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이 지나자 허름했던 마을버스 정류장이 화사해지기 시작했다.
이주빈
이들의 정체가 궁금했다. 그들은 '좋은세상 만들기(대표 정수)' 소속 회원이라고 했다. 열린 미술을 지향하며 지난 2002년에 활동을 시작한 이 단체는 무료로 시골버스 정류장과 시골학교 담 등에 벽화를 그려왔다. 이들이 그동안 무료로 그려온 벽화만 100여 작품에 이른다.
이날도 이들은 광주라고는 하지만 자연마을에 가까운 농막마을 버스정류장에 무료벽화를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뙤약볕에 붉게 익어가는 그들의 볼이 더욱 아름다웠던 것은 모두들 쉬는 휴일에, 자신들이 각자 1만5천 원씩을 갹출해 물감을 사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농막마을 버스정류장 벽화그리기에 참여한 이들의 직업도 다양했다. 좋은세상 만들기 대표인 정수(34)씨는 한국화를 전공하고 지금은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승재(34)씨는 청소용역사업을 하고 있는데 벽화 그릴 시설물 청소나 마을청소를 무료로 해주고 있다.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허진(27)씨는 미국 유학을 다녀온 뒤 지금은 광주민족미술인협회에서 간사로 일하고 있다. 오은영(26)씨는 대학에서는 판화를 전공했고 지금은 쇼핑몰을 운영하며 벽화작업에 참여하고 있다. 김강(25)씨는 한 시골초등학교 교사다. 그는 미술전공을 하지 않았지만 벽화작업에 그 누구보다 열성이다.
김종원(29)씨는 현재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있다. 그의 꿈은 훌륭한 사진작가가 되는 것이다. 김원(34)씨는 고등학교 미술교사다. 그는 아이들과 함께 하는 미술교육 커리큘럼을 만들어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김영인(28)씨는 전남대 학생이자 한 공익광고에 출연한 광고모델이기도 하다. 정일영(26)씨는 유통관련 일을 하다가 지금은 아예 이 단체의 아트매니저로 활동하고 있다.
오은영씨는 "판화작업을 할 때는 내 감정 위주로 작업을 하고 또 내 작업 나름대로 즐겁기도 하지만 다른 이들과 소통하면서 함께 작업하는 것도 혼자 작업하는 것 못지않게 즐겁다"며 소감을 밝힌다.
김종원씨는 "평소에 벽화에 관심이 많았다"면서 "특히 마을버스 정류장에 벽화작업을 할 때는 작지만 도시와 농촌 간에 교류가 이뤄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좋다"고 한다.
허진씨는 "대개의 미술작품은 갤러리에 와서 봐야 하는데 내 손길이 닿은 작품 하나가 시골 한가운데 있어서 (마을 주민들과) 함께 감상할 수 있고, 벽화작업은 다른 작업과는 달리 여러 사람의 다양성이 녹아 있고 또 다른 작품에 비해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것 같아 좋다"고 작업에 참여한 이유를 밝혔다.
이들의 작업을 하루종일 지켜본 농목마을 전 부녀회장 유성복(53)씨는 시원한 수박을 내오며 "다른 동네 버스정류장이 예쁘게 꾸며져 있는 걸 보고 괜히 부러워만 했었는데 이렇게 우리 마을까지 와서 벽화작업을 해주니 너무나 기쁘다"며 청년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밭일을 갔다오다 들른 임이순(68) 할머니는 "자기 동네도 아닌데 남의 동네까지 와서 이 더위에 고생을 해주니 뭐라고 말할 수 없이 좋다"며 "시원한 물이라도 갖다줘야 할 것인디…"하고 흐린 말끝으로 진한 고마움을 전했다.
청년들이 봉하마을로 추모벽화 작업하러 가는 까닭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