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7년 11월 7일 김창식 씨가 공권력 피해구조연맹등 시민단체들과 함께 중앙대 후문에서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집회를 갖고 있는 모습이다.
추광규
- 나 홀로 소송에 들어가게 된 과정을 설명해 달라."2006년 1월 중앙대가 해임조치하자 나로서는 또다시 소송으로 맞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1년여만인 2007년 5월 31일 내려진 1심 재판 결과는 허무했다. 중앙대의 징계 조치가 옳다는 거였다. 나의 패소였다.
이때 눈물겨운 일이 벌어졌다. 1심 변론을 맡았던 K 변호사가 2심을 맡을 수 없다는 거였다. 그에게 져도 좋으니까 2심을 맡아달라고 간청하다시피 했다. 하지만 그는 도저히 더 이상 변론을 맡을 수 없다고 했다. 사건이 명백한데도 진 것은 바로 전관들이 장난을 친 것이니 더 큰 변호사를 찾아가라며 손사래를 쳤다.
상대측 법무법인의 진용은 화려했다. 서울고등법원 법원장 출신 및 헌법재판소 연구부장 출신에 서울고법 부장판사 출신, 법학박사 등 이 법무법인이 자랑하는 스타급 변호사를 상대로 재판한 결과 진실과는 전혀 거리가 먼 판결이 나왔으니 그들만의 높은 벽을 감수할 수 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어서 다른 법무법인의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높은 벽을 다시 한 번 실감했을 뿐이었다. 이들 대형로펌들은 내가 패소한 후 온 사건이기에 수임료로 7천만 원을 요구했다. 원래 최하 수임료가 3천만 원이고 보통은 5천만 원인데 1심에서 패소한 후 왔기 때문에 그 정도 수임료를 받아야 한다는 거였다. 또한 성공보수금은 별도로 한다고 했다. 따져보니 1억 원 가까운 돈인데 가까스로 승소한다고 해도 변호사 좋은 일만 시키는 거였다.
주택까지 저당 잡혀 이자만 한 달에 40~50만원이 나가는 상황에, 처남의 퇴직금까지 빌려다가 생활하는 형편에서 그 정도 돈을 마련한다는 것은 너무도 어려운 일이었다. 미칠 노릇이었다. 돈을 마련하기 위해 연금공단에 대출 여부를 문의했다. 연금 2억 원을 먼저 지급받은 후 승소할 경우 다시 돌려주면 어떻게 되는지 물어봤더니 이자가 너무 높았다.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해서 2007년 6월 20일 접수된 항소심부터는 나 홀로 소송을 할 수밖에 없었다. 1심에서 중앙대의 변론을 맡아 승소를 이끌어냈던 법무법인은 서울고법 사건에서도 전관예우를 받는 변호사들을 대리인으로 내세웠다. 서울고등법원 사건에 서울고등법원 법원장 출신 전관 변호사와 헌법재판소 연구부장 출신, 서울고법 부장판사 출신, 법학박사 등이 중앙대 측 소송 대리인이었다. 항소심 재판부는 석궁사건으로 이름을 날린 박홍우 부장 판사가 재판장이었다. 변론준비절차만 1년간 4번을 거쳤다. 쟁점다툼만 계속했다.
변론준비기간을 거쳐 쟁점이 확정되었다. 법관은 300만원 벌금에 해임과 퇴직금 4억여원 몰수가 정당한지, 그렇지 않은지 여부를 판단해야 할 사건이라고 쟁점사항을 부각시켰다. 이 사실은 내가 법원에 녹음 신청을 하여 녹음된 내용을 법원으로부터 받았고 법원도 녹음사항을 보존하고 있다.
