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중에 신문배달 일을 할 때에는 비를 새삼스레 느낍니다. 자전거 타고 신문을 돌리는데 우산을 받고 돌릴 수 있겠습니까. 내 몸은 옴팡 젖어들어도 신문에는 물 한 방울 묻히지 않으려고 갖은 애를 썼습니다. 장마철만 되면 한 달이고 두 달이고 여느 날보다 두 시간씩 일찍 일어나서 두 시간씩 늦게 일이 끝나 죽을맛이었고, 신문사지국에는 비 냄새로 가득했는데, 맑은 날 신문 돌리던 일은 거의 떠오르지 않지만, 비오는 날 신문 돌리던 일은 이제까지 하나도 안 잊힙니다.
새벽 네 시까지는 비소식이 없어 느긋하게 돌렸는데 여섯 시 즈음부터 갑자기 쏟아져서, 애써 돌린 신문이 죄 젖는 바람에 다시 돌린 일. 지하에 있던 신문사 지국에 물에 잠길 뻔한 일. 지국장 님 댁을 비롯해 이문동 반지하집이 모조리 물에 잠겨서 지국장 님 댁에 있던 가구며 옷이며 지국으로 옮겨다 놓고 대피하던 일. 허리춤까지 잠긴 물길을 자전거로 헤치면서 신문을 돌리던 일. 비가 오면 가뜩이나 신문으로 무거운 자전거가 브레이크도 잘 안 들어 비탈길에서 내려오며 조마조마하던 일. …….
옆지기가 아기를 배기 앞서 둘이 장대비를 주룩주룩 맞으면서 한 시간 남짓 골목마실을 하던 일도 떠오릅니다. 물에 빠진 새앙쥐 꼴이 되면서도 빗길을 느끼며 걷는 골목 맛은 다른 그 어느 날 느끼던 골목 맛하고 견줄 수 없었습니다. 온몸 가득 빨려들고 스며드는 빗줄기로 몸과 마음과 눈을 한꺼번에 씻어내곤 했습니다.
이달부터 옮겼는데, 우리 살림집과 도서관이 깃든 오래된 건물은 수도가 샙니다. 이리하여 물값이 삼사만 원 훌쩍 넘게 나오곤 했습니다. 집임자는 줄줄줄 새는 물은 아랑곳하지 않았고, 달삯에서 이 애먼 물값을 덜어 주지도 않습니다. 고쳐 주기는커녕, 물값을 덜어 주기는커녕. 돈이 많은 사람들은 다 이 모양인가 싶으면서도, 돈이 많아서 이 모양이라기보다 사람된 길을 걸어 본 적이 없기 때문이 아니냐 싶었습니다. 참 사랑을 나누고 참 믿음을 나누어 본 적이 없기 때문이 아니랴 싶었습니다.
당신 사는 아파트에서 물이 샌다면 어찌 했겠습니까. 그 애먼 물값이 어찌 되는지 얼마나 가슴 아프고 괴로웠겠습니까.
그러나 물값만 아깝지 않습니다. 그런 물값이야 내주지요 뭐. 사만 원? 아주 짜증스러운 값이지만 내주지요 뭐. 그렇지만, 이 물값보다도 '애써 수도국에서 걸러낸 물이 아무 보람 없이 버려진다'는 데에서 안타깝고 슬픕니다. 서울 청계천에서 전기로 수도물을 끌어와서 흘려버리는 일하고 똑같잖아요. 아무 데에도 안 쓰고 흘려보낼 물을 뭣하러 수도국에서 걸러내어 수도관을 타고 흐르게 합니까. 물 자원이 아깝게 버려지는 일을 그치게 하는 데에 마음을 기울일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나라밖에는 물 한 모금 없어서 목말라 죽는 사람들이 있는데, 건물임자는 떼부자이면서도 '새는 물관' 고치는 몇 푼에 돈을 들이지 않으니, 달삯을 얹혀 사는 사람이 어떻게 손을 쓰나요.
