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의 계곡- 카트만두 계곡 여행기

세계문화유산 하누만 도카 더르바르 광장에서-1

등록 2009.05.05 09:29수정 2009.05.09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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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누만 도카 더르바르 광장

 

12개의 주요 사원과 힌두와 불교 신전, 왕궁 등으로 구성된 하누만 도카 더르바르 광장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다. 주로 12~18세기에 건축되었으며, 대부분 섬세한 목각 건축물들로 구성된 이곳은 종교 문화적 유산이자 네팔인들의 삶의 터전으로 기념품을 파는 상가로 혹은 식당으로, 일반인들의 숙소로 이용되고 있다.

 

건축물들은 오래돼서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마모되거나, 훼손된 부분들이 쉽게 눈에 띄기도 하지만, 사람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는 대단히 섬세하면서도 화려한 목각 예술의 면목을 볼 수 있다.

 

광장에 길게 늘어선 노점에서는 골동품인지, 모조품인지 모르지만 여러 종류의 칼, 조잡하게 녹이 슨 세공품들과 라마불교에서 볼 수 있는 마니차, 검은 색 암모나이트 화석들을 깔아놓고 호객하는 호객꾼들이 처음에는 무조건 일본어로 흥정을 걸어오는 모습에 괜히 심술이 나기도 한다.

 

광장을 지나 사원들이 밀집한 지역으로 들어가면 익숙지 않은 이방인에게는 머리를 아프게 할 정도의 짙은 향내가 진동한다. 그곳에선 앞을 보지 않고 걷다가 어깨를 부대끼는 일이 예삿일일 정도로 인파로 붐볐다.

 

그러한 인파들 속에서 호객꾼들과 구도승들보다 설치는 건 땟국이 질질 흐르는 무리를 지어 다니는 아이들이다. 이들은 광장 곳곳을 배회하며 관광객들에게 한 끼 식사를 구걸하며 발등에 머리를 조아리고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관광객의 연민을 이용하여 몇 푼 얻어낸 아이들은 담배를 피며 다른 먹잇감을 찾아 총알 같이 달려간다. 아이들이 구걸을 한 돈으로 담배와 마약들을 하기 때문에 이곳에선 사원에 돈을 던지는 것은 환영하지만 아이들에게 돈을 주는 것을 법으로 금하고 있다고 한다.

 

네팔 정치 경제 현실

 

네팔은 수도인 카트만두에 전체 인구의 6~10%가 산다고 한다. 왕정 당시엔 지방에서 거둬 들인 세금을 수도인 카트만두에만 쏟아 붓는다고 국민들의 원성이 자자했다고 한다. 그런 호사를 누렸던 카트만두지만, 도로와 통신시설 같은 사회간접자본만 놓고 보면 우리나라의 군소도시에도 미치지 못하는 남루한 도시다.

 

네팔은 지금 경제와 정치 모두 몸살을 앓고 있다. 수치상으로는 국가 GDP의 2%라고 하지만, 카트만두만 놓고 보면, 가장 큰 수입원이라 할 수 있는 관광산업이 세계 경제 침체의 영향으로 줄어들고 있고, 국가 GDP의 60%를 차지하는 해외로부터의 송금 역시 줄어들고 있다. 게다가 국가 개발을 위한 지출 예산의 60%를 차지하는 ODA(해외공적원조)도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라고 한다.

 

이처럼 국가 개발을 해외 원조에 의지하다 보니, 외세의 정치적 입김이 세지 않을 수 없고, 이 과정에 부패가 만연한 것이 현실이라고 한다. 이처럼 경제가 죽을 쑤는 마당에 정치는 작년에 왕정이 폐지된 후, 차츰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하지만 공산주의자들인 마오이스트들의 영향력 확대에 대해 불안감을 갖고 있는 국민들이 점차 늘어가고 있다고 한다.

 

그런 이유인지 모르지만, 네팔 왕정이 몰락한 후, 민주정권이 들어서면서 난민들이 늘어나는 기현상이 벌이지고 있다. 난민은 전쟁이나 인권·종교·사상·정치적 견해차 등으로 본국에서 박해를 받아 도피한 사람으로, 정치 종교적 자유를 억압받는 비민주 혹은 독재국가 출신들이 많기 마련이다.

