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 등촌리삼층석탑.전형적인 고려 초기의 석탑으로서 비지정문화재이다. 비지정문화재이기 때문에 갖는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한 문화재이다.
송영대
가까이 가서 탑을 살펴보니, 우선 기단부에는 상층기단과 하층기단으로 구성된 2층의 기단석이 있었다. 하층기단에는 희미하게 안상을 새겨 주위를 돌리고 있다. 상층기단은 4개의 면석으로 결구시키되, 둘은 크고 둘은 작게 하여, 큰 면석에 우주와 탱주를 작은 면석에 탱주를 모각해 놓았다.
그 위에는 비스듬한 경사로 우동을 내어 탑신괴임에 정육각형 같은 1층의 탑신이 살포시 올라갔다. 이어 5단의 옥개받침을 둔 옥개석이 올라가고, 그 위엔 또다시 탑신이 올라간다. 하지만 2층과 3층의 탑신은 1층의 탑신을 반으로 쪼갠 듯 절반도 안 되는 크기에 쪼그라든 듯 한 옥개석이 올라가, 1층의 탑신에 비해 가녀린 느낌마저도 든다. 이 옥개석들 중에서도 3층옥개석은 한쪽 면이 상당히 많이 떨어져나가 세월의 아픔을 그대로 보여준다.
3층 옥개석 위에 있는 상륜부는 노반과 복발만 남아 있는 단출한 형식의 탑이었다. 전체적으로 소박한 느낌을 주고, 신라시대의 탑을 계승하려고 한 흔적은 보이지만, 그에 비해 초라한 모습의 고려시대 초기 탑일 뿐이다.
등촌리 석탑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하지만 이러한 외면적인 것 외에, 그 내력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 길이 없다. 그 이유는 단지 탑만 덩그러니 서 있지, 이에 대한 표지판은 근처에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표지판은커녕 이 탑으로 가는 길도 제대로 나있지 않아, 논두렁 사이를 통해서나 오갈 수 있을 뿐이다.
문화재 아닌 문화재, 비지정문화재결국 이런 경우에 답은 하나다. 이 석탑이 바로 비지정문화재라는 것. 비지정 문화재란 사적이나 지방기념물, 혹은 문화재자료 등으로 지정된 다른 문화재와는 달리 문화재이면서도 문화재 취급을 받지 못하는 문화재를 말한다. 다른 문화재는 관련 기관에 등록이 되어 있어서 그에 대해 관리가 되지만, 이러한 비지정문화재는 딱히 그런 게 정해져 있지 않기에, 후세의 입장에선 단지 조상들이 만들어낸 천덕꾸러기일 뿐이다.
비지정문화재는 사적이나 지방기념물, 문화재자료 등에 비교하여 그 역사적 가치가 높지 않고, 또 상대적으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문화재로 취급받는다. 전남지역에서는 어느 동네든지 한 기 이상 볼 수 있는 고인돌이나, 평범한 고려시대의 석탑, 혹은 조선시대의 건물 등이 여기에 다수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과연 누가 비지정문화재를 역사적 가치가 높지 않다고 한단 말일까? 사적으로 등록된 문화재나, 비지정문화재나 똑같이 조상들이 정성과 심혈을 기울여서 만들어, 이를 후세에까지 보이고 싶었던 당당한 우리의 문화유산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후세의 사람들이, 자기들이 멋대로 만들어낸 잣대로 인하여 역사성이 없다는 핑계로 관리조차 안 되는 문화재로 취급한다.
문화재 중에서 이러한 비지정문화재들은 다른 문화재에 비하여 그 훼손이 되는 경우가 매우 높다. 시골 마을에서 고인돌들을 살펴보면서 마을 어르신들에게 그 내력을 물으면 새마을 운동 당시 길을 내기 위하여 고인돌을 깨부수는 경우가 많았다고들 증언한다. 또한 누구 하나 제대로 관리하는 이들이 없다보니 도굴꾼의 타깃으로 가장 먼저 손꼽히는 게 바로 비지정문화재이다.
등촌리 석탑은 어떨까? 등촌리 석탑도 여기에서 예외일 수 없다. 아니, 오히려 다른 비지정문화재보다 상황은 심각하다.
부관참시 되어버린 비지정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