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모토 바나나의 대표작 <키친>, 좌측 하단의 사진은 1980년대 후반에 찍은 바나나의 모습. 당시 바나나의 이미지는 이 사진으로 대표된다.
민음사&요시모토 바나나
요시모토 바나나. 그는 더 이상 신인작가도 아니며 일본 내에서도 중견작가 이상의 지위를 확보하고 있다. 데뷔 당시 20대였던 그녀는 이제 마흔 중반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일본문단을 대표하는 작가의 한 사람이 되었다. 그럼에도 바나나가 여전히 20대 여성 독자들의 지지를 받는다.
20대 시절 바나나는 동그란 안경을 쓴 패션에 민감한 모습으로 자신의 책을 장식했다. 그 때 바나나는 '라이트 노벨(가벼운 소설)'의 상징이었고 지금도 동그란 안경을 쓴 이십대 당시의 이미지로 여전히 독자의 뇌리에 깊숙이 각인되어 있다.
바나나는 1988년 데뷔작인 <키친>(1999년 김난주 번역)으로 '바나나 열풍'이라 해도 좋을 정도의 선풍을 불러일으켰다. 바나나의 한국 상륙은 무라카미 하루키보다 조금 늦었지만, 한국에서의 인기와 인지도만을 놓고 볼 때 하루키 옆에 나란히 설 수 있는 유일한 일본작가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무라카미 하루키가 남녀 모두에게 읽혔다고 한다면, 바나나는 여성독자들에게 훨씬 많이 읽혔다. 바나나의 소설은 김현영의 <냉장고>(문학동네 2000)는 물론이고 2000년대 이후 등단한 한국의 여성 작가들에게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내가 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장소를 말한다면, 그곳은 부엌이다. 어느 곳, 어떤 곳이든, 그곳이 부엌이고 음식을 만들 수 있는 곳이라면 나는 좋다. 가능하면 편리하고 기능적인 곳이면 더욱 좋겠다. 청결한 마른 행주가 몇 장이고 준비되어 있고, 하얀 타일들이 반짝반짝 빛나는 곳. 지독하게 더러운 부엌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부엌이라는 이유만으로도 나는 견딜 수 없을 만큼 좋다."
부엌 예찬으로 시작되는 <키친>은 단순히 개인적인 감성만이 아니라 그 맛깔스러운 문장 속에 한 개인의 '고독'과 '실존'을 어둡지 않게 실어내면서 동시대 독자의 절대적인 지지를 이끌어 냈다.
<키친>에서 부엌은 "홀로 추운 곳에서 죽든 누군가가 있는 따뜻한 곳에서 죽든 두려워하지 않고 모든 것을 냉정하게 바라"볼 수 공간으로 그려졌는데 이 공간은 한국사회에서 여성들의 비애와 슬픔이 오롯이 담긴 공간이기도 하다. 바나나가 다른 일본 여성작가들 보다 한국에 훨씬 빠른 속도로 그리고 강렬하게 착지할 수 있었던 것은 한국 여성들에게 '공감대'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소설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