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지로 논의되고 있는 사저에서 서쪽으로 50여m 떨어진 야산의 모습.
유성호
"울지 마이소, 여기 건드리기만 해도 울음보따리 터질 사람들로 가득 찼습니다."이호철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봉하마을을 찾아온 조문객들이 자신을 붙잡고 울먹이자 이렇게 말했다.
'참여정부 386 참모들의 군기반장'이라는 말을 듣는 그는 2002년 대선 전에는 부산을 지키면서 노 전 대통령을 도운 '동업자'였다. 참여정부 출범 이후에는 국회의원 등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청와대에서만 노 전 대통령을 도왔고, 노 전 대통령 퇴임 뒤에는 같이 귀향해 부산에서 매일 출퇴근하면서 농사일 등을 도왔다.
노 전 대통령이 인권변호사로 인생행로를 바꾸는 계기가 된 1981년 '부림'사건의 주역이기도 한 그는 노 전 대통령과는 한 가족 같은 관계다.
그가 노 전 대통령 서거소식을 들은 것은 이란에서였다. 전세금을 뺀 돈으로 부인과 함께 세계여행을 하던 중 뉴스를 보고 지난 24일 귀국했다. 그 뒤는 '터지는 울음보따리를 참으면서' 노 전 대통령을 잘 보내드리는 일에만 몰두한 시간이었다.
28일 새벽, 그나마 여유 있는 시간에 만난 그는 "봉하마을에 내려온 뒤 노 대통령이 권(양숙) 여사에게 '우리 여기에 묻히자'고 했단다"고 전했다.
이 전 수석은 "대통령이 마을 뒷산에 나무를 심을 때 이렇게 저렇게 한 것을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저 조경이 아니라 나중에 당신이 묻힐 곳을 생각해서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기라'는 노 전 대통령의 유언은 이렇게 나왔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그는 노 전 대통령의 유가족과 참모들이 장지를 정하는 상의를 할 때 미리부터 '봉하마을'안을 관철시키겠다는 작정을 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럴 필요는 없었다.
"대전 국립현충원 대통령 묘역으로 가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고 또 화장 뒤 분골해서 광주 등 여러 지역에 나눠모시자는 말도 있었지만, (권)여사님과 건호씨도 그렇고 다수가 대통령께서 원한 대로 봉하마을에 모셔야 한다는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