즉 '300만원 벌금에 4억여원 퇴직금 몰수가 정당한지 아닌지를 따지자'는 거였다. 중앙대측은 내가 정상적으로 퇴직했다면 받을 수 있는 4억여 원의 퇴직금을 전액 몰수하는 해임을 했기 때문이다. 2008년 2월에 인사이동으로 석궁사건의 박홍우 재판장을 비롯하여 재판부 판사 3명 전원 모두 교체되었고 후임으로 온 김상철 재판장이 본 재판을 맡게 되었다.
내가 여러 차례에 걸쳐 첫 변론기일을 지정해 달라고 탄원하는 한편 변론기일 지정신청서를 제출했으나 재판부는 무응답이었다. 항소 후 2년 넘게 변론준비절차만 하고 첫 변론을 열지 않았다. 민사소송법에 의하면 변론준비절차를 마친 후 첫 변론을 바로 열어야 되는데, 아예 첫 변론을 열지 않았다. 이에 '피고 1' 대법원장 이용훈, '피고 2' 김상철 재판장으로 하여 직무유기에 따른 늑장 재판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재판을 진행하기도 했었다.
한편 김상철 재판장을 직무유기로 형사고소를 했다. 재판장은 나에게 2008년 11월 24일 첫 변론을 열겠다고 통지하는 한편 민사소장을 반송했고 대법원장은 민사소장을 수령했다. 목적한 바 변론기일이 지정되어 민사소송과 고소를 모두 취하했다.
그렇게 마음고생을 하면서 노력했지만 재판은 2008년 11월 24일 첫 변론과 동시에 종결했다. 2심 결과도 허무했다. 아니 더 괘씸죄에 걸려들었는지 2008년 12월 12일 내려진 선고에서 '원고의 항고를 기각한다'면서 판결이유에서 '중앙대에 중대한 재산상의 손실을 입혔다'며 해임이 정당하다고 판결했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중앙대 측에 나의 300만 원 벌금에 대한 징계사유인 학내외 위신 손상과 학교발전에 지장을 초래한 것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석명하라고 했는데, 중앙대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또한, 쟁점사항 중 하나로 '내가 수차에 무단결근했다'고 내세웠던 중앙대 측 주장은 또 다른 형사사건에서 '무단결근을 했다는 아무런 증거가 없다'고 밝혀졌음에도 그렇게 터무니없는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2008년 12월 29일 10시에 중앙대 박범훈 총장을 비서실에서 만나기도 했다. 학교퇴직금을 돌려주면 상고를 하지 않겠다고 제의했지만 거절했다. 한 푼도 줄 수 없다고 했다. 줄 수 없는 이유는 법무법인에 변호사비가 워낙 많이 나갔고. 서울고법 2심 판결문에 학교퇴직금을 받지 못하더라도 해임이 정당하다고 판시되어 있기에 주지 않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상고를 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해 12월 29일이었다. 2009년 1월 15일 대법원에 모든 기록이 이관되었다. 2009년 2월 9일 상고이유서를 제출했다. 그런데 중앙대에서는 답변서를 안 냈다. 10일 이내에 상고이유서에 대한 답변서를 제출했어야 함에도 안 냈다. 상대방이 그러든가 말든가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법률적 방어행위를 계속해 나갔다.
3월 10일 상고이유 보충서를 제출했다. 3월 22일 날 피고가 답변서도 안 냈으니 기일을 지정해 달라며 법원행정처에 신청도 했다. 그렇게 장기전에 대비하고 있는데 갑자기 기일이 지정되었다. 5월 14일에 선고한다는 통지가 왔다.
이날 결과는 앞서 말한대로 '직위해제는 상고기각 한다. 해임무효확인소송은 서울고법으로 파기환송 한다'고 판결했다. 징계사유가 안 된다는 이유가 아니라 징계사유에 비해 너무 지나치고 가혹하다는 이유였다. 대법원은 '중앙대가 원고에게 행한 처분은 그 징계재량권을 일탈했다', '징계권 남용으로 본다'며 판단해 서울고법으로 파기 환송했다. 마침내 가장 중요한 해임부분과 관련해 승소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