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물질의 풍요를 합창할 때 정신의 풍요는 갈 곳을 잃었다. 물질의 풍요가 지상의 낙원인양 교육하는 사이 아이들의 정신은 생기를 잃기 시작했다. 사진은 영화 <강원도의 힘>에서의 한 장면.
미라신코리아
우리 삶을 힘들게 만드는 요인이야 많고도 다양하겠지만, 그 중에서도 쉼없이 경쟁하라고 부추기는 이 저급한 사회가 가장 큰 원인일 것이다. 사회 분위기를 경쟁 구도로 몰아가는 것은 일부 계층, 즉 권력이나 돈 등을 가진 자들이다. 그와 함께 그 반열에 오르고 싶어하는 이들이 함께 공모하여 생산해낸 사회적 스트레스는 가히 압권이라고 할 수 있다.
건강한 사회는 물질의 풍요보다 정신의 풍요를 교육하고, 그렇게 교육받은 이들에게 그 몫을 담당하게 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의 교육은 그러하지 못했다. 학교에서부터 내몰려진 경쟁은 차라리 전쟁이라해도 다르지 않았다. 언제나 '성공이냐 실패냐'의 갈림길만 강요받는 현실에서 아이들은 행복하지 않았다.
그래서 성적이 조금이라도 떨어지면 죽음을 떠올렸다. 성공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었다. 취직을 하지 못한 대학생도 자살 행렬에 합류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앞날이 보이지 않고, 아무리 발버둥쳐도 후보 선수에조차 끼지 못한다는 현실이 그들을 죽음의 유혹으로 내몰았던 것이다.
세상이 물질의 풍요를 합창할 때 정신의 풍요는 갈 곳을 잃었다. 물질의 풍요가 지상의 낙원인양 교육하는 사이 우리의 미래인 아이들은 생기를 잃기 시작했다. 시간이 흘러 사람들의 정신은 빈곤해졌고, 스스로 깨어나야 한다는 의지마저 놓고 말았다. 그러는 사이 사람들은 죽어갔고, 오늘도 죽음을 공모하고 있다.
올해의 동반자살은 강원도 정선이 시작이었다. 지난 4월 8일 경치 좋은 오대천 변에 있는 민박집에서 남녀 각 2명, 4명이 동반자살했다. 그들은 방문 앞에 '긴 취침중'이라 적어놓고 정말이지 돌아올 수 없는 '긴 취침'에 들어갔다.
동반자살, 그들이 머문 방엔 '긴 취침'이라는 글귀만 그들이 묵었던 방엔 연탄 화덕이 놓여 있었고, 출동한 경찰이 문을 열었을 때는 연탄가스가 자욱했다고 한다. 다음 날 기자가 현장을 찾았을 때는 폴리스라인 하나 없이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몇 시간만에 다시 경치 좋은 민박집이 된 자살 현장엔 담장의 개나리꽃만 피어나고 있었다.
"비수기라 집 주인은 원주에 머물고 있었는데, 자살 사건이 벌어졌지 뭡니까. 사람 목숨이 파리 목숨보다 못한 세상이니 이거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겠어요." 민박집 근처에서 주유소를 운영하고 있는 주민은 마을에서 동반자살이 일어난 것에 대해 무척이나 놀라워 했다. 주민과 대화하는 사이 민박집 주인이 트럭을 몰고 지나갔다. 민박집 주인을 따라가 보았다. 그는 할 말을 잃었던지 망연히 집을 바라보았다. 그날 민박집 주인은 마당가를 몇 번 서성이더니 문을 잠그고 마을을 떠났다. 지난 9일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