년에서 1988년까지 우리나라 경제의 최전성기였다. 그 후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추세 자체가 계속 하강하고 있는 것이다. 이 추세를 바꿀 수 있는 전략에 대해 진보와 보수 모두 답을 내놔야 한다. 그런데 답이 나오지 않고 있다. 진보 학자들이 여기서 절박감을 느끼고 있다. 이 추세를 못 돌리면 우리 경제 자체가 무너지는 것이다. 지금 보수 정권이 빌딩을 짓고 강을 정비하겠다고 하는데 그런 정책으로 이 추세를 바꿀 수 있을지 의문이다. 진보도 이 추세를 바꿀 수 있는 정책을 내놓고 경쟁해야 한다.

 홍종학 경원대 경제학과 교수는 1986년에서 1988년 이후 우리 경제가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며 추세를 바꿀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홍종학 경원대 경제학과 교수는 1986년에서 1988년 이후 우리 경제가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며 추세를 바꿀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유성호

: 보수도 하강하는 경제성장의 추세를 돌릴 정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원인은 뭐라고 보는가.

: 미국에서 중국의 기술 수준이 과연 미국을 앞질렀느냐에 대한 논란이 있다. 어느 조사에서는 중국이 앞섰다는 결과도 나오고 또 아직 멀었다는 통계들도 있다. 하지만 다들 동의하고 있는 것이 중국이 미국의 기술 수준을 뛰어넘을 날이 멀지 않았다는 점이다. 현재 우리 대기업들은 중국이라는 넓은 시장이 옆에 있어서 좋다는 입장이지만 전기를 마련하지 못하면 중소기업이나 저임금 산업 뿐 아니라 대기업들도 곧 중국에 따라잡힐 날이 멀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이는 우리 경제 발전사상 처음 겪는 일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미국, 일본 등을 쫓아가기만 했는데 중국이 우리를 바짝 추격하고 있다.

유럽과 미국은 이런 추격을 당해본 경험이 있다. 그래서 마련한 경제 전략이 신자유주의였다. 레이건이나 대처 입장에서는 제조업을 후발국가에 빼앗기니까 규제 완화와 금융 산업을 강화해서 전 세계로 진출했는데 이제는 이 전략이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 증명됐다. 그리고 가장 안타까운 게 우리나라가 성장전략으로 두바이를 언급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누가 두바이를 이야기하나. 그래서 우리나라는 아직도 성장하기 위해 강을 파고 100층 빌딩을 올리는 등의 전략밖에 나온 게 없다. 이 책이 우리 사회에 의미가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 책을 보면서 들었던 우려는 진보가 성장을 이야기하게 되면 보수 쪽에서 드디어 진보도 성장이라는 보수의 패러다임에 투항했다고 할 수 있겠다는 점이었다. 그런 위험성은 없나.

: 물론 있다. 하지만 지난 20년간의 성장 전략은 분명 잘못됐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지난 20년의 성장 모형은 '박정희식 개발독재'를 그대로 지속했던 것에 불과했다. 결국 경제 성장 추세도 떨어지고 양극화까지 발생했다. 미국에서는 이미 양극화를 해결하지 못하면 성장도 당성하지 못한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성장과 분배에 대한 이분법에 빠져있고 진보가 성장을 이야기하면 보수에게 투항했다는 이야기가 나오니까 정말 답답하다.

: 우리나라 보수들은 관치를 시장경제로 착각하고 있다. 관치와 재벌 중심 성장이 가장 합리적인 정책이라고 보는 현실이 안타깝다.

: 함께 번영할 것인가, 따로 망할 것인가, 이걸 생각해야 한다. 중국의 성장을 보면서 대기업들은 생산성이 낮은 중소기업 쪽만 문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아닐 것이다. 부품 기업들이 모두 중국으로 넘어가게 되면 중국 기업이 우위를 갖게 될 것이다. 그러면 우리 대기업들도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중국과 저임금 경쟁? 고기술 산업으로 재편해야"

: 이 책에서 신자유주의와 관련해서 가장 논란이 되는 세계화도 다루고 있다. 이 책에서는 어떤 입장인가.

