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관의 작문 실력과 김은혜의 '무개념'

로켓 발사에 대처하는 정부 모습, 애처롭다

등록 2009.04.04 16:33수정 2009.04.04 16:34
0
원고료로 응원

북한의 로켓 발사에 대처하는 정부의 모습은 한 마디로 말해서 위태롭다. 한미정상회담(2일 오전)에서 있었던 대북문제 협의 결과를 전하는 청와대 대변인의 말과 외교통상부 차관의 말이 다르더니 이어서 청와대 부대변인까지 또 다른 말을 한 것이다.

 

보도되었듯이 이동관 대변인은 "오바마 대통령은 유엔 안보리의 제재 결의안을 준비 중에 있다고 말했다"고 했다. 그런데 이것은 이 대변인의 의도적인 작문일 가능성이 높다. 백악관 쪽 자료 어디에도 '제재 결의안'이라는 용어는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이동관의 작문 실력과 김은혜의 '무개념'

 

이동관 대변인은 작년 8월 한미정상회담 때에도 특유의 작문 실력을 발휘한 바 있다. 이 대통령이 지도를 가리키며, "This is Tokdo island"(여기가 독도입니다)라고 하자, 부시가 "Is that?(그렇습니까?)"라고 반문한 후 "I know(알겠습니다)"라고 대답한 것을 합성하여, "부시 대통령이 'I know Tokdo island(나는 독도를 압니다)'라고 말했다"고 소개한 것이다(이것은 부시가 '리앙쿠르락스'나 '다케시마'가 아닌 '독도'를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프레시안> 기사 참조).

 

한편 권종락 외교통상부 1차관은 3일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어떤 결의안'이라고 했을 뿐 '제재 결의안'이라고 말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답변했다.

 

권 차관의 답변은 '제재 결의안'이라는 이동관 대변인의 말을 부인하는 것이지만 여기에도 약간의 각색은 있어 보인다. 백악관 쪽 발표 자료는 물론 이를 전한 외신 어디에도 '긴밀한 협의', 단호하고 일치된 대응' 등의 말이 있을 뿐 '결의안'이라는 용어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오바마는 중국, 일본과의 정상회담에서도 "안보리에서 협의한다" 이상의 말을 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영국에 가 있는 김은혜 청와대 부대변인이 한 말은 점입가경이다. 그는 "미국은 브리핑을 하지 않은 것이고 우리는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고 한다(<한겨레> 보도). 이것은 이동관 대변인의 말이 맞고 권종락 차관의 말이 틀렸다는 것을 이상한 방법으로 확인해 준 발언이다.

 

그렇다면 백악관 쪽에서 오바바 대통령이 분명히 말한 것을 발표하지 않은 이유가 뭔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 더군다나 김 부대변인은 용산참사 같은 중대 현안에 아주 개념 없는 발언을 한 전력도 있다. 김 부대변인의 말이 임기응변으로 상관을 비호하기 위한 발언이 아니었기를 바랄 뿐이다.  

 

아무튼 한미정상 사이에 대북 '제재 결의안' 추진이 합의되었다는 것은 청와대 대변인과 부대변인의 공식 발표로 확인된 셈이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민족 문제로 국민을 기만한 두 대변인에게 따로 책임은 물어야 한다.  아울러 이것은 그들이 얼마나 대북제재를 원하고 반기는 의식구조를 가진 사람인지를 입증한다는 점에서 보다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본다.

 

대북 제재, 무슨 명분 있는가?

 

모두가 알듯이 대북제재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대북제재는 실패를 거듭해 왔다. 거기에 대체로 명분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것은 북한에서 미사일 또는 위성을 발사할 때마다 남한에서는 혼동과 소동이 한바탕 벌어진다는 점이다. 얼마 전부터는 대북 제재론에 이어 새로 PSI(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 참여론이 등장하기도 했다.

 

정부는 지난 3월 23일 외교통상부 문태영 대변인의 정례 브리핑을 통해 "그동안 PSI의 취지와 목적에는 공감하지만 한반도 상황을 고려해 일부 참여만 하고 있었는데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한다면 한반도 상황에 변화가 있는 것"이라면서, PSI 참여를 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한나라당 역시 PSI 참여에 찬성하는 기존 입장을 지난 달 30일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거듭 확인했다.

 

4월 2일에는 친북좌익척결국민연합, 자유민주수호연합, 나라사랑실천운동 등의 보수단체들이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앞(오전 11시)과 동교동 김대중 도서관 앞(오후 3시)에서 '북한 핵미사일 규탄 및 PSI 동참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외교통상부를 찾아가서 북한에 당당하게 대처할 것을 주문했고, 이어 오후에는 동교동 김대중 도서관 앞에서 '북한의 군사적 도발을 비호하면서 남한의 PSI가입에 반대하는'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맹비난했다.

 

그런데 이들이 말하는 PSI가 무엇인가? PSI는 부시의 호전 유물에 불과한 것이다. 부시가 이라크를 침공하면서 내세운 대량살상무기 제거 명분은 생판 거짓임이 드러났다. PSI는 부시가 이라크 침공에서 행한 거짓말을 은폐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부시는 지난 2003년 1월 "세계가 직면한 가장 중대한 위험은 대량살상무기를 추구하는 무법정권"이라며 이라크에 이어 북한을 겨냥하기도 했다.

