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만여 목숨 앗아간 대지진 터가 '관광지'?
'지진비즈니스'에 가려진 희생가족의 눈물

[해외리포트] 중국 쓰촨대지진 1년, 무엇이 남았나

등록 2009.05.13 12:45수정 2009.05.13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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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2 지진으로 목숨을 잃은 동포들을 추모합니다.' 시체조차 찾을 수 없는 8000여명의 주민들이 묻힌 베이촨현청의 공동묘역.
'5.12 지진으로 목숨을 잃은 동포들을 추모합니다.' 시체조차 찾을 수 없는 8000여명의 주민들이 묻힌 베이촨현청의 공동묘역. 주준홍

"단숨에 건물이 무너지면서 선생님들과 수많은 학우들이 죽었습니다."

주준홍(17·여)은 당시 상황을 떨리는 목소리로 회상했다. 2008년 5월 12일 2시 28분 베이촨(北川) 중·고등학교 1학년생이었던 주는 마침 운동장에서 체육수업 중이었다. 주는 "갑자기 수십 초 동안 지구가 반쪽 나듯 땅이 심하게 요동치고 뒤흔들려 맨땅에서조차 몸을 가누지 못했다"면서 "눈앞에서 2동 5층 교사가 폭격 맞은 듯 무너지고 탕자(唐家)산에서 돌과 모래가 학교를 덮쳤다"고 말했다.

주는 다행히 가벼운 찰과상만 입고 살아났다. 하지만 건물 가까이 있던 같은 반 학생 몇몇은 단발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폐허더미 속으로 사라졌다. 당시 베이촨 중·고등학교에 있던 교사와 학생은 2900여 명. 베이촨에서 160㎞ 떨어진 원촨(汶川)현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한순간에 1400여 명의 어린 학생들이 숨졌다.

학우들을 잃은 슬픔도 잠시, 주에게 더 큰 비극이 닥쳐왔다. 현 소재지에서 8㎞ 떨어진 산비탈 밭에서 일하던 어머니와 작은 아버지가 산사태에 파묻혀 사망한 것이다. 아버지는 기적적으로 흙더미를 파헤쳐 나와 살아났지만, 머리와 어깨에 중상을 입어야 했다.

죽은 자와 산 자... 대재앙의 흔적

어제 중국 쓰촨(四川)성 베이촨강(羌)족자치현 내 모든 가정은 죽은 가족을 기리는 제사를 한날한시에 지내야 했다. 1년 전 진도 8의 강진으로 집집마다 한두 명은 가족 곁을 떠났기 때문이다. 이 마을 3만여 주민 중 1만5600여명이 사망했다.

이른 아침 주준홍도 할머니, 아버지 등 살아남은 가족들과 함께 베이촨현청 입구에 조성된 공동묘역에 가서 간단한 제사를 지냈다. 아직까지도 시체를 찾을 수 없는 어머니와 작은 아버지 외에 외삼촌, 외숙모, 사촌동생 등 친척들의 제사까지 함께 지내야 했다.


같은 날 오후 2시 28분 중국 전역에서는 쓰촨대지진으로 숨진 8만6600여 명의 희생자들을 기리는 추모행사가 열렸다. 진앙지 원촨현 잉슈(映秀)진에서는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을 비롯해 지진 구조를 도운 세계 27개국 외교사절과 국제기구 대표, 리커창(李克强) 국무원 부총리 등이 참석한 가운데 추모식이 거행됐다. 이 추모식에는 희생자 발굴 및 복구 사업을 지원했던 우리나라를 대표해 신정승 주중 한국대사도 참석했다.

주준홍이 다니는 베이촨 중·고등학교의 신축공사장에서도 숨진 교사와 학생들을 추모하는 추모식과 함께 신 교사 착공식이 거행됐다.


 지진으로 폐허가 된 유령도시 베이촨현. 수천 구의 시체가 건물더미 밑에 파묻힌 채 썩어가고 있다.
지진으로 폐허가 된 유령도시 베이촨현. 수천 구의 시체가 건물더미 밑에 파묻힌 채 썩어가고 있다. 주준홍

희생자만 8만6600여명.. 13억 중국인이 모두 체감한 지진

지난해 5월 12일 쓰촨성을 강타한 대지진은 중국 대륙 전체를 공포로 몰아넣은 최악의 자연재해였다. 중국 서남부 구석에서 일어난 지진은 수천㎞ 떨어진 베이징, 상하이, 홍콩 등에서도 진도가 느낄 정도로 강력했다.

이달 초 중국정부가 발표한 공식 희생자 수는 사망자 6만9225명, 실종자 1만7939명, 부상자 37만4640명. 쓰촨성은 181개 현 가운데 모두 98개 현에서 사망자 및 실종자가 발생했다. 지진으로 인한 재산피해는 수백조 원에 달한다.

