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군에 맞서 싸운 1만명... 누구인지는 아직도 몰라

'만인의총', 400여 년 지난 현재 위패 확인자 50명에 불과

등록 2009.04.07 15:32수정 2009.04.07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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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쳐도 신분이 낮은 일반백성과 군졸들의 업적은 400년이 넘도록 후손들에게 제대로 알려지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7일 전북도에 따르면 지난 3월 17일부터 19일까지 '만인의총 관리사무소'를 대상으로 감사를 실시한 결과, 순절위패 1만여 명 중 확인된 순절자는 50여 명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1597년 선조 30년 7월 정유재란 당시에 남원성 전투에서 왜군에 맞서 싸우다 순절한 민·관·군 1만여 명 가운데 신분과 이름 등 위업이 확인된 사람이 50여 명이 전부라는 것이다.

 

남원 '만인의총(萬人義塚)'은 정유재란이 끝난 뒤 광해군 4년인 1612년(광해군 4년) 당시 순절한 1만여 명의 시신을 거두어 한 곳에 묻고 그들의 넋을 기리고자 사당이 세워졌다. 

 

당시 광해군은 충열사(忠烈祠)를 짓고 사당 중앙에 '남원부성 순절 만인지위' 란 위패와 좌우로 전라병사 이복남을 비롯해 50여 명의 위패를 봉안했다.

 

좌우로 봉안된 50여 명의 위패는 당시 신분이 높았던 접반사(接伴使) 정기원(鄭期遠), 이복남, 방어사 오응정(吳應井), 조방장 김경로, 별장 신호(申浩), 남원부사 임현(任鉉), 통판(通判) 이덕회(李德恢), 광양현감 이춘원 등이다.

 

반면, 이틀간의 처절한 남원성 전투에서 왜병과 직접 전투를 벌이다 순절한 일반 백성과 군졸 등 1만여 명은 '무명용사'의 신분으로 '남원부성 순절 만인지위'에 한꺼번에 모셔뒀다.

 

그들이 누구인지 당시 전투에서 어떤 위업을 달성했는지에 대한 사료분석이 지난 411년 동안 이뤄지지 못한 것이다.

 

전북도는 1981년 4월 1일 사적 제272호로 만인의총을 지정하고 있지만 지난 28년간 역사적 사실고증과 증명 등의 연구보다는 시설관리 업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지난해에만 15만5000여명의 참배객들이 다녀갔지만 지난 28년간 위업선양을 위한 학술 연구보다는 위업선양 그림그리기, 글짓기 등 일회성 행사에 치중되고 있는 실정이다.

 

만인의총 관리사무소는 직원이 9명이 상주하고 있다. 이 중 3명은 청원경찰이며 나머지 6명은 녹지직 등 기능직으로 학예연구사(관)는 단 한명도 배치되지 않았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남원성 전투에서 1만여 명의 민·관·군이 순직한 지 412년이 되는 현재까지 확인된 순절자가 50명에 불과하고, 그 후손 확인도 이덕회 등 22명에 그치고 있다.

 

만인의총의 한 관계자는 "일반 백성과 군졸 등의 경우 역사적 자료가 거의 없다시피 하기 때문에 순절자 확인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서 "후손들을 통해 제한적이나마 확인이 가능하지만 전문 인력이 없는 점도 문제다"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전민일보>에도 송고했습니다.

2009.04.07 15:32ⓒ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전민일보>에도 송고했습니다.
#만인의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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