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그림
계수나무
한창 마음을 다잡고 글 한 줄 끄적이는데 전화통이 울립니다. 무슨 전화인가 싶어 받으니 비과세저축 하나 들라고 하는 소리가 흐릅니다. 내 살림에 무슨 비과세저축 투자를 하느냐 싶지만, 전화 거는 일을 하는 사람도 고단할 테지 하고 생각하며 조금만 듣다가 끊으려 합니다. 그런데 전화기 건너편은 좀처럼 전화를 끊어 줄 마음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딱히 물건을 팔겠다는 뜻을 느끼기 어렵습니다. 쉴 사이 없이 입을 놀리느라 지친 느낌만 물씬 받습니다.
저 또한 하루하루 삶을 꾸리고 아기하고 복닥이면서 그리 튼튼하지 않은 몸이요, 아주 잠깐 동안 아기보기를 쉬면서 글쓰기에 품을 들이는 이맘때를 흘려보내고 싶지 않습니다. 그나마 애를 보고 있다면 '저기, 지금 애보고 있어 힘드니 그만 끊을게요'라 말할 테지만, 늘 애를 보기는 해도 지금은 안 보고 있으니 거짓말로 둘러대고 싶지 않습니다. 그저 조용히 제 마음을 다스리고 싶을 뿐입니다. 줄줄줄 흐르는 말을 끊으며 '저는 그런 투자를 안 해도 됩니다.' 하고 말을 건네지만, '네, 그렇지만 ……' 하면서 다시 말을 잇습니다. 외려 처음부터 다시 이야기를 하려는 낌새입니다.
더운 날 몸이며 마음이며 그예 지칠 뿐임을 새삼 느끼는 가운데 더 버티지 못하고, '저는 전화 받을 겨를도 없고, 그런 데에 쓸 돈도 없습니다. 이제 그만 끊겠습니다.' 하는 데에도 굳이 몇 마디를 더 보태며 전화기를 붙들어 매도록 합니다.
이런 데에서는 마음이 모질어야 할까요. 아니, 이런 데에서조차 모질게 마음을 먹지 않으면서 즐거이 이야기를 나누는 느긋함을 갖추어야 할까요. 맞은편도 힘든 줄 생각한다면, 이만한 투자쯤이야 얼마든지 할 수 있게끔 돈 펑펑 벌어들여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