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남순 변호사와 환경운동연합 회원들이 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지방경찰청에서 '석면 베이비파우더' 파동과 관련해 피해자 고발장을 제출하기 위해 청사로 들어서고 있다.
유성호
6일 오후 2시, 서울지방경찰청 민원실에는 한 건의 고발장이 접수됐다. 환경운동연합이 베이비파우더에서 1급 발암물질이 검출된 것과 관련해 관리를 담당하는 정부 기관과 제조업체, 원료공급업체에 책임 묻기 위해 고발을 한 것이다.
잠깐 지난해 멜라민 파동 때를 기억해 보자.
중국 원료공급회사에서 아기들이 먹는 분유에 멜라민을 넣었고, 당시 식약청은 중국 당국의 경고를 무시하고 있다가 다른 나라에서 검출된 결과를 보고 난 후 열흘이나 지나 뒤늦게 조사에 착수했다. 해당 기업들도 '우리 제품은 안전하다'고 큰소리치더니 뒤늦게 검출된 제품의 회수에 나서는 등 늑장대응했다.
멜라민이 검출될 수 있는 제품은 분유로 시작해 건강보조식품까지, 그 수가 셀 수 없을 정도로 늘었고, '백색가루 공포' 멜라민에 대한 시민들의 불안은 한동안 계속됐다. 정부와 한나라당은 소비자 피해에 대해 책임을 묻는 집단소송법을 도입하겠다고 밝혔고, 아이들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신호등제도'도 도입하겠다고 나섰다.
그리고 난 후, 우리 사회에서 달라진 것이 무엇인가? 집단소송법과 신호등제도, 이 두 가지 모두 기업들의 강한 반발에 의해 무산됐다. 검출된 제품에 대해선 회수 등 당연한 조치 외에는 해당 담당 부서의 책임을 묻는 어떠한 행정적 절차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사회는 다시 석면 베이비파우더 건을 맞고 있다.
멜라민 때와 똑같은 모습... 주말 동안 300여 명 피해 접수사안은 다르지만, 멜라민 파동 때와 달라진 것은 없다. 그때처럼 여전한 모습들이 이어지고 있다. "다른 나라 조치 취할 때 우리나라는 뭐했냐, 다른 나라 기업들은 관리하고 있는 동안 우리 기업들은 뭐했냐, 늑장대응이다, 뒷북이다." 어쩌면 어떻게 매번 같은 상황이 반복되고 있는지, 놀랍기까지 하다. 거기다 '식약청의 관리 기준을 따랐을 뿐인데 우리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너무하지 않느냐'는 기업들의 볼멘소리도 여전하다.
그럼 우리 국민들은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일까? 혹시라도 수십 년 지난 후에 암이라도 걸리면 이 원인이 베이비파우더 때문인지 아닌지 누구에게 따져 물어야 할까?
환경운동연합은 이런 소비자들의 마음을 모아 지난 주 '피해시민신고센터'를 열었다. 더 이상 기업도 못 믿겠고, 정부도 못 믿겠다는 것이다. 이미 발라버린 석면 베이비파우더야 되돌릴 순 없지만, 그렇다고 기업에게 아무런 책임을 묻지도 않고 넘어가기에는 너무 억울하다.
이런 시민들의 요구를 모아 지난 금요일(3일) 오후에 개설한 신고센터에는 주말 동안만 300여 명의 시민들이 피해 사례를 접수하며 집단소송에 함께하겠다는 뜻을 모으고 있다. 그 중에는 이것을 살까(검출되지 않은 제품), 저것을 살까(검출된 제품)를 고민하다 순간의 선택을 잘못한 자신을 책망하기도 하고, 땀이 많이 나는 체질이라 지금껏 10년 넘게 제품을 사용해 왔는데 이제 어떻게 해야 하냐며 제발 도와달라고 하소연하는 여대생도 있었다. 해당 기업에 항의의 뜻을 밝히며 꼭 책임을 묻겠다는 시민들도 다수 있다. 여기에 더해 인터넷 다음 카페 '석면 베이비파우더 소송모임'의 1200명 가까운 회원들도 환경운동연합과 함께 할 의사를 밝혀오고 있다.
물론, 석면이 함유된 제품을 사용한다고 다 암에 걸리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보건학적 연구는 해당 물질과 질병의 연관성을 살피고, 연관성이 있다면 사전예방적인 차원에서 관리 대책을 마련해 국민 건강을 지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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