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자작나무숲하얀 자작나무 새순이 내뿜는 연초록빛과 '저요! 저요!' 하면서 화르르 피어나는 철쭉이 내뿜는 연분홍빛이 서로 어울려 한 폭 풍경화로 걸려 있다
이종찬
목덜미 부드럽게 쓰다듬어주는 달착지근한 봄바람 간밤, 오랜 벗들과 돈가뭄 타령을 하며 술을 많이 마신 탓에 늦잠을 자다가 '봄빛 좋은 봄날 휴일을 이렇게 잠으로 보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부스스 일어난 시각은 오전 11시. 문득 "4월 끝자락에서 오월 중순까지가 미술관 자작나무숲이 가장 아름다운 때"라는 박도 선생의 말이 떠올라 얼른 '아점'을 챙겨먹고 집을 나섰다.
4월 26일(일) 오후 1시 5분. 동서울터미널에서 안흥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올해 들어 안흥을 참 자주 간다. 첫 번째는 안흥 찐빵 취재를 위해, 두 번째는 횡성 쇠고기 취재를 위해, 세 번째는 손두부집 취재를 위해, 네 번째는 자작나무 수액과 횡성 막국수 취재를 위해 안흥을 찾았다. 이번이 다섯 번째 안흥 나들이다.
이번 안흥 나들이는 취재여행이라기보다 힘겨운 세상살이에 지친 나그네 몸과 마음을 대자연이 내뿜는 초록빛 숲과 갖가지 고운 빛을 내뿜고 있는 꽃들에게 포옥 안기게 하기 위한 여행이다. 나그네를 태운 고속버스가 고속도로에 올라서자 고속도로 주변도 온통 연초록빛 숲과 연분홍, 노랑, 자주빛을 띤 꽃세상이다.
세상이 이렇게 곱고 아름답게 변한 줄도 모르고 회색빛 도심에 갇혀 신세타령이나 하면서 밤새 술이나 마시고 있었던 나그네. 그 모습이 참 부끄럽고 한심스럽게 여겨진다. 서울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이렇게 향긋하면서도 달착지근한 봄바람이 목덜미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고, 대자연이 순식간에 지친 몸과 마음을 다독여주는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