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저녁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빈소가 마련된 경남 김해 봉하마을회관 앞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장례위원회 장례위원장을 맡은 한명숙 전 총리가 장례 절차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유성호
인물연구 노무현을 위해 청와대에서 3일간 인터뷰를 한 것은 2007년 9,10월이었다. 당시는 그해 말에 있을 17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여야 모두 예비후보들이 경선을 준비하거나 참여하고 있을 때였다. 민주당은 친노진영에서는 이해찬, 한명숙, 유시민씨 등이 예비후보로 거론됐고, 비노진영에서는 정동영, 손학규씨가 나서고 있었다. 또 민주당 밖 진보개혁진영에서는 문국현씨가 대선참여를 선언한 상태였다.
나는 기자로서 퇴임을 앞둔 노무현 대통령이 차기 대통령을 뽑는 선거판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그가 이끄는 여권에 불리하게 전개되고 있던 선거판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가 궁금했다. 기회가 왔다. 대통령과 우리 취재팀은 점심식사를 함께하고 청와대 뒷산의 대통령 전용 데크에서 차 한잔을 하고 있었다. 민감한 이야기를 민감하지 않게 나눌 수 있는 시간과 장소였다.
우선 이렇게 여쭤봤다.
- 현재 한나라당과 민주당 예비후보들을 보면 민주당 후보들이 다들 약합니다. 사전에 좀 더 치밀하게 후계자 준비를 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나요?"후계자는, 그 이상은 내가 어쩔 수가 없어요. 그 이상은 어쩔 수가 없어요."
노무현 대통령은 정동영, 김근태, 이해찬, 한명숙씨 이야기 등을 하면서 "충분히 기회를 줬다"고 했다. 장관과 총리에 임명하면서 국민들에게 가능성을 어필할 시간을 줬다는 이야기였다. 그는 2002 대선 과정에서 스스로 여권후보를 '쟁취'했음을 상기시켰다.
"김대중 대통령 말기에 악재가 그렇게 많았어도 내가 대통령이 됐잖아요. 후보는 자기가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항상 하신 말씀이 '후계자는 자기가 하는 거지 내가 어떻게 짚어주냐?'였는데 그 말이 맞아요."
하지만 현직 대통령은 그의 지지도가 높지 않음을 의식하고 있었다. 대선은 현 정권에 대한 총체적 심판의 장이 아닌가? 현직 대통령 노무현은 그가 여당의 차기후보들에게 '유리한 환경'을 제공해주지 못하고 있음을 미안해하고 있었다.
"내가 다음 선거까지 책임질 수 있는 지지도를 유지 못한 것은 맞지마는, 다음 선거까지 우세하도록 지지도를 유지 못한 거는 맞지마는..."
- 근데 이른바 친노진영의 후보감을 보면 이해찬, 한명숙, 유시민씨 정도인데요, 민주당 경선에서 비노진영과 제대로 경쟁을 하려면 이 세 사람 중에 한 사람으로 통합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실 텐데...."이거 나가는(보도되는) 거 아니오?"
대통령은 오프더레코드를 요구했다. 당시에 노 대통령이 친노 예비후보들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는 너무 민감한 사안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오프더레코드를 받아들였지만, 그것의 유효기간을 정하진 않았다. 나는 혼자서 퇴임 후 적절한 시점까지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가는 거 아니면 내가 말해 주지."
너무 뜻밖이어서 우리는 귀를 쫑긋 세웠다.
"나는 누가 되는지 모르지만, 나보고 마음대로 지명하라고 그러면 한명숙씨요."- 아, 그래요?
"예."
대통령은 "그러나" 하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왜 지금 한명숙이다, 이런 소리를 내가 안 하냐 하면, 이 선거 국면에서 민심을 움직이는 것은 나도 어쩔 수가 없어요. 내가 억지로 뭘 하려고 하다 오히려 판을 깨는 수가 있지요. (친노후보들) 그 사이에서는 별 차이 없으니까 (나는 그냥) 보고 있는 거죠."
"내가 부드러움이 부족하거든, 그것에서 신뢰가 나오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