.. 빗물 이용은 빗물이 더러워지기 전에 받아서 사용하자는 것이고, 빗물 '재이용'은 더러워진 빗물을 정수 처리한 다음에 사용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때 더러워지기 이전의 빗물을 이용하는 데는 거의 돈이 들지 않습니다 … 우리 나라는 물 부족 국가가 아니라 물 관리를 잘 못하는 나라라고 해야 맞습니다 … 환경부의 관련법은 수질이나 물 절약과 관련된 문제들을 중심에 놓고 다루고 있지만, 가뭄이나 산불 방지, 홍수는 다루지 않습니다. 건교부의 관련법에서는 홍수만을 위주로 다룰 뿐, 하천 환경을 좋게 하려는 의지는 보이지 않습니다. 자연재해특별법 역시 자연재해만을 한정시켜 다루고 있지요. 그것과 연관된 다른 사안들은 고려하고 있지 않습니다 .. (29∼30, 37, 53쪽)
저는 늘 손빨래를 합니다만, 손빨래를 하면 물을 아주 조금만 써도 넉넉합니다. 비누거품 헹군 물을 잘 갈무리해서 걸레를 빨아도 되고, 새로 나온 빨래를 담가 놓은 다음 애벌헹굼을 할 때에 쓰면 됩니다. 그렇게 애벌헹굼을 조금씩 하면서 새 빨래 비누거품을 가시고, 세벌이나 네벌헹굼쯤 될 때에 새 물을 받아서 헹굽니다. 그리고 이렇게 세벌이나 네벌쯤 되는 헹굼물은 다시 갈무리해서 다음 빨래를 할 때에 씁니다. 어떻게 보면 버려지는 물이 하나도 없는 셈이라 할 텐데, 이렇게 헹군 물로는 씻는방 바닥이나 벽을 닦은 다음에 개수구로 흘려보냅니다. 또는 씻는방 거울을 닦는다든지.
정 몸이 힘들다면 세탁기를 써야 합니다. 그러나 몸이 힘들지 않으면서 세탁기를 쓰는 사람은 죄를 짓는 셈이 아닌가 싶습니다. 또한, 물을 허투루 내버리는 셈이 아니랴 싶습니다. 더욱이, 기계 아닌 우리 몸을 써서 빨래를 하면 손발 운동이 착착착 잘 됩니다. 따로 헬스클럽 같은 데에 돈 갖다 바치면서 다닐 까닭이 없습니다. 헹굼물로 걸레를 빨아 방바닥을 훔치고 집치우기를 하면 더더욱 운동이 잘 됩니다. 집에서 빨래 한 가지만 하여도 우리 몸에는 군살이 붙지 않아요. 여기에다가 자전거로 일터나 학교를 오간다면 우리 몸매는 아주 날렵하고 훌륭히 가꿀 수 있을 테지요.
저는 자전거를 타니 자전거를 닦습니다만, 차를 닦는 분들은 어마어마하게 물을 써대며 차 껍데기를 번쩍번쩍 빛나게 합니다(자전거를 닦을 때에는 물이 거의, 아니 한 방울도 안 듭니다). 그런데 차 껍데기는 왜 번쩍번쩍 빛나도록 닦아야 하나요. 비오면 알아서 닦이는 차 껍데기 아닌가요. 애먼 물을 따로 들여서 써야 하나요. 차 껍데기를 얼마나 깨끗하게 해야 하고, 우리는 수도물을 얼마나 많이 써야 하나요.
.. 빗물을 모으고 관리하는 이유는 내 필요와 목적에 따른 것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남을 위해, 즉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기도 하니까요. 만일 내 집 지붕에 떨어진 빗물을 모으지 않으면, 하류에 있는 다른 사람 집은 넘치는 빗물로 잠겨 버릴 것입니다 .. (49쪽)
우리 나라는 기술이나 과학이나 또 무엇무엇이나 거의 '가장 앞(최첨단)'을 달린다고들 합니다. 온 나라에 새로 짓는 아파트를 보면 갖가지 전자시설이 넘쳐납니다. 그런데 이 수많은 시설 가운데 '전기 없이 쓸' 수 있는 시설은 무엇이 있을까 궁금합니다. '기름 없이 쓸' 만한 시설은 한 가지라도 있는가 알쏭달쏭합니다. 계단을 타는 사람도 없는데 20층 30층까지 계단을 놓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적어도 옥상이든 벽이든 창문 어디에든 햇볕을 받아들여 전기를 뽐아낼 수 있도록 할 수 있어야 하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집집마다 들어갈 전기까지는 아니라 하여도 승강기나 골마루 등불쯤은 햇볕전지판으로 갈음할 수 있을 테니까요. <지구를 살리는 빗물의 비밀>이라는 책에도 얼핏 나오지만, 아파트 옥상에 '빗물 모음통'을 마련해, 집집마다 뒷간 물 내리는 데에 쓴다면 물이며 자원이며 전기며 한껏 줄이거나 아낄 수 있습니다.