: 우리나라는 작은 경제다. 그리고 세계화의 추세를 우리가 바꾸거나 속도를 조절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우리 경쟁 상대는 중국인데 더 이상 중국과 거래하지 않겠다고 할 수 없다. 중국과 무역마찰 생겨도 우리가 큰소리 낼 수 없는 입장이다. 세계화는 계속 확장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에게 중국이 커다란 시장일 수도 아니면 우리 경제를 삼켜버리는 괴물이 될 수도 있다.

커다란 시장이 되려면 우리가 중국과 경쟁을 피할 수 있는 고부가가치 고기술 산업으로 올라가야 한다. 우리 노동자 생산성이 중국 노동자들의 10배 이상이 돼야 한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큰 시장을 맘대로 향유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때문에 산업을 재편하고 노동자의 생산성을 높이는 것은 국가의 성장전략이 담당해야할 몫이다. 미국은 세계화는 특정 분야, 소수에게 피해를 끼치기 때문에 이들에게 그 피해를 다 전가하면 세계화에 대한 저항이 강해지고 국가의 성장동력이 줄어든다고 봤다. 그래서 경쟁력이 떨어지는 분야에 대해서는 이미 10년 전부터 집중 투자해서 경쟁력을 높이는 데 주력했다.

: 전통적으로 성장론자들은 적하효과(트리클 다운)를 내세운다. 아랫목이 따뜻해지면 윗목도 따뜻해진다는 것인데 특히 우리 나라에는 경쟁만이 살 길이고 이긴 사람들이 모든 것을 갖는 게 맞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많을 것 같다. 이 책은 성장의 열매를 함께 나눠 갖자는 입장인데 이 책이 전통적인 성장론자들을 설득할 수 있을까.(웃음)

: 설득 돼야죠.(웃음) 안되면 정말 심각해 질 수 있다. 세계화 시대, 지식정보 사회에서는 더 이상 적하효과가 없다. 그래서 과거의 불균형 성장전략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 예전에는 대기업이 잘되면 중소기업이 혜택 받고 내수가 살아나는 선순환이 됐는데 지식정보화 사회에서는 그 선순환이 끊어졌다. 계속 과거의 전략을 고집하면 쇠퇴할 수밖에 없다. 그게 답답해서 이 책을 번역한 것이다.(웃음)

 최재천 전 민주당 의원이 9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스튜디오에서 <성장친화형 진보>를 번역한 홍종학 경원대 경제학과 교수와 함께 '진보, 성장을 말하다'를 주제로 대담하고 있다.
최재천 전 민주당 의원이 9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스튜디오에서 <성장친화형 진보>를 번역한 홍종학 경원대 경제학과 교수와 함께 '진보, 성장을 말하다'를 주제로 대담하고 있다.유성호

: 궁극적으로 이 책의 근본 목적은 보수 진영에 대한 문제제기로 읽힌다. 보수는 제대로 된 성장전략을 구사해본 적이 없다. 다시 말해 시장경제를 해본 적이 없다. 관치만 했고 독점경쟁을 했고 정경유착을 했을 뿐이다. 이 책이 교훈이 됐으면 좋겠다. 화제를 돌려 노동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이 책에서는 노동시장에 대해서는 어떤 대안을 말하고 있나.

: 중요한 것이 덴마크의 '유연안전성'이다. 세계화 시대 경쟁력이 유연성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근데 한 가지 주의해야할 것이 이게 한국에서 말하는 유연성과는 전혀 다르다는 점이다. 우리는 정리해고 해고의 유연성만 이야기하는데 경제학계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그게 아니다. 직장을 자유롭게 옮기거나 여러 직장에서 일하거나 저숙련 노동자가 고숙련 노동자가 되는 그런 유연성이다. 박지성을 멀티플레이어라고 하는데 그처럼 다기능 노동자들을 만드는 것도 포함된다.

여기에는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기업이 해고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노동자들이 직장을 나와서 대책이 없는 상황이라면 남는 것은 투쟁을 통해 살아남는 것이다. 그래서 사회적으로 큰 비용을 치르게 된다. 만약 정부가 해고가 되더라도 어느정도 임금도 보전해주고 재교육을 지원해서 새 직장을 찾게끔 지원하겠다고 한다면 누가 보더라도 새로운 길을 찾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유연성은 거기에서 나온다. 사양 산업에서 잘 되는 산업으로 노동력을 옮겨가게 하는 구조조정을 복지정책으로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해고의 유연성만 이야기하고 있다.