쓰촨대지진의 희생자 수는 33년 전 발생한 탕산(唐山)대지진보다는 적다. 1976년 7월 28일 새벽 허베이(河北)성 탕산시에서 진도 7.8의 강진이 일어났다. 인구 70만 명의 작은 공업도시는 순식간 폐허로 변했다.

당시 중국은 문화대혁명 막바지였다. 실권을 잡았던 4인방은 지진 발생 사실을 숨기고 탕산 일대를 철저히 통제했다. 대다수 중국인들은 탕산의 비극은 물론 지진이 일어났는지도 몰랐다. 3년 뒤 중국정부는 탕산대지진으로 24만2769명이 숨지고 16만4851명이 다쳤다고 공식 발표했다.

반면, 쓰촨대지진은 13억 중국인이 모두 진동을 느껴야 했다. 진도는 1950년 8월과 2001년 티베트에서 일어난 규모 8.5와 8.1에 이은 세 번째였지만, 직접적인 피해지역만 10만㎢에 달할 정도로 엄청났다. 중국정부는 탕산대지진 때와 달리 기민하게 대응했다.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는 지진 발생 1시간 만에 전용기를 타고 쓰촨으로 달려갔다. 뒤따라 온 후 주석은 원 총리와 함께 원촨, 두장옌(都江堰), 베이촨 등 재해 지역을 직접 찾아다니며 인명 구조작업을 진두지휘했다. 사스 발생 시 언론 보도를 통제했던 것과 달리 적극적으로 정보를 공개해 유언비어가 나도는 것도 막았다.

1년이 지난 지금 쓰촨성은 표면적으로 대지진의 상처를 털어내고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예로부터 쓰촨은 '천부지국'(天府之國)이라 불릴 만큼 문물이 풍부한 환경에 살기 좋은 땅이다. 수도 청두(成都)의 번화가는 언제 지진이 일어났는지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쇼핑 인파가 가득 메우고 있다.

지난 1분기 중국 경제성장률이 6%로 떨어진 것과 달리 쓰촨성 정부는 올해 성장 목표를 9%로 잡았다. 중국정부는 내년까지 쓰촨성에 1조7500억 위안(한화 약 323조7500억원)의 지진 복구자금을 투입해 사회기반시설을 조성할 계획이다.

 한 임시병원에서 지진으로 인해 머리를 다친 부상자가 치료를 받고 있다. 지금도 수천 명에 달하는 지진 부상자가 병원에 입원한 채 그 날의 아픔을 달래고 있다.
한 임시병원에서 지진으로 인해 머리를 다친 부상자가 치료를 받고 있다. 지금도 수천 명에 달하는 지진 부상자가 병원에 입원한 채 그 날의 아픔을 달래고 있다.모종혁

한쪽에선 '지진 비즈니스', 이재민들은 여전히 고통의 나날

쓰촨성은 지진 발생지라는 불안한 이미지를 불식시키고 관광대국으로써의 옛 명성을 되찾기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 4월부터 청두시 정부는 관광객 유치를 위해 외지 주민과 외국인에게 모두 1500만 장의 판다 골드카드를 발급하고 있다. 쓰촨을 상징하는 판다가 전면에 새겨진 이 카드를 신청하면, 올 한 해 내내 청두와 그 주변의 대표적 관광 명소 11곳에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 이는 금액으로 환산할 때 약 600위안(약 11만원)에 달한다. 쓰촨성 정부도 5월 한 달 동안 성내 모든 관광지의 입장료를 반액으로 깎아주고 있다.

지진 피해지를 이용한 '지진 비즈니스'도 호황을 누리고 있다. 주말이면 진앙지 원촨 잉슈진과 희생자가 가장 많은 베이촨에는 지진의 참상을 경험하려는 관광객으로 장사진을 이룬다. 일부 마을에서는 밀려드는 관광객으로 숙박업소와 식당이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예상치 않은 관광객들이 몰려오자, 베이촨현 정부는 무려 23억 위안(약 4255억원)을 들여 지진유적박물관을 건립하기로 했다. 총 8㎢ 면적에 박물관과 지진 보호구역, 언색호 치수시설, 교육연구센터 등을 건설하는 이 대규모 공사는 언론과 누리꾼으로부터 "지진 피해지를 관광 오락단지화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고 있다.

돈벌이에 나선 지방정부와 달리, 지진 희생자 가족들은 여전히 고통과 슬픔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2000여 명이 사망한 스팡(什邡)시 잉화(鎣華)진 주민 리광진(37)은 "후 주석과 원 총리가 연이어 찾아와서 올해 안에 새 집을 지어  입주시켜 주겠다고 했는데 여전히 조건이 열악한 임시가옥(板房)에서 지내고 있다"며 "다니던 공장이 폐허가 되고 농사칠 땅도 황폐해져 앞으로 먹고 살 일이 막막하다"고 하소연했다.

