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벚꽃축제 기간을 맞아 8일 국회를 찾은 상춘객들이 경내를 둘러보며 봄날을 만끽하고 있다.
남소연
봄을 맞은 국회가 모처럼 활기를 띠고 있다. 지난 4월 6일 윤중로 일대에서 시작된 여의도 벚꽃축제 덕분이다. 10만 평에 달하는 국회의사당은 소풍 나온 시민들로 연일 북적인다. 화창한 날씨까지 이어지면서 국회 잔디정원과 의원동산에는 평일에도 삼삼오오 돗자리를 깔고 앉은 상춘객들로 빼곡하다.
하지만 정치권 사정은 다르다. 입법부 최고 수장 두 사람(박관용, 김원기)은 불법정치자금 수수혐의로 대검찰청에 불려갔다. 전직 대통령은 "부인이 돈을 받았노라"며 사과문까지 올렸다. '박연차 광풍'에 벌벌 떠는 국회는 국회의원들은 말 그대로 겨울이다. 국회 건물 밖의 봄과 국회 건물 안의 겨울. 상춘객들은 한 공간 속 두 계절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뇌물은 정치인들 일과 아니냐?""답답하기 한이 없지 뭐. 오늘도 국회 (대정부질문) 보다가 나왔는데 '역시 싸우기는 마찬가지구나'하는 생각이 들더라구. 야당은 이명박 대통령 험담하고, 여당은 또 반박하고."8일 오후 국회의사당 내 의원동산에서 만난 70대 노부부는 한숨부터 내뱉었다. 노부부의 눈에 비친 국회는 여야가 정쟁을 벌이는 싸움터일 뿐이었다. "국회의사당을 TV로만 보다가 직접 보니 감개무량하다"는 감탄도 나왔지만 '박연차 뇌물'에 대해선 고개를 저었다.
자신의 나이를 74세라고 밝힌 할머니는 "뇌물 받은 것은 다 내놔야 하지 않겠느냐"고 불만을 터뜨렸다. 옆에 섰던 할아버지는 "(뇌물은) 정치인들 일과 아니냐"고 별 기대가 없다는 투로 말했다.
네 살 난 딸과 국회를 찾은 젊은 부부도 부정적 반응은 마찬가지였다. 임영민(35)-황은경(35)씨는 "국회를 보면서 의원들이 좀 더 책임감을 갖고 일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 남편 임씨는 "사실 (18대 국회의원도) 뽑을 사람이 없어서 뽑은 거지, 일 잘할 사람이란 생각이 들어서 택한 건 아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또 "정치권이 싸우더라도 국민이 납득하는 주제와 방법으로 싸웠으면 좋겠다"며 "정책 논쟁이 아닌 감정싸움이 돼선 안 된다"고 쓴소리를 했다. 인터넷 등 국민과 직접 소통하는 창구가 많은데도 국회가 민의를 외면하고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임씨는 "하도 많이 싸우니까 정치에 관심이 없어진다"고 고개를 저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깊은 실망감을 드러냈다. 임씨는 "나라의 얼굴에 먹칠을 한 거나 마찬가지 아니냐"며 "기대를 갖고 뽑은 사람조차 그렇다니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라고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영등포에서 벚꽃 구경을 나온 김아무개(57)씨 부부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남편 김씨는 "부인이 받았다고 해도 바로 돌려주든가 하는 조치를 취해야지, 빚 갚는 데 썼다고 묵인한 것은 이해가 안 된다"고 열을 올렸다. 그는 "인터넷 사과문으로 끝나선 안 된다"며 "노 전 대통령을 믿었는데, 돈 앞에선 다 그런가 보다 하는 생각밖에 안 든다"고 냉담하게 반응했다.
정치권 어른들의 비리는 어린 동심에도 나쁜 인상을 남긴 듯했다. 이날 점심때, 국회 잔디광장은 대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수학여행을 온 학생들로 떠들썩했다. 한 무리의 학생들에게 "국회를 본 소감이 어떠냐"고 묻자 "웅장하다", "잘 만들었다"는 저마다 대답이 돌아왔다. 친구들과 화단에 앉아 있던 이상호(12)군은 "국회의원들을 어떻게 생각하냐"는 물음에 얼굴을 찡그리며 "뇌물 때문에 창피하다"고 말했다.
초등학생도 "뇌물 때문에 창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