 

우리나라는 1992년 상호주의를 조건으로 난민협약에 가입했다. 우리나라에도 네팔 출신 난민들이 많이 들어와 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작년말 기준으로 2100명여 명의 난민 신청자 중 네팔 출신이 380여 명으로 가장 많이 차지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네팔 출신이 난민 인정을 받은 적은 없다.

 

해외 원조와 관련하여 재미있는 것은, 일본과 중국은 랜드마크가 될 법한 건축물 혹은 굵직한 도로 건설 등을 통해 네팔을 지원하고 있는 반면, 인도는 주로 석유 등의 에너지 공급을 조절하면서 네팔을 옥죄기도 하고, 풀어주기도 하는 까닭에 네팔에선 수백 대의 차량이 주유소 앞에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을 보는 일은 흔한 일이다. 그리고 카트만두 시내를 둘러싸는 도로 확장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데, 일본이 원조하고 있고, 가장 큰 병원 중의 하나는 중국측의 지원으로 완공을 눈 앞에 두고 있다고 한다.

 

"자선은 자선에 대한 수요를 증대시키는 결과만을 낳는다"는 말이 있듯이 아무리 많은 해외 원조가 있다고 하더라도, 자국민의 의지가 없다면 해외 원조는 부패한 관료만을 낳고, 도움만 바라는 무기력한 백성을 양산할 뿐이라는 것을 국내 개발 예산의 60%를 해외로부터 지원받는 네팔을 통해 실감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보면 해외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하는 나라로 전환한 대한민국은 대단한 나라임에 틀림없다.

 

한편 러시아, 과거 구소련은 현물 지원 대신 똑똑한 학생들을 데려다가 유학을 시켜줬다고 한다. 장기간에 걸쳐 공산주의자와 친러파를 육성한 셈이었다. 그런 정책의 영향인지 현재 네팔의 실권자인 국무총리인 푸슈마 카말 다할은 공산주의자다.

 

네팔 공산주의자들은 흔히 마오이스트(CPN Maoist)라고 알려졌는데, 이는 중국 마오쩌둥과 러시아 무장혁명의 영향을 받은 공산주의자들이다. '프라찬다'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현 네팔 총리는 2001년에 당의장에 선출되면서 중국과 러시아와 다른 주체적인 노선으로 자신의 이름을 딴 프라찬다 노선을 다음과 같이 선언한 바 있다.

 

"프라찬다 노선은 맑스주의, 레닌주의와 마오쩌둥주의를 발전시킨 것이다. 우리는 인민이 스스로 관리함으로써 부유한 자들이 선거를 좌지우지할 수 없는 21세기의 민주주의를 지향한다."

 

프라찬다가 네팔식 공산주의를 천명한 이후, 네팔이 제헌의회를 구성할 때 595석 가운데 227석을 마오이스트들이 차지하여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됐다. 또 마오이스트 말고 레닌과 맑스주의 공산주의자들도 역시 상당수가 제헌의회 구성원이 됐다고 하니, 교육의 힘이 무섭긴 무서운 모양이다. 이쯤 되면 재주는 중국과 일본이 넘고, 돈은 러시아가 번 셈이다.

 

우리나라 역시 네팔에 한국국제협력단을 통해 해외원조와 해외봉사단파견을 하고 있는데, 원조금액에 있어서 일본이나 중국에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적은 돈이지만, 구소련처럼 효율적으로 원조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는다면, 원조의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정치 경제가 몸살을 앓고 있는 가운데, 네팔에선 하루에도 몇 차례씩 번다라고 불리는 시위가 길거리를 가득 메운 사람들에 의해 진행되고 있었다. 남의 나라 일이라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 온당치 않은 줄 알지만, 네팔에서 민주주의가 가져다 준 것은 혼란 밖에 없어 보였다.

 

그래서일까? 배운 것 없고, 외지인에게 뭔가를 바라는 이들은 머리띠를 두르고, 긴 깃발이 나부끼는 번다 무리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더르바르 광장 주위에 몰려 있었다. 그들에겐 거리의 구호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보다 광장에서 가끔씩 얻을 수 있는 행운이 좀 더 현실적인 선택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광장을 나왔다.