"노동자 생산성 높이는 재교육 정책 없이는 성장 힘들어"

: 이 책은 교육, 의료, 출산, 건강 등에 대한 지원도 노동의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는 점이 신선했다. 예를 들어 방과후 학교를 우리는 교육정책으로 보는데 미국에서는 학부모의 노동생산성을 높이는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이다.

: 예전에는 미국도 기업에 맡겼다. 미국 대기업들이 회사 분위기를 공원처럼 하거나 직장 안에 보육시설을 만들어 노동자들의 생산성을 높이는 데 성공했다. 저자는 대기업에서 성공한 사례를 중소기업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다만 대기업보다 여력이 없으니 정부가 지원해 줄 수 있다고 봤다. 특히 지식정보사회에서는 여성 노동력이 경쟁력이 높고 중요하다. 그래서 정부는 여성이 맘 놓고 일할 수 있게 해야하는데 우리나라는 출산하면 직장을 다니기 힘들고 불이익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성장친화적 진보라고 말하지 않더라도 정치인들이 이런 정책들을 마련하면 표를 얻는 데도 도움이 될 텐데. 진보정당들이 이런 것들을 추구해야하는 것 아닌가.

: 이 책에서는 취학전 교육 지원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면서 대단히 구체적으로 접근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취학전 교육 지원을 받은 아이가 나중에 커서 연봉을 얼마나 더 받는지를 제시하고, 교육 지원이 범죄 접근성을 낮춰서 나중에 이 아이가 교도소에 갈 경우와 비교했을 때 2000달러를 절약할 수 있다는 등, 정책 효과를 수치로 제시하고 있다. 공약을 만들 때 이런 점들은 우리 진보정당들이 배워야 한다.

: 미국은 부자 부모를 둔 아이와 가난한 부모를 둔 아이들이 과연 동등한 기회를 갖게 되느냐에 대해 진보와 보수가 함께 연구했다. 그래서 함께 논쟁하고 이대로 가다가는 큰일 나겠다, 저소득층 자녀들의 교육기회와 각자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국가가 마련해 줘야겠다는 공감대가 생긴 것이다. 우리도 이런 식으로 논의를 한다면 진보와 보수 사이에 공감대를 형성하기가 쉬울 것이다.

: 저도 그게 답답하다. 우리 사회에서는 이런 이야기를 하면 '너 사회주의자지' 이런다. 영국은 아동신탁기금을 만들어 새로 태어난 아이들에게 400~800달러까지 계좌를 만들어 준다. 미국은 1000달러를 주는 제도를 도입하자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국가가 아이들에게 400달러씩 주자고 하면 '사회주의자 아니냐'고 할 것이다. 이런 인식들이 어떻게 바뀔 수 있을까.

 홍종학 경원대 경제학과 교수
홍종학 경원대 경제학과 교수 유성호
: 그게 한국 보수의 후진성이다. 그런 프레임으로 보면 미국과 영국이 모두 좌파국가다.(웃음) 또 전 세계에 좌파 국가 아닌 곳이 없게 된다. 영국과 미국이 시장만능주의라서 복지에는 전혀 신경 안쓰는 나라라는 인식은 잘못이다. 영국과 미국보다 한국이 복지에 있어서 더 후진적이고 비효율적이다. 이는 경제성장률이 자꾸 떨어지는 것과도 연관이 있다.

이 책에도 잠깐 나오지만 미국은 대학생들에게 대학등록금을 대출해 주고 나중에 졸업한 후 갚게 했다. 하지만 문제는 대학생들이 졸업하자마자 모두 다 신용불량자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정책을 바꿨다. 대학에서 정상적으로 공부를 했는데도 직장을 잡지 못한 것은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 국가의 책임이므로 취직을 하지 못할 경우 대출금을 갚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논의되는 수준이 이 정도다.

: 미국은 경제 위기 속에서도 최저임금을 2011년까지 올리겠다고 했다. 만약 우리가 최저임금을 올리겠다고 하면 기업들 다 죽인다는 이야기가 나올 것이다. 특히 한나라당은 아예 지역별로 최저임금을 차등화하겠다고 하고 있다.

