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갑 님 첫 산문모음. 나중에 새판으로 다시 나옵니다.
최종규
준코 카루베라는 일본 만화쟁이가 그린 《당신의 손이 속삭일 때》 열 권이 1999년부터 2000년까지 우리 말로 옮겨졌습니다. 이듬해 2001년에 뒷이야기 《신ㆍ엄마손이 속삭일 때》 열두 권이 우리 말로 옮겨졌습니다. 《당신의 손이 속삭일 때》가 나올 무렵에는 얼른 알아채고 열 권을 모두 장만해서 기쁘게 읽었는데, 뒷이야기까지 옮겨졌다는 소식을 듣지 못해 그만 놓치고 말았고, 《신ㆍ엄마손이 속삭일 때》는 금세 판이 끊어졌습니다.
이리하여, 헌책방에 이 만화가 들어오기를 손꼽아 기다린 끝에 지난달 가까스로 열두 권을 장만했습니다. 마침 골목마실을 하며 지나는 길에 본 '문닫은 대여점'에서 값싸게 내놓은 책꾸러미 가운데 이 녀석이 있었어요. 이 만화책을 갖추어 놓은 대여점이 있었구나 싶어 놀라면서 즐겁게 장만했는데, 열두 권에 이르는 만화책 《신ㆍ엄마손이 속삭일 때》를 읽는 동안, '이 만화는 대여점에서 거의 안 읽힌 듯하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어느 책이든 사람들이 찾아서 읽으면 읽은 자국이 남습니다만, 이 만화책 열두 권은 아주 깨끗했습니다. 2001년에 나온 만화임에도 먼지가 그리 내려앉지 않았고요.
참으로 오래도록 기다린 끝에 만난 만큼 한 번 보고 그칠 수 없어 거듭 펼치고 다시 넘기고 합니다. 7권을 보면, '소리를 듣지 못하는 엄마'가 초등학생 딸아이를 앞에 놓고 "찌주루(딸아이 이름), 그 착한 마음은 어디에서 가져온 거니? 엄마는 뽐내고 있었단다. 찌주루의 모든 걸 엄마가 낳았다고 생각했거든. 하지만 그게 아니었어. 찌주루가 가지고 와 준 거야.(25∼26쪽)" 하고 생각합니다. 꾀병을 부리던 딸아이가 참말로 몸이 아프지만 어머니를 걱정시키지 않으려고 말 않고 꾹 참는데, 아이 어머니는 "숨겨도 소용없어. 엄마는 다 알고 있는걸. 찌주루의 일은 전부. 왜냐면 찌주루를 너무너무 사랑하니까.(82쪽)" 하고 이야기합니다.
.. "며칠 동안 머물며 찍은 사진하고, 몇 년 기다려 찍은 사진하고는 다르겠죠. 취미로 사진하는 게 아니거든요." … 한 장이라도 감동적인 사진을 찍어야만 한다는 집념으로 집을 떠나 떠돌아다니는 동안, 정작 부모님의 사진은 한 장도 찍지 못했다 … 많은 이들을 사진으로 감동시킬 수 있으면 글로도 감동시킬 수 있다 .. (13, 127, 204쪽)더없이 착하디착한 만화인 《당신의 손이 속삭일 때》와 《신ㆍ엄마손이 속삭일 때》에는 마음씨 나쁜 사람은 나오지 않습니다. 만화에 나오는 사람들 모습은 엇비슷합니다. 어쩌면 모두 똑같다 하여도 틀리지 않습니다. 때때로 심통을 부린다 할지라도 금세 풀어지거나 누그러뜨립니다. 아프거나 괴롭게 하는 이야기란 나오지 않습니다. 슬프거나 힘겹게 하는 이야기 또한 나오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만화책을 넘기는 내내 눈물을 흘리게 합니다. 가슴속 깊은 자리까지 스며들면서 콕콕 찌르는 뭉클함이 있어, 눈물 없이 만화를 볼 수 없습니다.
다 읽고 덮으면서도 뭉클뭉클함이 고이 남아서 책등을 살며시 쓰다듬습니다. 이 느낌을 고스란히 간직하면서 사진기를 들고 골목마실을 나가면, 눈이 한결 맑아지고 손길은 더욱 부드러워집니다. 착한 만화를 보면서 제 마음이 착해지는 가운데 제가 담아내려는 사진 또한 착해진다고 할까요.