 

광장을 나서며 사람보다 많다는 신을 섬기는 사람들, 또한 그 신들을 만든 사람들의 삶이 결코 녹록치 않음에 의아함을 드러내지 않을 수 없었다.  신을 만든 사람들은 살아있는 여신이라는 꾸마리라는 신을 버리기도 하는데, 그들의 삶의 면면들을 잠시 잠간 방문한 이방인이 이해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러한 감정들을 담아 시로 적어봤다.

 

네팔-카트만두 계곡에서

1. 하누만 도카 더르바르 광장(<Hanuman-dhoka Durbar squre)

해발 1,400미터

더르바르 광장(Durbar Square)엔

가난한 신민들의 경배를 받으며 붉은

분칠을 한 신들이 있다

발만 있는 신

코끼리 머리 신

원숭이 신

불알을 내 놓은 신

망치를 들고 또 다른 신을 내리치는 신

신, 신, 신

얼굴 없는 신까지

분칠을 한 신들의 화장은 끝이 없다

그래도

전능하신

가난한 신은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늙어가며 생기를 잃은 지 오래다

앙상한 뿌리에 의지해 마른 열매를 단 보리수 아래

다리 없는 신을 모신 신비할 것 없는 붉은 옷 구도승이

이리저리 기웃거리는 관광객에게

매번 한 끼 식사의 사진을 청할 때

박물관에 갇힌 몰락한 왕조의 비루함이

거리에 넘쳐나고

생기 없는 신들의 얼굴을 비웃듯

교복 차림 연인들의 참람한 쑥덕거림이

사원 난간에 걸쳐진다

2. 꾸마리 여신

사방 목각 신상에

진부함으로

신비감을 잃은 열 두 신전을 돌고 돌아

꾸마리 가르(Kumari Ghar) 신전

2백 루피의 표정 없는 신과

2대째 꾸마리를 낳은 아버지 아래

신비할 것 없는 현현신(incarnation)에게 합장하여

머리를 한 번 조아리고 돌아서는

파란 눈 노랑머리

분기에 찬 신을 만든 이의 검은 눈동자가 커졌다

신민에 의해 만들어진

구걸을 강요받는 어린 신의 얼굴 아래에

여신의 무표정을 닮은 신의 창조주들

핏기 없는 얼굴엔

궁핍으로 더해진 탐욕과

운명이라는 낙인이 찍혀져 있었다

3. 아이들

몸에 제대로 살이 붙지 않아 근육은 고사하고 뼈조차 말라 보이는 여남은 살도 채 안 된,

예닐곱으로 보이기까지 하는 하누만 도카 궁 앞, 더르바르 광장 배곯은 아이들은 울지 않았다

광장 노점상이 파는 검은 색 암모나이트 화석에

눈길을 주는 어느 순간

슬퍼할 나이도 안 된 아이의 제단이 되어 버린 행인의 발등,

변변하게 가진 것 없어서라기보다

마른 입술을 천천히 한 번! 두 번! 손가락을 모아 쪼는 시늉을 하며

"Sir, Money"라고

스타카토(Staccato)로 뱉어내는

배곯은 소리가 "써, 머니(돈 써)"로 들렸다

어디서 횡재했는지

콜록거리며 담배를 꼬나 문

예닐곱 땟국 질질 넘치는

신발 없는 아이가

금세 다른 사냥감을 찾더니 무릎 끊고 제단을 만든다

4. 광장

가난에 익숙해진 사람들

너무 오래 계속된 가난은 이제

삶이 되었다

고통인 줄도 모르는

배곯음이 다반사인 세상

노숙인도

노점상도

그저 관광객들의 "잠시 서늘한 그늘을 날라다 주는 선심"을 기대하며

"써"를 외친다

노랗고 붉게 알록달록 치장하고

욕망을 감추지 않는 수도승도

쉼 쉴 공기마저 염려해야 하는 카트만두 계곡에선

범부의 낡은 창틀도

박물관이 된 왕궁의 수려한 창틀도

검은색이었다

 

2009.05.05 09:29ⓒ 2009 OhmyNews
#프라찬다 #마오이스트 #네팔 #해외 원조 #한국국제협력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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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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