잉화진에서는 조업 중이던 화공공장이 파괴되면서 유독물질이 유출되어 지금도 방제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한국에서 온 40여명의 중앙소방대 구조대원이 혼신의 구조작업을 벌인 곳이기도 하다.

스팡시내에서 잉화진으로 들어가는 도로는 모두 복구됐지만, 전기·수도 등 주민 편의시설은 여전히 공사 중이다. 유독물질을 내뿜었던 공장 철거도 얼마 전에야 간신히 끝냈다.

리는 "정부가 관공서 복구에 우선순위를 두어 건설하고 있다"며 "대다수 이재민이 할 일 없이 정부 지원금에만 기대어 근근이 생활하고 있어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고 전했다. 초등학교에서 수업 중이던 딸을 잃은 그는 "이제는 흘릴 눈물조차 말라 버렸다"면서 "지금도 딸을 상실한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아내가 수시로 정신을 놓는다"고 말했다.

 폭격 맞은 듯 잿더미로 변한 잉화진. 파괴된 화공공장에서 유출된 유독물질로 인해 지진 후 수일동안 출입 자체가 봉쇄됐었다.
폭격 맞은 듯 잿더미로 변한 잉화진. 파괴된 화공공장에서 유출된 유독물질로 인해 지진 후 수일동안 출입 자체가 봉쇄됐었다.모종혁

부실공사로 희생된 학생 5335명의 원혼은 언제 달래나

작년 쓰촨대지진은 오후 시간에 발생해 한창 수업 중이던 학생들의 피해가 컸다. 지난 7일 쓰촨성 교육청은 지진으로 사망하거나 실종된 학생 수가 5335명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그동안 중국정부는 사망한 학생 부모들의 거듭된 요구에도 불구하고 희생 학생의 수를 한 번도 공개하지 않았다. 지진 발생 뒤 학교와 기숙사 건물 9145여 곳이 붕괴되면서 건물 부실공사의 의혹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실제 적지 않은 지방정부는 학교 건축과정에서 철근을 빼돌리거나 질 낮은 시멘트를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방정부의 미지근한 대응이 지속되자 희생 학생 부모들은 행동으로 나섰다. 작년 12월 지진으로 126명의 어린 학생이 숨진 푸신제2초등학교 학부모 57명은 더양(德陽)시 인민법원에 지방정부와 건설사를 상대로 배상 소송을 냈다. 지진으로 자녀를 잃은 학부모가 처음 제기한 소송이었지만, 지방법원은 곧바로 기각 결정을 내렸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한 학부모의 전언을 통해, "지방정부가 부모들에게 부실공사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경우 8800달러의 현금과 은퇴연금을 별도로 지급하겠다는 제안을 했다"고 폭로했다.

수조원이 걷힌 지진 구호성금의 불투명한 집행도 이재민의 원성을 사고 있다. 중국정부는 희생자 수와 피해규모를 추산해 구호성금을 투명하게 집행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주민들은 일부 공무원들이 구호성금으로 고급 밴을 구입하는 등 돈을 유용한 여러 의혹을 끊임없이 제기하고 있다. 지난 2월 18일 멘양(綿陽)시 영취안 마을의 이재민 수백 명은 구호성금이 제대로 집행되지 않음을 발견하고 집단시위를 벌였다. 이 과정에서 무장한 경찰과 충돌해 1명이 숨지고 10여명이 부상하기도 했다.

지난 4일 국제사면위원회(엠네스티)는 뉴스 브리핑에서 "지진 생존자들이 학교 부실공사나 관리 부패문제를 제기할 경우 협박이나 구금을 수시로 당한다"고 밝혔다. 엠네스티는 "이재민뿐만 아니라 피해 주민들을 지원하는 사회운동가나 변호인들도 협박을 받고 있다"면서 "일부는 국가안보와 공공질서를 해쳤다는 혐의로 재판마저 받는다"고 지적했다.

지방정부와 공안은 외국 언론의 취재를 방해하고 일부 지역에서는 출입조차 원천 봉쇄하고 있다. 지진 희생 가족들의 슬픔과 고통은 깊어만 가지만, 중국정부는 이들의 눈물까지 닦아 주지 않고 있는 것이다.

 수백 명의 어린 학생들이 죽어간 두장옌시의 쥐위안(聚源)중·고등학교. 현재 적지 않은 지진 피해지 학교가 일반인의 출입은 고사하고 사진 촬영마저 금지되고 있다.
수백 명의 어린 학생들이 죽어간 두장옌시의 쥐위안(聚源)중·고등학교. 현재 적지 않은 지진 피해지 학교가 일반인의 출입은 고사하고 사진 촬영마저 금지되고 있다.모종혁

#쓰촨대지진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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