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멜이 지킨 전라좌수영 진남관!하멜외 12명은 1663년 2월부터 탈출까지 3년간 당시 전라좌수영이었던 여수 진남관에 배치되어 3년간 문지기 생활을 하였다.
심명남
1663년 2월 전라좌수영 문지기로 기용!
살아남은 22명은 여수에 12명,순천에 5명,남원에 5명이 분산 수용되었다.나를 포함 여수에 배치된 12명은 전라좌수영에서 문지기 생활을 하였다. 이듬해 이도빈 좌수사가 새로왔는데 이수사는 인자하여 일행을 편안하고 따뜻하게 대해 주었고 양모장사로 돈을 벌어 탈출할 배를 장만하는데 성공했다.
1666년 9월4일 여수탈출 나가사키로!
마지막 남은 8명은 달이지자 전라좌수영의 담을 넘어 약속해 두었던 부두가로 갔다. 탈출을 위해 미리 준비한 식수를 싣고 썰물이 시작될 무렵 멀리 부산끝을 마지막으로 조선영역을 완전히 벗어났고 이제 나가사키(일본)를 거쳐 꿈에 그리던 고향으로 귀국이 시작되었다. 그간 억눌렀던 세상에서 벗어나 자유를 되찾은 우리 일행은 만세를 불렀다. 조선이여 안녕!
음력 9월4일 하멜이 자유를 찾아 배를 탓던 포구가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으나 하멜등대가 세워져 있는 여수 쫑포 앞바다 선착장에서 소형범선을 타고 탈출에 성공해 10일후 나가사키에 도착한다.
그시절 외국인에 대한 조선의 정책은 '한번 들어온 서양인은 절대 다시 안돌려 보낸다'는 정책이었던 반면 이웃나라 일본은 서양과의 해상무역이 성행하여 일찍 선진문물을 받아 들였던 것과 비교된다.
그로부터 약 2년후 1668년 7월에 네델란드 암스테르담에 귀향한 하멜은 체류생활 동안 겪었던 조선의 지리.풍속.정치.군사.교육.교역 등 하멜표류기를 통해 유럽에 알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