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 가족사진. 군인 장교의 결혼식도 아니고, 뒤로 보이는 대한민국 태극기가 이채롭다.
조종안
하얀 드레스를 걸치고 예식장에서 치르는 일명 '신식결혼식'보다는 마당에 차양을 치고 사모관대 차림으로 전통혼례를 치르는 사람이 많았던 50년대 말에 일반 예식장도 아닌 신부 모교 강당에서 결혼식을 올렸다니, 예외적인 일로 받아들여진다.
신부 집에서 신랑 집까지는 한 마장 거리도 안 되는 동네 결혼이었다. 당시만 해도 중매결혼이 대세였는데, 양가 부친이 가깝게 지내는 사이여서 결혼이 쉽게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러니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스무 살에 약혼하고 이듬해 결혼할 수밖에.
친구에게 막소주 한 잔 대접 받으면서 하루에 두 끼니 해결하기도 어렵다고 하소연할 정도로 삶이 고달팠던 시절에 찍은 가족사진인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시쳇말로 '동네에서 말마디나 하고', '밥술깨나 뜨는 집안'들의 혼사임을 알 수 있다.
어른들 차림새가 화려하지는 않지만, 당시 유행하던 흰 두루마기 아니면 스웨터를 걸쳤고, 신부가 졸업한 학교 재단이사장 이름이 적힌 화환 두 개가 양쪽에 세워져 있으며, 지금은 50대 후반이나 60대가 되었을 어린 학생들의 차림새를 보고 하는 얘기다.
교복 단추가 하나 둘 떨어진 학생도 보이고, 손가락으로 얼굴을 만지거나 천정을 쳐다보는 등 주의가 산만한 꼬마들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이 단정한 교복차림이어서 '밥술깨나 뜨는 집안' 자녀임을 알 수 있다. 중학교 진학률이 30%에도 못 미쳤던 당시 서민들 가족사진을 보면 맨발에 고무신, 까까머리에 무릎이 해지고, 바지를 몇 번씩 접어 올린 아이들이 몇 명씩 끼어 있기 때문이다.
결정적인 포인트는 가슴에 하얀 꽃봉오리를 단 신랑·신부 아버지 모습이 시대에 어울리지 않게 풍채가 좋고 당당하며, 가족들 얼굴에서도 궁기를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귀엽고 예쁜 화동들은 이 같은 사실들을 뒷받침해주는 것 같고.
첫 휴가 데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