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 대한 예의를 진지하게 물어보는 <가문의 영광>
SBS
너무 뻔한 이야기. 그래서 재미없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이젠 그 뻔한 이야기가 소중한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아마도 시청률 하나에 급급해 방송사들이 막장드라마 다량으로 공급한 결과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가운데 빛나도록 아름다운 드라마 한 편이 있다. 바로 <가문의 영광>이 그러하다. <가문의 영광>은 막장이란 소재도 없이 충분히 시청률을 올릴 수 있음 보여준 드라마로 우리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전해주었다.
사실 <가문의 영광>은 어쩌면 식상하다면 식상한 가족의 이야기를 전면에 내세웠다. 모든 주말드라마가 그렇듯 홈드라마를 표방했기에 신선하지는 않았다. 다만, 종가집이라는 차별화를 내세웠지만 가부장적 가족제도로 인식되는 종가집의 이야기는 시청자들에게 식상함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었다.
핏줄이 아닌 가족에겐 필요한 것은 사랑이러한 점에서 분명 <가문의 영광>의 출발은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가문의 영광>이 시청자들에게 흡인력을 갖게 하면서 인기를 얻었다. 그 가운데 가장 큰 이유는 가부장적인 가족제도의 틀이 아닌 가족 구성원의 이야기에 중점을 둔 점이다.
즉, 우리가 고정관념으로 생각하던 종래의 '가부장적 가족제도=종가집'이라는 공식의 틀을 깨버렸다. 자칫 종가집의 가족이야기가 고루하게 흘러갈 수도 있었지만 하만기(신구) 회장을 중심으로 가족 구성원의 다양한 이야기가 응집되어 풍성한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냈다.
특히 다양한 구성원들의 이야기를 끌어내다 보니 '가문의 비밀'로 제목을 바꿔야 할 정도로 벗길수록 비밀이 드러났다. 그리고 그러한 구성원들의 이야기 속에서 진정한 가족이란 '핏줄로 이어진 가문의 혈통이 아닌 가족 구성원간의 사랑'임을 이야기했다.
드라마 속에서 종가집인 하만기를 중심으로 아들 석호(서인석)와 종손 수영(전노민)과 태영(김성민) 그리고 단아(윤정희)까지 순탄한 삶을 사는 이가 없다. 아들 석호는 오래 전에 부인과 사별했고, 수영과 태영은 이혼을 했다. 또한 단아는 결혼식을 올렸지만 남편이 세상을 떠났다.
이러한 설정을 놓고 보자면 종가집으로서의 면모를 찾아볼 수 없다. 아니 종가집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특히 종손과 그의 동생의 이혼이 그러하다. 드라마에서 으레 종가집의 이야기를 담을 때 예의와 격식을 이야기하기 때문에 자연스레 종가집 사람들은 성인군자와 같은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등장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시청자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가문의 영광>은 이러한 상처를 간직하고 있는 종가집 사람들이 사랑을 찾아 여행을 떠나면서 시작된다. 그리고 이들이 서로의 사랑을 만났을 때 비로소 <가문의 영광>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가 드러난다.
수영은 종손으로서 자신의 삶을 체념하고 살아왔지만 부인 진아(신다은)를 만나면서 자신의 삶을 가문이 아닌 자신을 위해 살아가고자 마음 먹는다. 더욱이 진아의 불임 사실을 알고도 결혼을 감행한다. 늘 방황하며 어리광을 피우던 태영도 말순(마야)을 만나면서 정착하기 시작한다. 남편의 죽음에 스스로 사랑을 포기하고 살던 단아도 강석(박시후)를 만나면서 사랑의 용기를 낸다.
이처럼 드라마에서는 가족 구성원의 사랑 이야기가 펼쳐지면서 진정한 가족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되새기게 만든다.
더 나아가 다양한 가족 구성원들의 이야기를 다루다 보니 주인공 단아와 강석에게만 비중이 치우치지 않는다. 그래서 더욱더 풍성한 에피소드로 매회 시청자들을 끌어들이는 힘을 지니게 되었다. 이 점 또한 <가문의 영광>의 인기비결이라고 할 수 있다.
대부분의 드라마를 보면 주인공의 사랑을 제외하고는 다른 출연진들의 비중은 상대적으로 낮다. 그렇다 보니 후반부로 갈수록 스토리가 빈약해지고, 다른 캐릭터들이 단편적으로 그려지다 보니 시청자들을 고정시키는 힘이 약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가문의 영광>이 끝까지 시청자들의 외면을 받지 않은 이유 중의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