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연예매니지먼트법안이 쓰레기인 이유

우리 안에 있는 장자연 사건의 대안

등록 2009.04.14 10:22수정 2009.04.14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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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매니지먼트법안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그 내용의 면면을 보면 그리 뜨거울 것도 없건만 기획사와 연예인노조, 국회의원과 문화체육관광부(문화부)까지 나서는 모양새가 영 마땅치 않다. 이미 한차례 기고를 통해 이 문제를 언급했기 때문에 굳이 나서서 말을 보태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모르고 그러는 것인지 알면서도 그러는 것인지 도대체 대안이 되지 못할 내용을 대안이라 우기고, 법치강박에 걸린 모양새로 또 하나의 악법을 만들겠다는 국회의원들의 태도에 기가 막혀서, 또 이번 기회에 연예산업, 대중문화산업의 기강을 잡겠다는 의지를 피력하는 문화부의 불손한 태도에 화가 치밀고, 제 밥그릇도 못 찾아 먹는 연예인노조와 기획사들의 어리바리함에 기가 막힌다.

 

분명히 정치적인 여지가 있는 이번 사건을, 단지 연예산업의 구조적 문제로 국한해 본다 해도,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은 최소한 두 가지 요건이 갖춰져야 한다. 첫째는 위기에 빠진 신인 배우들의 최소한의 인권을 보호할 수 있어야 하며 둘째는 더 큰 위기에 빠진 한국연예산업의 회생을 도울 수 있어야 한다. 어느 것 하나도 놓칠 수 없고 또 놓쳐서는 안 되는 중요한 문제들이다. 따라서 법안을 만들든 법안으로 부적을 만들어 붙이든 이 두 가지 전제를 충족하지 못한 대안은 의미가 없다.

 

한명의 배우라도 구원하고 싶다면

 

오늘날 신인 배우들의 위기는 무엇 때문인가? 죽은 장자연 뿐 아니라 많은 신인 배우들이 고통받는 현실은 결국 무엇으로 인한 것일까? 그들의 인권을 보호할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없어서인가? 아니면 먹고살기 어려워진 연예산업의 처지 때문인가?

 

그들이 접대자리에 불려나가 싫은 술을 마시고 하기 싫은 일을 강요당하는 것이 소위 말하는 노예계약서 때문이라 생각한다면 이는 정말 현실을 모르는 것이다. 죽어도 하기 싫은 그 짓을 할 수밖에 없는 까닭은, 최소한의 법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굳이 지킬 의무가 없음이 분명한 계약서의 몇몇 조항 때문이 아니다. 그렇게라도 해야 어디 조연자리라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절박한 심정에서 비롯된, 피눈물나는 선택이라는 말이다.

 

표준계약서나 매니지먼트사 등록제나 혹은 에이전시 어쩌구 하는 법안의 내용들이 명백한 삽질인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위기에 빠진 신인 배우들을 구하는 가장 방법은 그깟 법 조항이나 만들고 있는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일 할 수 있도록 하나라도 더 자리를 만들어 주는 것이 한 명의 배우라도 위기에서 구원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캘리포니아는 무슨 개뿔


그렇다면 오늘 신인 배우들을 술집으로 내모는 이 연예산업의 위기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법안 발의자들 주장대로 일천한 한국의 연예시스템에서 비롯된 문제인가? 그래서 그 구조를 그들이 이야기하는 대로 '캘리포니아식'으로 바꾸면 되는가? 만약 바꿔서 되기만한다면 캘리포니아가 아니라 짐바브웨나 파푸아뉴기니식이면 또 어떨까 싶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건 바꾸어서 될 문제가 아니다. 오늘날 연예산업이 위기에 처한 근본적인 원인은 문화콘텐츠에 대한 내수 수요와 수출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며, 문화산업의 핵심인 '스타'가 만들어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인이 여기에 있는데 에이전시 제도를 도입하고, 수익률을 몇 %로 제한하고, 기획과 제작의 업무를 분리하는 것이 어떻게 대안이 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리고 비록 공·과가 분명히 있지만 우리 연예산업의 구조는 그리 후진적이지 않다. 일본의 안방을 점령하고 중국이 한류라는 말을 만들어 냈을 정도로 대단했던 방송콘텐츠와 가요콘텐츠가 그것을 증명한다.

