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율성과 지옥의 거리가 너무 가깝다

등록 2009.04.30 10:52수정 2009.04.30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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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과 지옥에 대한 유명한 비유가 있다. "온갖 산해진미가 쌓여있는 끝이 보이지 않는 식탁 주위에 자기 팔보다 기다란 젓가락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팔보다 젓가락이 길어 혼자서는 음식을 먹기 어렵기 때문에 상대방을 먹여줌으로써 함께 먹을 수 있으면 천국이요, 그것에도 불구하고 자기만 먹겠다고 욕심부리다 결국 먹지 못하면 지옥이다."

 

필자가 보기에 천국으로 가는 길에 대해서는 크게 두 가지 해석이 존재한다.

 

첫 번째는 국부론의 저자인 아담 스미스의 해석이다. 그가 본 인간사회는 물질적 효용이 핵심이고 부의 진정한 원천은 생산과 교환이며 그것을 지배하는 동기는 이기심이다.

 

"내가 원하는 것을 주면, 당신이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기다리는 저녁식사는 도축업자, 양조업자, 제빵업자 등의 자비심 덕분이 아니라 그들이 각자 '이기심'을 발휘한 덕분이다. 우리는 그들의 인정이 아니라 자기애에 호소하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 대신에 그들에게 이익이 되는 것을 말한다."

 

내가 준 만큼 너도 준다, 내가 긴 젓가락으로 음식물을 준 만큼 너도 긴 젓가락으로 음식물을 준다. 그러면 천국일까? 예를 들어 서로를 먹여주는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훨씬 더 젓가락질을 잘한다고 치자. 한 사람은 살이 찌겠지만 다른 한 사람은 그렇지 못할 것이다. '너는 왜 나보다 적게 주냐고 따지면서 젓가락질을 멈출 수 있을까?' 아니다. 동등한 교환이 아니어도 교환을 멈출 수는 없다. 부등가 교환이라도 하지 않으면 내가 굶어죽을 수도 있으니까. 굶어죽기 보다는 배고픈 것이 낫고 그래서 누군가는 아무리 젓가락질 노동을 해도 항상 배고플 가능성이 있는 그런 교환이 반복된다. 자본주의적 시장에서의 교환이란 항상 이런 문제를 안고 있다.

 

두 번째는 마르셀 모스의 해석이다. 아담 스미스는 유명하지만 마르셀 모스는 최근에야 소개된 사람이기 때문에 그에 대한 설명을 조금 할 필요가 있겠다. 모스는 유명한 사회학자인 뒤르껭의 조카이다(뒤르껭까지 소개하기에는 지면이 짧은 점을 양해해 주시라, 현대 사회학의 기초를 놓은 사람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인류학과 사회학적 기반위에 선 그의 사회철학과 관련하여 최근 한 권의 책이 번역된 바 있는데 제목이 '증여론'이다.

 

그가 본 인간사회의 핵심은 물질적 효용이나 이기심이 아니다. 그는 교환의 태고적 형태이자 사회를 유지시키고 사회적 결속력을 강화시키는 힘으로서 '주어야 할 의무', '받아야할 의무', '되돌려 주어야 할 의무'를 제시한다. "도덕과 생활 자체의 상당한 부분은 언제나 의무와 자발성이 혼합된 증여의 분위기 속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 모스의 주장이다. 그에 따르면 "아주 최근에 인간을 경제동물로 만든 것은 서양사회이다. 그러나 아직은 우리 모두가 그러한 종류의 존재가 된 것이 아니다. 민중 속에서도 또 엘리트 사이에서도 순수한 비합리적인 지출은 관행이 되어 있다."

 

따라서 이기심에 기초한 교환과 시장인간은 인류의 전체 역사에서 아주 짧은 순간에만 존재하는 형태이고, 그보다는 고귀한 지출의 관습 혹은 도덕이 인간사회에 영원한 것이다. "이것이 가장 진화한 사회에도, 가까운 장래의 사회에도, 또 가장 미개한 사회에도 공통된 것이다" 때문에 갖가지 사회에서 물건을 순환시키는 것(교환)은 유용성이 아니다. 긴 젓가락으로 상대를 먹여주는 것은 내가 더 많이 주는 것, 또한 받은 것 이상으로 돌려주는 것이 인간사회의 보다 오래된 규범이자 구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은 더 많이 주면서 기뻐한다.

 

모스를 읽은 친구는 "선배가 후배에게 술 사주고 기뻐하는 것(선배가 후배에게 술도 사주지 않는 것은 선배 체면 구기는 행위이니까)이나, 음식값 먼저 내겠다고 하는 것이나… 결국 현대에도 모스의 철학이 관철되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모스의 관점에 따르면 천국은 지속가능하다. 왜냐면 서로 더 많이 주고 더 많이 되돌려주려는 관습, 규범, 도덕적 구조 때문에 교환이 유지되니까.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모스에 관심을 갖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프랑스 10대학의 사회학 교수, 알랭 까이에가 이끄는 학술지 MAUSS(Mouvement Anti- Utilitariste dans les Sciences Sociales: 사회학에서의 반실용주의 혹은 반공리주의 운동)가 모스의 이름을 딴 이유, MAUSS가 칼 폴라니 학파와 긴밀하다는 사실이 이해가 된다. 자본주의적 인간, 시장형인간, 경제동물로서의 인간을 넘어선 또 다른 인간사회를 꿈꾸는 것은 인간의 영원한 권리이다. 더 많이 받는 소수로 인해 더 많이 주는 다수가 비참해지는 그런 사회가 인류의 이상일 수는 없지 않겠는가.

 

인간사회는 모스의 사회, 스미스의 사회 그리고 지옥이 공존한다. 죽어간 이라크 아이들의 사진을 보면 그것은 지옥이며, 일자리를 잃어 갈 곳 없는 우리 사회의 청년들을 보면 그것은 스미스의 사회이다. 2009년 2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남성 일자리가 2천 개 줄어든 반면 여성 일자리는 14만 개 줄었다. 무려 70배이다. 그런데 3월에 접어들면 여성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은 여전하지만 남성 일자리가 더 많이 줄어들어 그 격차가 5배로 좁혀졌다. 바닥을 끌어올려 격차를 좁히는 대신 위를 끌어내려 격차를 좁히는 것은 스미스의 사회가 지옥과 그만큼 가깝다는 것이 아닐까. 효율성과 지옥의 거리가 너무 가깝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은수미씨는 현재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으로 재직중입니다. 이 기사는 인권연대 웹진 주간 <사람소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9.04.30 10:52ⓒ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 기사를 쓴 은수미씨는 현재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으로 재직중입니다. 이 기사는 인권연대 웹진 주간 <사람소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증여 #고귀한 지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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