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표지
실천문학사
천양희 시인의 시 '한 아이'가 아이들이란 존재의 눈부심을 노래한 시라면 도종환의 시 '돌아온 아이와 함께'는 자신이 가르쳤던 아이가 이렇게 자라주었으면 하는 간절한 기도의 시다.
지금 당신 앞에 돌아와 무릎 꿇고 올리는이 아이의 기도를 들어주소서달도 없는 밤 가을 숲 속에서 몇 밤을 지새고다섯번째 도둑질을 하다 들킨 왼손을오른손의 칼로 내리긋고피흘리며 돌아온 이 아이의 한 손에바르게 가르치지 못한 제 한 손을 포개어당신께 올리는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이 아이가 자라며 원망해 온남루함과 헐벗음 누추함보다이 아이의 아비가 진흙에 손을 넣고대대로 빚어 온 붉고 고운 항아리들의 의미가더욱 값진 것임을 깨닫게 하여 주시옵고이 아이가 자라며 동경해 온풍성함과 사치스러움 비어 있는 반짝거림보다흙에서 건진 것들로 일용할 그릇을 삼는저 정직한 옹기들의 넉넉함이더욱 소중한 것임을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불가마 옆에서 평생을 살아오는 이들과그 이웃들의 가난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를너무도 잘 알고 계시는 당신께이 아이가 원망해 온 것들과 유혹에 빠져온나날들을 빠짐없이 지켜보고 계셨을 당신께또 다시 죄의 보속을 비옵는 까닭은 그들을 빼앗김과 짓눌림 한스러움에서더욱 벗어나지 못하도록 옥죄어 오는 끈끈한 거미줄이이 땅의 어느 구석에서 움솟는 것인지그들에게 바르게 이야기하고 참되게 일깨워제 손에 칼을 긋던 다른 한 손을 들어결연히 그 어떤 것을 금그어 가야 하는지를아직 다 깨우쳐주지 못한 까닭입니다자신을 속이며 쉽게 쉽게 사는 일보다흙을 디디고 흙을 만지며 정당하게 노동하는 일이보람찬 삶임을 뜨겁게 깨닫는 아이가 되도록바른 삶의 지혜를 불어넣어 주시옵고제게 맡기신 가난한 이 땅의 많은 아들 딸들도어떻게 우리가 바르게 살아야 하며무엇이 우리를 바르게 살지 못하도록 하는지우리가 진정 미워해야 할 것들은 무엇인지를진지하게 생각하는 아이로 이끌어 갈 수 있도록제게 힘을 주시옵고 도와주시옵소서아흔 아홉 번 용서하시고 마지막 한 번을더 용서하시는 당신 앞에돌아온 아이와 함께 무릎 꿇고 올리는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피흘리며 돌아온 이 아이의 한 손에바르게 가르치지 못한 제 한 손을 포개어당신께 올리는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 도종환 시 '돌아온 아이와 함께' 전문
1954년 충북 청주에서 태어난 도종환 시인은 서정적인 글 속에 진솔한 삶을 녹여내는 아름다운 시를 쓰는 시인이다. 지금까지 펴낸 시집에는 <고두미 마을에서>, <접시꽃 당신>, <지금 비록 너희 곁을 떠나지만>, <당신은 누구십니까>, <사람의 마을에 꽃이 진다>, <부드러운 직선>, <슬픔의 뿌리> 등이 있다.
도종환 시인은 지금은 교직을 떠났지만, 전교조 활동으로 1989년 해직되었다가 10년 만에 복직하여 아이들을 가르쳤던 해직교사였다. 그러니까 1987년도에 출간된 <접시꽃 당신>에 실려 있는 이 시는 시인이 해직되기 전에 쓴 시다. "돌아온 아이"라는 표현을 쓴 것으로 보아 아마도 학교를 그만뒀다가 복학한 학생에 대한 시가 아닌가 생각한다.
시 속엔 자신이 가르치는 아이에 대한 절절한 사랑으로 가득차 있다. 그러므로 내가 이 시에 뭔가를 덧붙인다는 것은 그야말로 사족이다. 우리나라 모든 아이들이 시인의 기도대로 자라주면 얼마나 좋겠는가.
가정 안에서 아버지는 한 사람의 교사다 학교에서야 교사가 아이들의 교육을 책임지지만 가정에서 아이들의 교육을 책임지는 사람은 아버지다. 아버지는 자식을 엄격하게 훈육하여 날 자리 들 자리를 구별할 줄 알게 키워야 한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가정교육은 어머니의 몫이 돼 버렸다. 어머니는 본래 사랑을 주는 사람이지 가르침을 주는 사람이 아니다. 정작 자식을 교육해야 할 아버지란 존재는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는 핑계로 항상 밤늦게 들어온다. 그 약점을 메우려고, 아이들의 환심을 사려고 아버지는 아이들의 비위를 맞춘다.
이것이 오늘을 사는 우리 아버지들의 한심한 자화상이다. 아이들은 이래저래 버릇이 없어져 간다. 우리가 자랄 때 "아비 없는 후레자식"이란 말은 지독한 욕 가운데 하나였다. 그런데 지금은 아버지가 멀쩡하게 살아있는 데도 아이들이 '후레자식'들이 돼 가는 것이다. 도대체 이 아이들을 어찌할 것인가.
내가 보기엔 어린이 날의 가장 큰 선물은 아버지가 부재(不在)로부터 돌아와 올바른 자기 역할을 해주는 것이다. 술자리 같은 것을 조금 줄이고 집에 일찍 돌아와 아이에게 곧은 삶의 방향을 몸으로 가르쳐 주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아버지가 해야할 일이다. 물론 피자 한 판이나 통닭 한 마리를 사 들고 귀가하는 자상한 아빠도 좋다. 그러나 아버지란 존재는 궁극적으로는 삶을 가르치는 사람이다.
아이들이 더 망가지기 전에 이제부터라도 아버지 노릇을 제대로 시작해야만 한다. 더 이상 삶에 주눅들린 초라한 아버지가 아니라 아이들에게 당당한 삶의 교훈을 보여줄 수 있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야말로 87주년 어린이 날을 목전에 둔 우리 모든 아버지들의 로망이 돼야 한다. 안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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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곳을 지향하는 눈(眼)과 한사코 사물을 분석하려는 머리, 나는 이 2개의 바퀴를 타고 60년 넘게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나는 실용주의자들을 미워하지만 그렇게 되고 싶은 게 내 미래의 꿈이기도 하다. 부패 직전의 모순덩어리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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