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과 허탈. 한국을 방문한 아사히 TV 기자의 표정은 취재를 할 수록 심각해졌다.
김현준
다음 날(28일) 저는 아사히 TV 취재진과 실업문제 파악을 위한 동행에 나섰습니다. 취재진은 구직자의 조건을 특별한 경력이 없는 고졸의 20대 중반 청년으로 설정했는데 우연히 제가 그 조건에 맞아떨어졌죠.
대학 갈 돈이 없던 저는 졸업 후 시작부터 비정규직이었습니다. 시나리오를 썼으니까요. 작가나 충무로 스텝들 모두 비정규 계약직입니다.
고등학교나 대학 졸업 후 바로 현장에 뛰어든 대부분은 일반 직장 경험이나 경력이 전무한 상황이고요. 더군다나 제작 중인 작품이 중단되면 분명히 일은 했는데도 경력으로 쓰지 못합니다.
저의 경우엔 작년부터 소속 작가와 연출부 일을 하려고 했으나 회사가 제작비를 마련하지 못해 모두 다 물거품 되고 아무런 경력도 없는 상황.
공부하고, 습작했던 수년의 시간은 이력서에 쓰지 못합니다. 과연 저 같은 사람도 정규직이 될 수 있을까요? 꿈이 너무 큰 것 같아 비정규직, 아니 최저임금도 못 받는 알바라도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오후 내내 '아사히 TV' 취재진과 함께 직업소개소와 인력 시장을 찾아 서울 일대를 돌아다녔습니다. 그런데 가는 곳마다 돌아온 답변은 그런 사람에게는 현재 일자리가 없다는 겁니다. 이번 달 방세 낼 돈도 없기 때문에 간절히 애원해도 상황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더군다나 카메라를 들이대는 순간 거의 모든 곳에서 방송취재를 거부했고요. 허탈함과 충격에 빠진 우리는 건대 후문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집회가 열린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그곳으로 향했습니다. 현장의 이들은 가난을 방치하고 비정규직과 실업을 양산한 정부를 향해 분노를 토해냈습니다. 곳곳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퇴진을 외치는 깃발과 플래카드도 쉽게 볼 수 있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