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오전 11시 서울시 용산구 빈곤사회연대 사무실에서 열린 '기초생활보장 권리찾기(가칭)' 회의.
권박효원
경제위기 속에서 복지예산이 줄어들자 뿔난 기초생활수급권자들이 '권리'를 주장하면서 공동대응에 나섰다.
이들은 17일 오전 11시 서울시 용산구 사회복지연대 사무실에서 모임을 열고 '기초생활보장 권리찾기(가칭)'을 꾸리기로 했다.
이날 회의에는 10여 명이 참석했는데, 빈민운동가들도 있었지만, 쪽방 생활자나 장애아동 부모 등 직접 급여를 받는 기초생활수급권자들도 눈에 띄었다. 없는 살림에 힘들게 익산․제천 등 지역에서 상경한 수급권자도 있었다.
이렇게 기초생활수급권자들이 모임까지 결성하면서 운동에 뛰어든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이들 수급권자들이 모인 계기는 지난 3월 31일 용산구청의 '의료급여 종별 강제전환 통보'였다. 사회복지단체들이 사례를 모아 기자회견을 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수급권 당사자 모임을 만들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만들어졌다.
용산구청 의료급여 강제전환이 '불씨'그동안 수급권자들은 자신의 빈곤한 처지를 부끄럽게 생각해서 이를 '권리'라고 주장하지 못했다. 문제의식을 가져도 '담당 공무원에게 밉보이면 불이익을 받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어려웠다.
본인도 기초생활수급권자인 엄병천 동자동사랑방 대표는 "3~4년 전만 해도 다쳐서 일을 못하게 된 일용직 노동자들이 자존심 상한다고 기초생활 급여를 안 받으려고 했다"고 전했다. "빈곤은 개인의 책임이고 기초생활 급여는 고마운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급여가 적게 나와도 별다른 의심을 하지도 않고 공무원들이 불친절해도 참는다는 것이다.
지금도 정부에서 기초생활수급권자를 보는 시각은 '불쌍한 거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수급권자들의 생각이다. 이들은 각 지역 사례들을 이야기하면서 "급여기준에 대해 항의하면 공무원 눈길이 사납다" "정보공개 청구해도 답변이 제대로 없다" "공무원들이 동냥하는 태도로 대한다"고 성토했다.
수급권자들이 움츠러드는 더 큰 이유는 공무원과의 관계에서 약자이기 때문이다.
부양의무자나 차량 유무 등 수급권 자격이 엄격하기 때문에, 공무원이 마음먹기 따라서 급여를 받지 못할 수도 있다. 실제로 공무원들이 이를 빌미로 위협하거나 불이익을 주지는 않더라도, 수급권자들은 '찍혀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들게 마련이다.
이들은 이날 회의에서 용산구청에 대한 대응방안을 논의하면서도 "되도록 사람을 많이 모아서 개인의 불이익이 없도록 해야 한다, 어떤 경우에든 해당 수급권자는 보호해야 한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B씨는 "(불이익이) 걱정되기는 한다, 그러나 시와 싸우는 과정에서 '이런 상황은 꼭 바로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수급권도 법에 정해진 권리니까 대한민국 국민 누구나 보장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강조했다.
엄병천 대표는 "경제가 어렵다보니까 수급 탈락에 대한 불안이 예전보다 크다"면서도 "그동안은 공동대응을 하기보다 공무원에게 사정을 하소연해서 각자 해결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런 모임을 계기로 의식이 바뀌길 바란다"고 말했다.
집단 이의신청, 서명운동... "여럿이 함께 해야 개인이 안 다친다"수급권자들은 앞으로 용산구청 앞 1인시위 및 집단 이의신청, 수급권자 서명운동 및 선전활동, 국가인권위 진정 등을 전개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향후 단체 구성 및 운영 방식에 대해서도 논의한다.
조승화 빈곤사회연대 기획국장은 "지금까지의 빈민운동은 수급권 당사자의 목소리가 없다는 한계가 컸다"면서 "대정부 요구는 있는데 실제 피해사례가 없다보니 운동에 힘이 실리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류정순 소장은 "수급권 당사자들이 '복지는 시혜가 아닌 권리'라고 주장했다는 점에서 이번 모임의 의미가 크다"면서 "경제위기 상황에서 기초생활수급을 줄이는 가혹한 정책이 오히려 수급권자를 결집시키는 계기가 됐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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