.. 우리 나라는 여름에 잠깐 집중해서 비가 오는데 여기에 맞춰 크고 비싼 시설을 만드는 것이 과연 좋은 모습일까요? … 대개, 계속해서 물에 잠기는 지역에 거대한 빗물 펌프장을 만드는데 이때 돈이 수백억 원이나 들어갑니다. 그런데 이 엄청난 돈을 들인 시설을 일 년에 며칠이나 사용합니까? … 비워 두는 날이 많은 댐을 만들기 위해 엄청난 비용을 쏟아붓고, 댐을 짓기 위해 살던 곳이 물에 잠기게 된 주민들의 원망을 듣습니다 … (117, 131∼132쪽)
그렇지만 나 몰라라처럼 되어 있습니다. 내 알 바 아니라는 듯 짜여 있습니다. 내 돈 내가 쓴다는 생각으로 굳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입을 다물어 버리고 맙니다. 아예 등을 돌리는데 무슨 말을 할 수 있나요. 귀를 막아 버리고 눈을 감아 버리는데 어찌 손짓 발짓 하나요. 돈이 넘쳐서 펑펑 쓴다는데 어떻게 말리는가요.
(3) <지구를 살리는 빗물의 비밀>이라는 책
서울대학교에서 건설환경공학부 교수로 일하며 빗물연구센터 소장을 맡고 있는 한무영 님이 책 두 권을 한꺼번에 펴냈습니다. 하나는 <빗물을 모아쓰는 방법을 알려드립니다>이고, 다음 하나는 <지구를 살리는 빗물의 비밀>입니다. 한무영 님은 그동안 <수돗물의 미생물학>과 <WHO 음용수 수질 가이드라인>과 <정수시설의 종합설계 및 유지관리>와 <하수와 우수의 관리를 위한 환경친화적 기술> 같은 책을 펴내 왔습니다.
저는 이분이 해 온 일이 무엇인지 잘 모르고, 빗물을 살피는 학자가 있음도 처음 알았는데, 한무영 님이 낸 책 두 가지를 읽으면서 '지구 물 문제'에서 빗물 문제를 빼놓고는 아무것도 모르는 셈이겠다고 느꼈습니다. 또한, 빗물을 제대로 알아가는 길은 물을 제대로 알아가는 길이며, 물을 제대로 알아갈 때 우리 삶터를 좀더 또렷하게 받아들이거나 알아챌 수 있다고 느꼈습니다.
빗물이 깨끗한 물인지, 깨끗하지 않다면 왜 깨끗하지 않은지, 빗물이 지저분하다면 왜 지저분한지, 그리고 지저분하면 얼마나 지저분한지를 '제대로 모르'면서 살아왔다고 느꼈습니다.
