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이 코앞에 닥친 2004년 여름날, 그냥 앉기에도 힘이 들어 왼손으로 문고리를 잡고 버티어 계셨습니다.
최종규
또한, '책으로 만나던 사람을 눈으로 만나자'가 아니라, '책을 읽으며 마음으로 만나던 사람을 눈으로 마주보며 마음으로 만나자'가 될 때에는, 서로 얼굴을 마주보아도 좋고 마주보지 못한 채 책과 책으로 이은 만남으로만 남아 있더라도 좋습니다.
두 번 찾아뵈며 찍어 놓은 사진 몇 장을 오랜만에 더듬어 봅니다(제가 찾아간 까닭은, 다른 분들이 찾아갈 때 할아버지 사진을 찍어서 남겨 놓아야 한다는 부탁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사진기자로 따라간 셈입니다). 그때 할아버지는 당신 얼굴은 찍히고 싶지 않다고 넌지시 손사래를 치면서, 그보다는 다른 데로 손길을 내밀었습니다. 할아버지 당신이 머리를 써서 기막히게 만들었다는 '만년 빨래집게(굵은 전기줄을 알맞게 잘라서 꼬아 놓은 것)'를 찍으라는 둥, 박하풀을 찍으라는 둥, 주전자를 찍으라는 둥 …….
그 무렵뿐 아니라 다른 분(어른)들이 찾아갈 때에도 할아버지는 으레 비슷비슷한 말씀을 남겼습니다. "동화 몇 편 썼다고, 그거 대단하게 보면 안 돼요"하는 말씀을 자주 했는데, 동화 할아버지를 "동화 몇 편 썼다고 대단하게 볼" 구석이 없다기보다, 동화 할아버지는 우리 할아버지와 똑같은 사람이며, 동네 할아버지와 매한가지인 사람임을 느끼라는 뜻이 아니었는가 생각합니다. 이 세월 저 세월 견디고 부딪히고 부둥켜안아 오면서 머리카락 한 올 두 올 빠지고 허옇게 세어 버린 다 같은 사람임을 잊지 말라는 뜻이 아니었는가 곱씹습니다. 스스로한테 주어진 삶을 고맙게 사랑하고 반갑게 끌어안을 때에는 누구나 동화이든 소설이든 빛고운 문학을 맺을 수 있고, 굳이 책이라는 물건으로 담아내지 않더라도 이웃이나 식구나 동무하고 오순도순 나눌 수 있다는 뜻이 아니었을까 헤아립니다.
(2) 권정생 할아버지를 말하는 그림책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