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경기 증후군일까? 얘들 성적 때문일까?

[초보 농사꾼-3] 봄비에 밭 가득 무성하게 자란 것은 '잡초'

등록 2009.05.04 18:44수정 2009.05.04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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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심기가 지난 며칠간 무척이나 불편합니다. 옆에 있기에도 거북스러울 정도입니다. 무슨 일이냐고 몇번이나 물어도 아무런 말도 없이 이마에 내천(川)자만 그릴 뿐입니다. 날짜를 헤아려 보니 오늘까지 벌써 닷새째로 접어 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그것도 회사에 출근하지 않고 계속해서 얼굴을 대하다 보니 제 인내력도 슬슬 한계에 달하는것 같습니다.


아내의 신경질이 시작된 건 지난달 29일 오후부터입니다. 또 얼굴을 계속해서 맞대게 된 것은 지난달 30일 큰 아들 정민이 시험감독 때문에 휴가를 내고 그 다음날은 근로자의 날로 이어져 연휴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정의 달이라지만 집안에는 살벌함만 가득찰 뿐이었습니다. 그나마 오늘(3일) 오후 들어서는 조금 누그러진 것 같습니다. 그렇다지만 여전히 건들면 톡하고 터질듯 신경이 날카로워 보여 여간 신경이 쓰이는게 아닙니다.

 일요일(3일) 정왕텃밭에서 옆에 누군가 뽑아서 버려둔 파 모종을 가져다 심는 우리집 두 아들 입니다.
일요일(3일) 정왕텃밭에서 옆에 누군가 뽑아서 버려둔 파 모종을 가져다 심는 우리집 두 아들 입니다. 추광규

아내의 나이도 어느덧 마흔 중반을 넘어섰습니다(아내와 나는 동갑입니다). 속으로 가만히 생각해보니 지난달부터 생리를 안 하는 것 같습니다. 40일이 넘어간 걸 보니 혹시 폐경기가 온 게 아닌가 생각했답니다.

아내의 경우 결혼 후 임신이 안 되어 노심초사 하다가 첫째 정민이는 인공수정으로 낳았습니다. 그래서 고생이 무척이나 심했답니다. 그 과정에서 네 차례인가 과배란촉진제를 맞았습니다. 인위적으로 유도해 채취한 난자에 제 정자를 수정하는 힘든 과정을 겪다보니 그 후유증이 아닌가 내심 걱정도 되기도 합니다.

제 생각으로는 여성의 몸에 간직한 난자의 수가 한정이 되어있고 첫째아이를 갖느라 무리해서 남들보다 폐경기가 일찍온 게 아닌가 합니다. 보통 50세 직후에 온다는 폐경기가 아내에게는 3년 일찍 찾아온 것이니 앞의 경험이 그 영향을 끼친 게 아닌가 조심스럽게 추측을 해볼 수 밖에요. 하지만 아리송합니다. 아내가 폐경기 때문에 말도 안 하고 신경질을 내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두 아들 성적때문에 그런 것인지 말입니다.

예전에는 눈만 부라려도 아내를 제압했는데 결혼생활이 오래될수록 아내의 성정이 점점 드세지는 것 같더니 이제는 눈을 부라려서는 눈 하나 깜짝 안 합니다. 오히려 이때처럼 아내가 저기압 일때는 제가 눈치를 살펴야만 하니 제 신세가 처량할 따름이고요.


도통 말을 안 하고 신경질만 내고 있으니 도대체 무엇 때문인지 궁금하기 짝이 없을 뿐입니다. 무엇 때문에 그러느냐고 몇 번이나 물어도 묵묵부답일 뿐입니다. 아내의 신경질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게 지난 30일 첫째 아들 학교 시험 학부모 시험 감독을 참여한 직후 부터니까 성적 때문인 듯도 하고 말입니다.

올해 중학교 1학년에 입학한 큰아이가 사흘간에 걸쳐 보았는데 그 성적이 썩 신통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초등학교시절에는 반에서 1~2등을 다투면서 아내의 얼굴에 웃음꽃을 짓게 만들던 아이의 성적이 이번에는 형평 없습니다. 가채점한 시험지를 살펴보니 평균 90점에서 한참 밑돕니다. 그러니 아내의 얼굴이 이그러질 수 밖에요.


초등학교 4학년인 둘째아들도 평균 88점이라는 저조한 성적표를 내밀었으니 아내의 마음이 편치못한 것 같습니다. 해서 헷갈리는 겁니다. 지난 사흘간 아내의 푸념의 목청이 높아갈 수록 아리송해집니다. '이것이 지금 폐경기 증후군 때문에 이러는 것이여. 아님 아들놈들 성적때문에 이러는 것이여......'

