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에 걸친 시간동안 가파른 경사를 거슬러 올라 일구어 놓은 웬양의 다랑논
변훈석
이튿날, 다랑논을 황금빛으로 물들이는 일출을 보기위해 동이 트기도 전에 길을 나선다.
어둠속을 한참 달리다보니 그제서야 반대편 산 뒤로 붉그스레 여명이 밝아온다. 고요한 새벽의 정적을 깨고 주변이 밝아오며 산비탈에 족히 수백 명은 될 듯한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룬다. 건너편 산 위로 아직은 덜 영글은 듯한 태양이 수줍은 듯 고개를 내민다.
태양이 솟아오름과 동시에 깊은 계곡 아래에선 자욱한 안개가 밀려들기 시작한다. 3년간 매번 같은 시기에 찾아왔지만 희망 가득 선물하는 태양의 솟음과 물밀듯 밀려오는 안개의 움직임은 한치 변함이 없다. 이렇듯 자연은 변함없이 그대로 움직이는데 우리만 괜히 급속한 변화속에서 바쁘게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규모와 색상도 웅장하고 아름답지만 선으로 표현되는 부드러움으로 가득한 웬양의 계단식 논을 뒤로하고 윈난의 계림이라 불리는 푸저헤이를 향한 발걸음을 옮긴다. 굽이굽이 산길을 돌아 내려가 유명한 홍하(紅河)의 물길을 따라 간다. 베트남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이 곳은 윈난의 남쪽에 위치한 데다가 해발고도가 200~300m밖에 되질 않아 아열대기후대가 형성되어 있다. 웬양의 해발고도가 1700m였으니 무려 1300m를 올랐다 내려온 셈이다. 구불구불 끝도 없이 이어지는 산길을 따라 가는 길이었지만 바로 이게 윈난여행의 매력이다. 창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은 산허리를 돌아가며, 때론 산하나를 넘어가며 완전히 달라진다.
창밖으로 펼쳐지는 변화무쌍한 풍경에 넋을 잃다보니 8시간의 버스 이동도 그렇게 지겹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게 도착한 푸저헤이 풍경구. 카르스트 지형이 만들어낸 물과 볼록 솟아오른 봉우리들이 어우러져 윈난의 꾸이린(桂林)이라 불리우는 곳이다. 처음 이 곳을 찾았을 때 알 수 없는 편안함이 나를 휘감았다. 대지의 기운이 있슴을 처음 느끼게 했던 그 편안함은 사뭇 내 자신만의 느낌은 아닌 듯 했다.
함께 여행한 이들에게 물어보면 광활한 다랑논의 풍경도 지평선 끝까지 펼쳐진 노란 카펫이 깔린 유채밭도 눈을 휘둥그레 하게할만한 풍경이지만 물과 산이 어우러진 이 곳의 기운은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 자신의 잡념과 어깨를 짓누루는 무거운 것들을 내려놓고 한없이 순수하게 돌아갈 수 있는 마음의 문이 열린다고 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이라고 평한다.
나만의 공간을 다른 이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 비밀스러움을 내 스스로 벗겨내야 하는 망설임도 있었지만 함께 그 땅이 가진 비밀스러움을 나누며 힘겨운 삶의 속도를 벗어나 서로의 마음을 드나들며 인연의 깊이를 더할 수 있기에 감사하다. 이 곳을 처음 접했던 시간도, 그동안 다녀갔던 많은 인연들에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