.. 서울대학교에 새로 지은 기숙사에는 200톤 규모의 빗물 저장 시설을 본보기로 만들어 사용하고 있습니다. 약 5개월 동안 날마다 6톤 정도의 물을 사용했는데 그 가운데 1000톤의 물을 화장실 물로 사용해 수도요금을 크게 줄였습니다. 사무용은 1톤에 1100원을 부담하므로 달마다 22만 원으로 쳐서 5개월 동안 11만 원을 절약한 것이지요. 만약 이 물을 수도요금이 1.6배 정도 비싼 가정용으로 사용했다면 약 200만 원 정도 줄어든 셈입니다 … 수돗물을 아끼면 개인은 수도요금을 적게 내는 이득이 있는데, 사회는 더 큰 이득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즉 빗물을 이용하면 댐의 취수량이 줄고, 물을 정수 처리하는 양이 줄어 그 비용 또한 절감되며, 운반비용 역시 줄일 수 있습니다 .. (86∼87쪽)
오늘날 삶터에서는 무엇이든지 '자원'이라 하고, 자원은 '관리'를 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리하여 정부에서는 사람도 '자원'으로 다루려고 교육부를 '교육인적자원부'라는 이름으로 고치기까지 했습니다. 이를 놓고 적잖은 사람들이 거세게 나무랐지만 말마디 나무람으로 그치고 더 크게 나아가지 못했으며, '교육인적자원부'라는 이름을 바꾸어 놓지 못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이런 이름이야 어떻게 붙든 큰 일은 아닙니다. 얄딱구리한 이름이 붙어 있더라도 교육 행정을 옳고 바르게 할 수 있으면 되니까요. 사람이 사람다이 살아갈 수 있는 기틀을 닦고, 사람이 사람을 사랑스레 바라보고 껴안고 어깨동무할 수 있게끔 가르치는 터전을 세우면 되니까요.
그런데 사람을 자원으로 여기며 다루는 우리 나라는 교육 기틀을 제대로 다스리고 있는 나라라 할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사람부터 사람답게 다스리고 있다는 생각을 하기 어려운데 사람 아닌 숱한 자원은 얼마나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껴안으면서 즐기고 돌보고 가꾸는 길을 걷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 우리 나라의 연평균 강수량은 약 1283밀리리터 정도인데 대부분 여름 장마철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여름에 전체 강수량의 약 35퍼센트인 400억 톤의 빗물을 그대로 흘려보내는 것이지요. 이 아까운 빗물만 잘 모아 두어도 섬과 산간 지역의 물 부족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될 것입니다. 반면 독일은 연평균 강수량이 700밀리리터이지만, 평소에 독일사람들은 물이 부족하다는 것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왜냐하면 비가 일 년에 걸쳐 고르게 오기 때문이며, 이를 충분히 모아 활용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강물은 늘 넉넉하게 흐르고 지하수 또한 충분히 확보되어 있지요. 독일의 집집마다 빗물을 받아 쓰는 모습은 너무나 일상적인 일입니다 .. (42쪽)
우리 삶을 돌아봅니다. 우리들 하루하루를 돌아봅니다. 우리가 날마다 먹고 마시고 쓰고 버리는 매무새를 돌아봅니다. 여느 사람들 집부터 일터까지, 학교와 관공서까지, 골목과 큰 찻길까지, 우리들 살림살이는 어찌 이루어져 있는가 돌아봅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보금자리와 마을을 어떻게 추스르고 있는지 돌아봅니다.
독일에서는 집집마다 빗물을 받아 쓰는 모습이 아주 '흔한 삶으로 자리잡았다'고 하는데, 독일사람은 빗물 받아서 쓰기에서만 '훌륭한 삶매무새'를 보여주지는 않을 테지요. 다른 자리에서도, 다른 삶자락에서도 이와 마찬가지 매무새를 보여주고 있을 테고요.
그리고, 우리 나라는 빗물 받아서 쓰기에서만 젬병이 아니라고 봅니다. 우리 나라는 다른 자리에서도, 다른 삶자락에서도 젬병입니다. 거의 날마다 터지는 비정규직 문제나 이주노동자 문제만 보아도 쉬 알 수 있습니다. 입시지옥을 보아도 손쉽게 알 수 있습니다. 돈에 따라 계급이 갈리고, 가방끈에 따라 신분이 나뉘는 사회 얼거리를 보아도 넉넉히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빗물을 알뜰히 받아서 쓰기 앞서, 먼저 참다운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생각합니다. 아니, 우리 스스로 먼저 참다운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다면 빗물이야 마땅히 알뜰히 받아서 쓰고자 애쓰지 않겠는가 생각합니다.
지구를 살리는 빗물의 비밀
한무영 지음,
그물코,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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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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