 

문화산업과 일반산업의 차이


따라서 이번에 언급되고 있는 이 연예매니지먼트법안은 대단히 죄송스럽게도 결국은 쓰레기다. 이 법안으로는 위기에 빠진 신인배우를 단 한 명도 구원하지 못할뿐더러 역시 위기에 처한 한국 연예산업 발전에 단 1%의 도움도 안 된다.

 

혹자는 이러한 법안이 비록 최선은 아니지만 차선은 될 수 있을 거라 주장한다. 또 제도의 정비가 왜 필요없는 것인지 반문하며 이러한 법이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한국 연예산업의 위기는 분명 콘텐츠 시장의 축소와 '스타'의 부재가 원인이다. 이러한 규제나 정비로 그러한 위기를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은 대중문화산업의 가지고 있는 특수성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법안을 주장하는 이들의 말을 들어보면 연예산업이 마치 일반산업처럼 원자재의 규제를 강화하고 생산시스템의 감리와 감독을 철저히 하고 정확한 가이드라인에 맞추어 생산하면 그대로 히트상품이 될 줄 아는 것 같다. 


노조만이 희망이다


사실 신인 배우들의 인권을 보호해야한다는 것과 연예산업을 살릴 수 있는 해답은 이미 우리가 가지고 있다. 왜 그리 '뻘' 짓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신인 배우들의 권리는 노조와 현재 잘나가는 스타급 배우들이 앞장서서 지켜주어야 마땅하다. 노동자로서 헌법과 보편상식적인 법률이 보장하는 이들 가련한 신인 배우들의 권리가 침해되고 있다면, 가장 먼저 당사자가 분연히 떨쳐 일어나야 한다.

 

그러나 그 신인배우들이 어쩌지 못하는 불가항력적 상황이라면 노조가 나서 그들을 보호하고 강력한 이익단체로서 기능해야 한다. 악랄한 제작자나 기획사가 있다면 개별 배우뿐 아니라 노조의 이름으로 고소·고발이 진행되고 그 기획사나 제작방송사에 출연을 보이콧하는 등 강력한 연대투쟁으로 그러한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실력행사를 해야 할 것이다. 전체 배우들이 단결한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이건 캘리포니아를 좋아하는 이번 법안 입안자들도 아시다시피 아름다운 미국의 시스템이다.)


한국연예산업의 위기, 산업의 전문가들이 강구해야 한다


연예산업을 살리는 문제는 일단은 일단 반성이 먼저다. 적지 않은 기획사들은 연예산업을 통한 수익의 창출보다 M&A나 우회상장을 통해 목돈을 마련하는데 급급했던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그리고 제발 전체적인 문제를 이야기 할 때 나는, 우리는 안 그랬다는 식으로 말하지 말아라. 그건 상당한 짜증을 유발한다.)

 

그러한 과도한 투자와 배분이 연예산업의 거품을 키우는데 일조했음이 분명하다. 그러니 거품이 완전히 빠져 나갈 때까지 이 어려운 상황을 견뎌내는 것도 어쩔 수 없이 산업현장의 몫이다. 또한 몇몇이든 일부든 분명히 신인배우를 착취하는 인간이하의 기획사들이 존재함도 사실이다. 연예산업 전체를 매도하게 만드는 이러한 악덕기획사들을 어떠한 자정노력으로 발본색원할 것인지 분명히 밝혀야 할 것이다.

 

그리고 나서 마지막으로 도대체 이러한 산업적 위기를 해소하기 위한 구체적 대안을 업계가 스스로 만들어라. 관련학계나 전문가집단을 활용하던, 누구보다 전문가인 스스로가 나서던, 국가와 사회에게 한국연예산업에 관심과 지지를 나아가 신뢰와 투자를 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설득하라.


마지막으로 이번 법안을 발의 하겠다는 두 분 의원님께 부탁드린다. 문화는, 특히 대중문화는, 규제와 감독으로 성장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모쪼록 두고두고 대중문화산업의 걸림돌이 될 이번 법안 상정을 재고하시길, 문화계의 한사람으로 간곡하게 부탁드린다. 그리고 듣보잡이라 불리우는 분과 문화체육관광부, 넌 빠져라!

덧붙이는 글 | 탁현민 기자는 한양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외래교수입니다.

2009.04.14 10:22ⓒ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탁현민 기자는 한양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외래교수입니다.
#장자연 #연예매니지먼트사업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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