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랏마을 풍경 2
변종만
22세대 40명이 사는 마을에 들어서면 낡고 낮은 집들이 작은 개울을 따라 내려가며 양옆으로 들어서있는 전형적인 시골풍경이다. 방치되고 있는 폐가, 담배 말리던 건조실, 솔가지가 얹혀있는 낮은 돌담, 여인네들의 웃음소리가 사라진 빨래터, 군데군데 속살을 드러낸 흙벽돌, 작아도 격식을 갖춘 일본식 건물, 여기저기 널려있는 살림살이가 60년대의 추억을 끄집어낸다.
대청댐이 생기기 전에는 배가 이 마을의 주요 교통수단이었다. 한지체험장 추진위원회 대표인 박상하씨(55)는 "나루터가 마을의 입구였고, 나룻배를 타야만 들어올 수 있던 육지 속의 섬이었다."고 말한다. 대청호 속에 숨어있다 갈수기에 흔적을 드러내는 벌랏나루터와 호수 쪽에 있는 성황당이 역사의 증인이다.
박 대표에 의하면 한지, 잡곡, 과실이 풍부해 한때는 삼천냥의 부자마을로 인근에 소문이 났었다. 그런데 지금은 다른 산촌마을과 실정이 비슷하다. 얼마 되지 않는 농경지마저 대부분 밭인데다 노인들만 살고 있어 소득원도 없다. 연 200만원이 채 안 되는 소득으로 쌀까지 사다먹는 현실을 웃으면서 얘기하는 마을 사람들에게서 여유를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