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 영결식이 열린 29일 오후 서울시청앞 서울광장에서 노제를 마친 운구행렬이 서울역으로 향하는 가운데 시민들이 운구차를 향해 추모의 뜻으로 노란 손수건과 종이비행기를 던지고 있다.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권우성
친노(親盧)는 무엇을 해야 하나?친노(親盧)! 오늘 하루만 이 지긋지긋한 표현을 쓰는 것을 용서해 주길 빈다. 친노라는 말은 이중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나는 흔히 알고 있는 언론이 만들어낸 친노-반노 프레임에서 나온 친노다.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하는 세력을 소수파로 몰고, 당 내부에서 차별화를 시도하려는 정치세력에게 명분을 부여하기 위해 언론이 만들어 낸 용어다. 과거에 주류와 비주류로 분류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지도자의 성(姓)에 붙여서 정치세력을 규정짓는 방식은 노무현 시대에 처음 이루어졌다. 친노라는 딱지는 그동안 친노정치세력(?)을 국민들로부터 부정적이고 모욕적 느낌을 갖게 만드는 엄청난 마술을 부렸다.
또 다른 하나는 정치개혁, 정당개혁의 산물로서 친노다. '3김시대'에는 동교동계, 상도동계라고 불렸고, 이것을 계파(系派)라 했다. 사전에 찾아보면, "정당이나 조직 내부에서 출신(出身)이나 연고(緣故), 이권 등에 의해 결합된 배타적(排他的)인 모임"이라고 되어 있다. 왜 언론은 '친노'를 무슨 계라고 하지 않고 친노라고 했을까? 친노라는 말속에 답이 있다. 친노는 계파를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친노는 긍정적 유산이다. 여당, 야당을 불문하고 제왕적 총재제도를 가지고 있던 당을 노무현의 새로운 정치라는 아젠다에 의해 개혁했기 때문에 과거 개념규정으로 정리할 수 없었다.
비록 지도자의 성에 이름을 붙여 정치세력을 규정하긴 했지만, 가치중심의 정치가 시작되었다는 측면에서 친노라는 용어는 역사적 개념이다. 아무튼 친노니, 반노니 하던 언론에서 만든 이 프레임이 이제는 집권당에 적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역사적 아이러니다. 무척 안타깝게도(?) 한나라당 내부의 정치행위를 친이-친박의 구도(프레임)로 해석되고 설명되는 순간, 한나라당의 비극은 잉태되고 있는 것이다.
정치는 생물이라고 했던가! 그 친노가 부활할 기회가 왔다. 불과 얼마 전까지 친노는 사라져가는 정치세력이었다. 어떻게 하면 친노를 땅에 묻어버리고, 흔적은 지워 버릴까하는 경쟁이 야당 내부에서도 진행되고 있었다. 안희정 민주당 최고위원의 표현대로 친노는 폐족(廢族)이었다. 친노는 모여 있는 체로 폐족이 된 것이 아니라, 공중에 분해된 형태로 산산이 흩어져 있었다.
안희정 최고위원, 이광재 의원, 낙선의원 등 여전히 민주당에 잔류하고 있는 세력도 있고, 민주당의 정체성에 문제를 제기한 이해찬 전 총리를 비롯한 민주당 탈당파도 있고, 유시민 전 장관과 개혁당 출신들처럼 민주당에서 밀려난 탈당파도 있다. 지역정당으로 기울어진 민주당과 함께하지 못하는 김두관 전 장관을 비롯한 영남민주화세력 등으로 사분오열되어 있었다. 불행하게도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로 인해 친노세력은 부활의 기회를 제공받았다.
안희정의 표현에 빗대어 정리하자면, 폐족에서 면천(免賤)을 받았다. 우리 국민들은 지난 1주일 동안 500만 명의 조문을 통해 노무현 대통령의 가치와 노선이 진정으로 옳았다는 것을 증명해 주었다. 노무현 대통령께서 평소에 신념으로 생각했던 '국민이 대통령'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 힘으로 친노는 드디어 '정치적 사면, 복권'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친노가 비록 면천이 되었다고 해서 과거시험에 장원급제한 것이 아니고, 복권이 되었다고 공직에 당선이 된 것도 아니다. 하물며 사분오열된 친노는 정치세력으로 인정받을 수 없다. 즉 단일한 당을 이루고 있는 것도 아니기에 노무현 대통령의 유산을 단독으로 상속받을 수도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금부터 친노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친노세력은 갈 길이 아주 멀다. 친노세력은 지금부터 노무현 대통령이 남긴 유훈이 무엇인지 심사숙고해야 한다. 추모의 열기를 아전인수로 해석하지 말고, 노무현 대통령의 마음과 몸으로 보여준 자세를 냉정하게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것은 살신성인(殺身成仁)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부엉이 바위에서 뛰어 내린 것처럼 친노는 자신을 죽여야 한다. 친노의 프레임으로 정치를 하면 안 된다. 지금은 일시적으로 친노가 떠오르고 주목받을지 몰라도, 절대로 친노만으로 한국 정치를 바꿀 수 없다. 노무현 대통령이 친노를 살리기 위해 살신성인하신 것이 아니라, 한국 정치를 살리고 대한민국을 살리기 위해 살신성인하신 것이다. 이 점을 친노세력은 명심하고 또 명심해야 한다. 진보개혁세력 전체가 함께하는, 그리고 국민과 함께하는 호시우행의 큰 걸음으로 뚜벅뚜벅 걸어갈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 이제 할 일은 명명백백해졌다.
첫째, 노무현 대통령의 가치를 바로 세우자! 노무현의 정치에 대해 새로운 평가를 시작해야 한다. 퇴임 1년을 전후하여 노무현시대에 대한 평가 작업이 일부에서 진행하였다. '한반도사회경제연구회'에서 출판한 '노무현시대의 좌절'에 대해 우리 '사회디자인연구소'가 4차례의 토론을 진행하였고, '한사연'과 비공식적으로 토론을 하기도 했다. 이제는 모든 연구역량과 정치활동가가 참여하는 대대적이고 본격적인 노무현시대에 대한 올바른 평가 작업을 진행해야 한다. 특히 참여정부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주축이 되어 노무현시대를 재평가하는 일이 필요하다.
참여정부의 5년은 진보개혁세력에서 제일 큰 '보물창고'다. 우리 국민들이 인정하고 있다. 자신감을 가지고 시작하자!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하시자, 많은 분들이 노무현 대통령의 가치와 성과를 상기시켜주었지만, 우리사회의 자칭 진보주의자들은 추모기간에 발표하는 추모의 글속에도 '노무현 정치는 실패했다'는 전제를 깔고 추도의 글을 올리는 경우를 볼 수 있었다. 이들과 불필요한 논쟁으로 발전하는 것은 원하지 않지만, 무책임한 냉소적 시각은 바로 잡아야 한다. 새로운 정치를 하겠다는 친노는 노무현시대 평가부터 시작해야 한다.
둘째, 우리 자신을 돌아보자. 반성하고 성찰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