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비리를 고발했던 김용철 변호사가 최근 경기도 부천 시내의 한 제과점에서 일하고 있다.
남소연
"요즘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무슨 광란의 시대가 아닌가 싶어. 무슨 말 한마디, 어디에 글만 올려도 잡아가는 세상 아니야…."인터뷰는 그렇게 시작됐다. 김용철 변호사(51). 낯익은 얼굴에 낯설지 않은 목소리였다. "혈당이 잘 잡히지 않아서 금방 피곤해진다"면서 기자와 마주앉았지만, 그의 시니컬하고 정곡을 찌르는 말솜씨는 여전했다. 다시 그의 말이다.
"그런데, 검찰을 보면, 삼성사건은 7년 동안 수사하지도 않고, 서로 폭탄 돌리기만 하더니 요즘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는 세게 하더구만. 죽은 권력에 대해선 정말이지 무서울 정도로 단호하면서, 왜 살아있는 권력에는 그렇게 비겁한지…."김 변호사의 표정은 금세 일그러졌다. 1년 6개월 전, 삼성그룹의 옛 구조조정본부 법무팀장이었던 그의 폭로는 한국 사회를 뒤흔들어 놓았다. 최대 재벌그룹 삼성과 오너인 이건희 회장 일가의 각종 탈법적인 행태가 드러났고, 특별검사의 수사와 재판이 진행됐다. 삼성사건은 이제 대법원의 최종 판단만을 남기고 있다.
지난 23일 저녁 김 변호사를 만났다. 경기도 부천의 한 제과점에서다. 그의 가족이 운영하는 이곳에서 그는 매일 저녁 시간을 보내고 있다. 김 변호사는 "저녁때 매일 6시간씩 가게를 보고 있는데, 할 일이 꽤 많다"면서 "큰 돈벌이는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와의 이야기는 제과점 바로 옆 조그만 카페에서 이뤄졌다.
"죽은 권력엔 그렇게 단호하면서, 산 권력엔 왜 그리 비겁할까"- 작년에 변호사 사무실을 열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서울) 서초동에서 작년 7월에 사무실을 열었는데, 4개월 만에 닫았다. 임대료를 감당할 수가 없더라. 이제 사무실을 옮기려고 하는데, 이전 비용도 없어서 아직 이전도 못 하고 있다."
- 사건 수임이 없었나."뭐, 몇 건 들어온 것들을 보면, 그냥 돈과는 상관없는 사건들이었다. 이렇게 보니 내가 참 무능력한 사람인 것 같기도 하고…."
사실상 변호사 일은 '개점휴업'인 상태였다. 물론 일정한 수입도 없다. 그는 "2년째 별 수입 없이 살고 있다"면서 "요즘은 그래도 저녁에 이렇게 아르바이트도 해 가며 교통비라도 벌이를 좀 한다"고 말했다. 기자와 가게에서 이야기를 나눌 때, 한 고객이 들어와 몇 가지 빵을 주문했다. 김 변호사의 입에선 빵 값이 곧장 나왔다. 100여 가지에 달한다는 빵 종류 가격 대부분을 외우고 있었다.
- 가게 손님들 가운데, 변호사의 얼굴을 알아보는 사람은 없나."(웃으면서) 어떤 사람들은 '반갑다'면서 악수를 청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나를 나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어떤 사람은 빵을 사가지고, 가게 앞에서 바로 버리는 사람도 봤다. 그리고, 서울 압구정동인가를 가다가, (나를 알아보고는) '뭐가 그리 잘났냐', '어딜 돌아다니냐'고 큰소리를 치는 사람도 있었다."
어느새 그의 손에는 담배가 쥐어져 있었다. 허탈한 듯한 미소와 함께 말을 이었다.
"참, 이상해. 내가 무슨 가진 자들의 것을 뺏으려고 선동한 사람처럼... 나는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에요. 솔직히 지금 정상적으로 살아가기 힘든 상황이지.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적대적이지 않고, 살아갈 힘도 주기도 하고... 그래서 기분은 좋아."'기분은 좋다'고 하면서도 김 변호사는 씁쓸한 표정이었다. 그는 이어 "요즘도 가끔 나에게 '무언가 해야 하지 않을까'라고 말을 하던데, 너무 가혹한 것 아닌가"라고 되묻기도 했다. 다시 그의 말이다.
"더 이상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니 무슨 순교라도 하란 말인지...(웃음) 얼마 전에도 법학교수가 술에 취해서 전화로 삼성문제 이야기하면서, 우리 사회가 어쩌고 저쩌고 말을 하던데. 내가 그랬어요. '술 먹을 시간에 좀 더 연구하고, 각자 위치에서 제대로 자신의 일을 하면 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