저 스스로 좋아하는 이야기는 착한 이야기이고, 이처럼 착한 사람들 나오는 만화에 더욱 눈길이 쏠리는 한편, 저 스스로 즐기면서 이웃하고 나누고픈 사진이란 다름아닌 착한 사람들 옹기종기 모여 사는 골목동네와 헌책방동네라고 할까요. 제가 좋아하는 착한 이야기와 착한 그림과 착한 사진처럼, 저 스스로 착한 사람이 되고 싶고, 제 삶터를 착한 마을로 일구는 일에 손을 거들고 싶다고 할까요.
.. 사람들의 흥미를 유발하는 의리나 배신, 명예나 권력, 돈, 이 모두는 나와 무관하다. 나의 삶은 사람들의 관심 대상에서 제외됐다. 설명될 수도 없는 사생활, 겉으로 드러낼 수 없는 삶, 움막에 틀어박혀 허구한 날 알을 품은 채 하품하는 일상들. 일 년 내내 혼자 지내며 흘린 눈물도, 웃음도 사람들의 흥미를 끌지 못한다. 오랜 세월 열과 성으로 품었던 알에서 탄생된 생명인데도 나의 사진들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 사람들은 극적인 드라마를 원한다. 눈물겹고 재미있는 감동의 드라마만을 원한다. 사랑하고 헤어지고, 헤어지고 만나는 행복한 드라마를 원한다. 성공했다 실패하고, 다시 오뚜기처럼 일어나 성공하는 영광의 드라마를 원한다. 나의 삶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드라마는 아니다. 내가 껴안은 드라마는 처음부터 감동과는 거리가 멀었다 .. (45쪽)거의 모든 사진기자와 사진작가가 헌책방마실을 하면서 찍는 사진을 보면 어둡기 짝이 없습니다. 어수선하기 그지없습니다. 때로는 책을 몹시 거룩하게 드높이는 사진이 보입니다. 그러다가 아주 천덕꾸러기처럼 다루고, 옛추억에 잠기게끔 하려는 모양새로 다룹니다.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서 담아내지 못합니다. 지금 모습이 어떤 모습인지를 알아채지 못합니다. 오늘과 내일과 어제가 어떻게 달랐으며, 책이 살아온 오늘과 어제에다가 내일은 또 어떻게 다를는지를 헤아리고자 하지 않습니다.
거의 모든 사진기자와 사진작가가 골목마실을 하면서 찍는 사진은 헌책방을 찍는 사진하고 어슷비슷합니다. 꼭 닮았습니다.
생각해 보면, 모두들 제 깜냥껏 바라보는 셈입니다. 제 깜냥껏 좋은 책을 알아보면서 고를 뿐입니다. 눈이 더 밝다면 더 많은 책이 좋음을 알아차리고 더 많이 읽고 장만하는 헌책방마실이 될 테지요. 눈과 생각이 한결 밝다면 골목마실을 하면서 골목사람 삶자락을 더욱 깊숙이 껴안으면서 녹아드는 가운데 사진을 하나하나 차곡차곡 담아낼 테지요.
무엇보다도, 헌책방이나 골목길에서 따로 사진 한 장 찍지 않더라도, 두 곳에서 우리한테 나누어 주려는 느낌이 무엇인지를 깨달으면서 기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가리라 봅니다. 사진이란 찍어도 좋지만 안 찍어도 좋습니다. 사진기를 들고 부지런히 단추질을 해도 즐겁지만, 사진기를 들고 있으면서도 어깨에만 얌전히 걸치고 있어도 즐겁습니다. 사진에 우리 삶을 담는다 하면, 필름에 앉혀 종이로 찍어내는 사진이 되지 않고, 눈을 거쳐 마음에 아로새기면서 언제나 '그림을 그리듯 떠올리는 우리 발자취'로 간직하고 있어도 사진이 됩니다.
.. 자연을 의지해 살아가는 이들은 자연의 변화에 민감하면서도 적절하게 대처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 일기예보는 참고나 할 뿐 그들 방식대로 하늘을 보고, 바람 부는 방향과 강약 그리고 느낌을, 바다의 물결이나 색감을 보고 내일을 준비한다 … 자연을 대상으로 작업을 하는 사진가들은 자연의 변화를 읽지 않고는 좋은 사진을 기대할 수가 없다. 대가가 사용했던 명품의 카메라를 가졌다고 해도, 사진가가 원하는 상황을 맞이하지 못하면 좋은 사진을 기대할 수 없다 … 내게 많은 영향을 미친 사진가들과는 시대도, 환경도, 가치관도 다른데 그들을 흉내내고 있었다는 것을 인식하는 순간 부끄럽고 고통스러웠다 … 누구도 나에게 사진에 대해 가르침을 주지 않았다. 스스로 터득해야 한다 .. (169∼170, 190∼19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