 2주전 심어둔 호박모종은 성공적으로 뿌리내리기에 성공한듯 합니다.
2주전 심어둔 호박모종은 성공적으로 뿌리내리기에 성공한듯 합니다. 추광규

 한시간여 밭에 난 잡초를 뽑아내다 보니 어느새 길가에 한가득입니다
한시간여 밭에 난 잡초를 뽑아내다 보니 어느새 길가에 한가득입니다추광규

  시흥시 정왕역 근처에 위치한 '연두농장'의 정왕텃밭 한 켠에는 청보리가 한참 이었답니다.
시흥시 정왕역 근처에 위치한 '연두농장'의 정왕텃밭 한 켠에는 청보리가 한참 이었답니다.추광규

두 아들을 하루는 어부로, 다음날은 농사꾼으로 만들다

근로자의 날이었습니다. 다음날(2일) 바다낚시 가는데 같이 가자는 나의 권유에도 아내는 꿈쩍 안합니다. 뭐가 그리도 화가 났는지 아무런 대답도 안하고 먼저 잠을 청하더군요. 어쩔 수 없이 새벽에 일어나 온가족을 동반해서 출조하는 것 포기하고 혼자만 가려고 짐을 챙기는데 아내가 몸을 자다말고 벌떡 일으켰습니다.

그리고는 독기어린 눈빛으로 저를 쳐다보더니 "혼자 낚시 가지말고 두 아들을 같이 데리고 가라"는 것 입니다. 그러면서 곤하게 자고 있는 두 아들을 흔들어 깨우더니 아빠 따라 낚시 가라고 아이들 등을 떼밀었답니다. 꼼짝없이 두 아들들을 낚시출조에 동반시킬 수 밖에요.

낚시를 갔다가 집에 돌아왔지만 그때 까지도 아내의 얼굴은 펴지지 않고 있었습니다. 뭐 그러거나 말거나 이제는 신경을 끊을 수 밖에요. 일요일날 교회를 다녀온 후 두 아들과 아내 등 온 식구들을 몽땅 끌고 시흥시 정왕동에 위치한 연두농장 주말텃밭으로 향했답니다.

교회에서 예배를 본 탓인지 아내의 굳었던 얼굴이 조금씩이나마 펴지는 것 같습니다. 2주만에 다녀온 정왕텃밭에는 당시 심었던 고추묘종과 호박묘종 등이 제대로 활착을을 내리고 있었습니다.

또 인위적으로 인간들의 먹거리를 위해 가꾸고 있는 고추, 오이, 가지, 상추등 작물들 옆에는 전혀 원하지 않는 불청객들이 그새 쑥쑥 자라 제법 무성한 풀밭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잡초의 질긴 생명력이 참으로 돋보이더군요.

아무도 가꾸지도 원치도 않았는데도 밭 군데 군데 무성하게 그 잎을 내밀고 있었고 심지어 이름모를 한 잡초는 발아해 잎을 틔운 후 벌써 씨앗을 날릴 채비를 하고 있으니 참으로 놀라운 그 생명력이 아닌가 합니다.

아내와 두 아들들을 동원해 밭 군데 군데 자라난 잡초를 뽑았답니다. 일하는 간간이 아내의 눈치를 슬며시 살펴보니 많이 누그러진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경작을 포기한 한 밭두럭에는 잡초들 사이에서 상추가 제 스스로 뿌리를 내리고 제법 소담스럽게 자라 있었습니다.

 왼쪽이 중학교 1학년인 첫째아들 정민이고 오른쪽이 초등학교 4학년인 둘째아들 정연이 입니다.
왼쪽이 중학교 1학년인 첫째아들 정민이고 오른쪽이 초등학교 4학년인 둘째아들 정연이 입니다.추광규

아내는 제 스스로 자라난 그 상추에서 잎을 떼어내 두주먹 남짓의 저녁 반찬거리를 준비했답니다. 그제야 닷새째 인상만 쓰고 있던 얼굴에 함박 웃음을 물결칩니다. 농사를 짓다보니 응어리진 마음이 어느새 스르륵 풀린것 같습니다.

아이들은 잡초를 파헤치다 나온 괴생물체의 정체를 파악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땅강아지다!'. 땅강아지는 둘째 아이 손에 붙잡혀 있노라면 그 생명을 유지하기 힘들것이 너무도 뻔하기에 서둘러 아이 손에서 뺏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땅강아지는 다시 제집으로 보내주기 위해 파헤친 흙 더미속에 조심스럽게 넣어 줬답니다.

집에 돌아와 저녁무렵이 되니 이제는 완전하게 아내의 얼굴이 평상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습니다. 그렇지만 아내의 잔소리는 계속됩니다. 하지만 그 잔소리는 신경질이 묻어나는 잔소리가 아닙니다.

"당신은 얼굴도 시커먼데 낚시한다고 얼굴을 더 태우니 완전히 뱃사람 같단 말이야!"

아내가 잔소리를 늘어 놓더니 뭔가를 꺼낸후 누으라고 합니다. 오이팩입니다. 자신이 아끼는 화장품 '에센스'를 발라주고 오이팩을 펼쳐 얼굴에 덮어 줍니다. 조심스럽게 다시 물었답니다.

"이봐 도대체 뭣 때문에 그렇게 인상쓰고 있었냐?"
"왜? 아직도 이유를 모르는거야"

"폐경기가 와서 그런거냐?"
".........."

그렇습니다. 아내의 침묵시위는 폐경기였던 것입니다. 거기에 두 아들들의 성적까지 형편없다보니 타는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던 것 입니다. 두눈을 감고 팩을 해달라며 누워있는 제 얼굴에 차가운 팩이 닿는게 달갑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뭉쳐있는 팩을 이리저리 펼치고 있는 아내의 손길에서는 따뜻한 온기가 전해져 옵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폐경기 #주말농장 #연두농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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