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향소어른 아이가 따로 없었다. 생각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숫자를 가지고 말하지기 전에 그곳을 찾아 헌화라도 했으면 바란다.
홍광석
이제 미안하고 후회스러워도 돌이킬 수 없는 일이다. 대연정을 제안했던 그의 의도가 민주주의를 살리고자 했던 고육지책이었음을 이해하고, 그의 가족이 받았다는 돈이 퇴임 송별금이었구나 하고 접어 생각한들 그의 육신을 다시 세울 수 없는 일이다.
만약 그가 대통령이 되지 않았더라면…,
만약 그가 그의 전임자들처럼 권력기관의 힘으로 그의 정적들을 감시하고 사찰했더라면…,
만약 그가 물에 빠진 개는 몽둥이로 후려치듯 숨을 죽이고 있던 민족의 공적들을 찾아 죄과를 확실하게 물었더라면….
끝없는 만약의 상념에서 틀을 벗어날 수 없을 뿐이다.
그러면서 그의 유서를 다시 읽는다. 몸을 던질 수밖에 없는 사실을 '운명'으로 받아들인 사람의 유서로 보기 어려울 정도로 간결한 유서에 담긴 행간의 의미를 읽는다.
권력의 정도를 보여주고 작은 농촌 마을로 귀향한 전임 대통령을 권력의 개밖에 될 수 없는 검찰과 사이비 보수 언론은 자신들의 존재를 인정해주었던 권력에 대해 연합하여 비열하게 뒤에서 난도질을 했다.
측근은 줄줄이 잡혀가고, 가까웠던 사람들의 계좌는 물론 그가 생전에 찾았던 식당마저 권력의 촉수가 미쳤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면 보통사람도 그 모멸감을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아방궁", "논고랑으로 사라진 1억짜리 시계" 등의 근거 없는 말을 여과 없이 흘리고 그것을 사실인양 보도하는 언론의 작태가 자신과 관계있다면 보통사람들도 절망감을 이길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그 배후에 전임자에 대한 예우를 운운했던 인물과 그 주변 사람들이 버티고 있는 것을 알았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을 보며 죽고 싶었을 것이다. 더구나 아무도 알아주지 않은 길에서 그는 더 외로움을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누구 말대로 "꿋꿋하게" 사는 것이 더 구차하기만 했을 것이다. 나는 그가 유서에 남긴 "운명이다"라는 대목을 읽으며 그의 절망에 공감하고 있었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하나? 그의 영정 앞에 따르는 술 한 잔으로 그에 대한 미안함을 씻을 수 없음을 안다. 유서를 읽고 또 읽으며 그가 우리에게 전하고자 했던 깊은 이면을 헤아린들 그렇다고 세상이 달라지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안다. 그의 삶을 극적으로 마감하도록 몰아간 실체, 그가 원망하지 말라고 했던 원망의 실체를 모르지 않지만 개인들이 응징할 수 없는 노릇임도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디지털 시대에 삽질이나 하고 있는 대통령에게 묻고 또 묻는다. 과연 당신은 전임 대통령의 죽음에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당신이 믿는 신의 이름으로 맹세할 수 있는가? 그러면서 대통령의 참회를 촉구한다. 그리고 국민 앞에 사과하고, 책임자를 처벌하고,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확고하게 세우겠다는 의지를 보여줄 것을 한 사람의 국민으로 강력하게 요구한다. 그렇지 않으면 반성 없는 대통령, 말로만 쇄신을 앞세우는 한나라당, 정당성을 강변하는 검찰, 교활한 사이비 언론 모두가 결국 국민의 힘 앞에 공멸하고 말 것이다.
대학교수 그리고 많은 지식인들이 시국선언을 통해 민주주의 회복을 촉구하고 있다. 그리고 촛불을 밝히고자 한다. 선거 때면 국민들을 투표기 정도로 취급하는 현 정부를 끝내고 싶다. 그 끝을 앞당기기 위해 봉하의 영정 앞에 켜진 촛불을 광장으로 옮긴다면 촌 노인도 뒤에서 촛불을 잡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