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홈페이지 캡처
어느 날 <세계일보> 탐사보도팀에서 전화가 왔다. 기록관리 현실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다루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그때부터 <세계일보> 탐사보도팀과 수많은 토론과 고민을 한 끝에 '기록이 없는 나라' 시리즈를 시작하기로 계획하고 취재를 시작했다.
그 이후 공공기관에서 기록이 썩어 들어가는 장면을 취재하는 데 성공했다. 그 이외에도 공공기관에서 기록관리가 되지 않는 현실을 수없이 취재할 수 있었다. 탄핵 국면이 마무리 되었던 2004년 5월 말 무렵 '기록이 없는 나라' 시리즈를 시작했다. <세계일보>는 시리즈 둘째 날 신문 지면을 통해서 기록이 썩어가는 장면을 사진으로 공개했다. 둘째 날 보도가 나가자마자 당시 허성관 행정자치부 장관이 <세계일보>에 전화를 걸어왔다. 이런 현실을 개선할 수 있도록 인터뷰를 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인터뷰를 통해서 이런 현실을 바꾸기 위해 모든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너무나 빠른 반응이었다. 하지만 그 배후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있었다는 것은 그 이후에야 알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그 보도를 보고 여러 가지 대책을 마련하라고 행자부 장관에게 지시를 내린 것이었다. 그 시리즈는 10여 회에 걸쳐 독자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키며 보도되었다. 우리의 문제제기에 대해서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기록관리 현실을 엄중하고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당장 당시 구성 중이었던 정부혁신위원회에 기록관리 분야를 추가시켰다. 그 이후 정부는 기록관리 현실을 바꿀 수 있는 전문가들을 총체적으로 모으기 시작했다. 기록관리 분야에서 필자와 친하게 지내던 사람들이 거의 모두 다 정부로 불려갔다. 그때부터 세상은 변하기 시작했다. 기록관리 전문가(기록연구사)들이 정부에 채용되기 시작했고, 국가기록원의 위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또한 각종 기록관리시스템이 도입되기 시작했다. 온갖 예산이 도입되기 시작했다. 인력, 돈, 조직에 대한 총체적인 지원이 시작된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기록관리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 스스로 '이지원' 시스템이라는 업무관리시스템을 개발했다는 점이다. 이 시스템은 특허청에서 특허를 받기도 했다. 이 시스템은 공무원이 출근과 동시에 모든 업무에 대해 기록하고 관리하는 시스템이었다. 필자도 이 시스템을 이해하는 데 엄청난 노력을 해야 했다.
그러나... 공적은 묻히고, 대통령기록 유출로 고발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