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적으로 잘못 이용하는 세력이 있어서 이걸 변질시켰고 또 소요사태가 일어나거나 이렇게 되는 것은 정말 걱정입니다."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 27일 고위당정협의회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으로 소요사태가 우려된다고 발언해 논란을 불러왔다.
남소연
그런데 현 정부여당과 보수언론에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고 주문한다. 정치적 사정 정국이 유발한 죽음을 정치적으로 받아들이지 말라고 말하는 것만큼 정치적인 요구도 없다. 세무조사만 시작해도 '정치적 동기가 있다'고 비난하던 것이 야당시절의 한나라당과 이들을 지지하던 보수언론 아니었던가.
고통스런 죽음과 탄식 앞에서 '경제에 영향 없길 바란다'고 말하는 재계도 한심하긴 마찬가지다. 한 사회의 '주류'를 자칭하는 집단이 한 사람의 죽음 앞에서 기껏 금전적, 정략적 이해득실이나 따지고 있는 현실은, 한국사회가 얼마나 비인간적 괴물로 전락했는지를 보여준다. 인간답게 살기 위해 정치도 하고 경제활동도 하는 거다. 그러나 기득권층의 바람이 드러내 주듯, 이제 이 사회에서 사람은 돈과 정치권력의 수단(혹은 방해물)으로 전락해버린 지 오래다.
이것이 정확히 노무현 전 대통령으로 하여금 스스로 목숨을 끊게 한 이유며, 국민들을 슬픔과 분노 속에서 절규하도록 만든 이유다 .
국민들의 눈물 속에 깃든 것 : 좌절, 반성, 배신감지금 국민들의 뺨을 적시는 눈물 속에는 한 애달픈 죽음에 대한 애도뿐 아니라 좌절과 반성, 그리고 배신감이 녹아 있다. 지금 비탄에 잠긴 사람들 가운데는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던 다수의 국민들이 포함되어 있으며, 그 수가 점점 늘고 있다.
국민들의 좌절 속에는 이명박 정부의 실정뿐 아니라, 검찰과 경찰 등 수사기관과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보수-언론권력이 함께 자리하고 있다. 언론과 수사기관의 존재목적은 권력을 견제함으로써 사회의 약자를 보호하고, 불의에 맞서 사회정의를 지키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정치권력과 한 몸이 되어 도리어 약자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존재가 되었다. 검찰은 보수정치권의 필요에 따라 수사를 시작하고 그 내용을 언론에 흘렸으며, 경찰은 노전대통령의 서거를 추모하는 국민들을 정치적 이유로 막고 분향소를 철거했다.
비단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만이 아니었다. 장자연이라는 한 나약한 여인의 죽음 앞과 뒤에서 경찰과 언론이 어떻게 행동했는가를 보라. 경찰은 고발 조치된 언론사의 사주마저 미적대며 조사하지 않다가, 수사결과 발표 하루 전에야 비밀리에 조사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수사 과정에서 경찰의 가장 큰 관심사는 당사자의 신원을 감추는 데 있는 듯 보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에 대해서는 확인되지 않은 내용까지 시시콜콜 모두 기사화했던 보수언론들은 장자연 사건에 대해서는 입을 맞춘 듯 함구로 일관했다. <조선일보>는 사주의 이름을 밝혔다는 이유로 국회의원 두 명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기까지 했다. 법과 언론이 억울한 죽음의 진실을 밝히기는커녕, 이를 위한 노력에 재갈을 물리고 도리어 혐의자를 보호하는 수단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얼마 후 이들은 한 약자의 죽음을 은폐하는 데 머물지 않고 죽음으로 몰고 가는 지경에 이른다.
장자연이 자신의 고통을 글로 남기고 목숨을 끊었을 때, 많은 이들이 슬퍼하면서도 '왜 살아서 자신의 처지를 밝히지 못했는지' 안타까워했다. 그러나 왜 살아서 맞서지 못했느냐고 묻기에는 가해자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한국사회가 너무나 잔인하고 야만스럽다. 그녀가 살아서 자신이 당한 일을 있는 그대로 밝혔다면 과연 '사필귀정'의 정의가 실현되고, 그녀는 무사히 원하는 일을 하면서 순탄히 살 수 있었을까? 그렇다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이 정의고, 누가 옳은가가 아니라, 누가 더 큰 힘을 갖고 있는가이다. 가난하게 태어나고, 좋은 학교를 졸업하지 못하고, 기득권층의 기호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하면 그가 누구라도 무시와 조롱, 그리고 핍박을 면할 수 없게 된다. 국민들은 국회의원들이 과거 노무현 대통령을 이름 석 자로 부르는 것을 지켜보았으며, 검사들이 대통령에게 정면으로 맞서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들이 지금의 '주류' 대통령에게는 어떤 모습을 보이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