: 임금을 낮춘다고 해서 우리 임금을 중국 수준으로 낮출 수 있을까. 중국과 임금으로 경쟁하려면 지금의 5분의 1수준으로 낮춰야한다. 그건 경제를 죽이겠다는 것이다. 그런식으로 접근하면 비정규직 500만 생산성 높일 기회 박탈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결국 우리 노동자들이 임금은 중국의 5배를 받으면서 생산력은 같은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는 것이다. 때문에 최저임금을 높이면서 생산성도 함께 올라가도록 재교육과 평생교육 정책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이는 유럽과 미국에서 이미 보편화된 이야기다. 스웨덴, 노르웨이 등 북구복지국가에서는 평생교육 받는 사람들의 비율이 70~80%나 된다. 우리는 20%대다. 이들 나라에서는 교육비는 물론 교육받는 기간동안 생활비까지 지원한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경제를 성장시킬 수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부시 정부의 상속세 폐지에 반대한 미국의 부자들

: 세금 문제도 그렇다. 얼마 전 박지성 선수의 세금 관련 뉴스를 본 적이 있었다. 세금이 소득의 50%라는 이야기였다. 그래도 영국을 사회주의라고 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우리는 종합부동산세는 세금 폭탄이고 조금이라도 세금을 늘리려고 하면 국가가 부자를 적대시한다거나 반시장적이라는 이야기를 한다. 이런 패러다임이 꼭 바뀌어야할 것 같다.

: 이 책에서도 워렌 버핏 등의 사례가 나온다. 부시 정부가 상속세를 없애려고 하니까 이들이 반대했다. 버핏이 '내가 아프리카에서 태어났어도 부자가 됐을까, 내가 부자가 된 것은 지금까지 미국 사회가 쌓아온 사회적 자본이 있었기 때문이니 나도 사회적 자본을 만들어서 내 후손들도 잘 살게 하는 게 맞다'고 한 것이다. 이런 게 미국의 강점이다. 우리 부자들에게는 이런 면이 부족하다. 부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의 생산성을 높여주지 않으면 그들의 부를 지속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저소득층의 생산성이 살아나서 이들의 임금이 2배로 오르면 부자들은 10배 정도 오른다. 저소득층에 대한 지원을 거부하는 것은 자기 소득이 10배될 기회를 스스로 차버리는 것이다.

: 얼마 전에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국가전략과 진보의 미래를 고민한 유고가 공개됐다. 이 책의 내용과 연계될 수 있는 부분이 있을까.

: 저는 유고를 보지 못했지만. 그동안 말씀한 것을 보면 참여정부 철학이 비전2030에 담겨져 있다. 그 비전의 내용은 미국 민주당의 리스본 전략과 해밀턴 프로젝트와 상당한 정도로 연결이 돼 있다. 노 전 대통령의 방향과 철학은 맞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막상 정책을 집행하는 사람은 관료들 밖에 없었고 그들과 이질감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구체적인 방안도 없었다. 스펄링은 작은 단위에서 실험이 진행되고 성공한 정책들에 대해서 국가적 차원으로 확대해가는 과정을 거쳤다. 우리나라도 내년 지방 선거에서 성장친화적 진보에 대한 고민을 한 사람들이 많이 진출해서 지자체의 작은 단위부터 실험이 시작됐으면 좋겠다.

: 정치인들이 수치로 표현하는 공약에는 능하지만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대단히 취약한 것이 사실이다.

: 경제학자들에게는 절박성이 있다고 본다. 성장친화형 진보 정책의 문제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점이다. 미국만 해도 20여 년의 시간이 걸렸다. 지역단위에서 실험하고 국가단위에서 실험해서 나름대로 평가 근거가 만들어졌다. 우리의 경우는 이런 전략들이 시도되고 있지 않다. 규제완화와 감세를 통한 성장전략은 수명을 다했고 두바이처럼 무식하게 물적 자원을 투입하는 전략도 외부 충격에 수명을 다했다. 남은 것은 인적 자본에 투자하는 것 하나다. 우리도 소모적인 진보 보수 논쟁에서 벗어나 구체적인 정책을 놓고 건설적인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
#홍종학 #성장친화형 진보 #오바마노믹스 #엠비노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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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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