 

우리는 북한의 미사일에 대응하여 무리하게 실시된 부시의 대북제재가 도리어 핵개발을 낳았다는 점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유엔은 2006년 9월 14일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결의안에 있던 기존의 제재 사항들을 명확히 구체화함으로써 북한을 압박했다. 이때 부시는 북한 선박에 대한 검문검색을 의무규정화(decide)하려 했는데,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로 요구 또는 촉구(call on)하는 선으로 완화되었다. 유엔 결의안에서 뜻을 못 다 이룬 부시는 한국에 PSI 적극 참여를 고압적으로 요구했다. 그는 라이스 당시 국무장관을 보내 한국의 PSI 적극 참여를 종용했다.

 

하지만 PSI 확대 참여는 북한에 싸움을 거는 행위나 진배없는 짓이다. 한반도는 지금 정전 상태에 있다. 이런 상황에 공해상에서 북한의 선박을 강제 검문 검색할 수 있는 조치에 적극 가담하는 일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를 냉철히 헤아려야 한다.

 

PSI 참여는 민족 공멸의 길

 

가뜩이나 북한은 키리졸브 같은 한미연합훈련에 공포감을 가지고 있다. 얼마 전 개성공단을 닫았다 열었다 했던 것도 북한으로서는 키리졸브에 대한 일종의 자구책이었다. 우리는 해방 후 북한을 자극한 결과가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다. 6.25 직전 남한의 극우주의자들은 허구한 날 '북진통일'을 부르짖어 북한으로 하여금 무력 강화의 다급성을 절감케 만들었다. 국방장관 신성모는 남북전쟁이 나면 평양에서 점심을 신의주에서 저녁을 먹겠노라고 호언했다. 38선에서는 충돌이 끊이지 않았는데 90% 이상이 남측에서 유발한 것이었다.

 

미군정은 지금도 밝혀지지 않은 '정판사 사건'으로 사회주의자들을 위조지폐범으로 몰아 세웠다. 극우 각료 조병옥은 <서울신문> 기고를 통해 북진통일의 당위성과 화급성을 내뱉었다. 일부 기독교인들은 폭력과 허세로 점철된 언어로 북괴 섬멸을 기원했다.

 

하지만 지식인이라는 사람들은 침묵했다. 당시 서울대학교를 비롯한 대학교수 어느 누구도 그 상황이 초래할 비극적 귀결에 경종을 울리지 못했다. 물론 미국과 이승만 그리고 부화뇌동하는 우중이 겁났기 때문이다. 결과는 어떠했는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비 내리는 음습한 새벽 북한은 소련제 전차 T-34를 앞세워 남으로 쳐내려 왔다. 이로부터 무려 4백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으며 남북한 모두 현지 징집을 실시, 인류사상 최대의 이산가족이 발생하는 비극이 초래되었다.

 

민족 문제만큼은 역사에서 교훈을 찾아야 한다. 역사는 지금이나 천 년 전이나 대동소이하다. 발해와 신라의 시대는 지금처럼 민족분단의 시기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중세적 용어로 말해 '남북조시대'인 것만은 틀림없다. 당시 발해는 일본과 가까웠고 신라는 외교력을 당나라에만 집중시켰다. 그런데 일본은 발해와 공조하여 신라를 치자고 제안했다. 발해는 일본에 보내는 사신을 무관에서 문관으로 교체하면서 완곡히 거절하는 지혜를 발휘했다. 그 결과 발해와 신라는 200년 가까이 비교적 양질의 평화와 번영을 누릴 수 있었다.

 

반면 신라는 훗날 당나라에만 의존하여 발해를 대책 없이 적대시했다. 결과는 참혹하게 나타났다. 두 나라는 거의 같은 시점에 공멸하고 말았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 민족의 영토가 반 이하로 줄어들게 된 민족사적 손실을 야기했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대미정책의 범주에서만 작동한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지나치게 외세에만 의존한다면 당장의 이익은 볼 수 있을지언정 영영 북한 땅을 잃어버릴 수도 있게 된다. 외세는 의존의 대상이 아니라 이용의 대상이다. PSI는 정식 국제조약이나 단체가 아니다. 그것은 호전주의자 부시가 만든 무기 선진국들의 이익집단에 불과하다. PSI 적극 참여는 필경 역사의 단죄를 받을 만한 일이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필자 김갑수는 소설가로서 오마이뉴스에 <전쟁과 사람>을 연재 중입니다.

2009.04.04 16:33ⓒ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필자 김갑수는 소설가로서 오마이뉴스에 <전쟁과 사람>을 연재 중입니다.
#이동관 #김은혜 #PSI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소설과 평론을 주로 쓰며 '인간'에 초점을 맞추는 글쓰기를 추구합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한 번 씻자고 몇 시간을..." 목욕탕이 사라지고 있다 "한 번 씻자고 몇 시간을..." 목욕탕이 사라지고 있다
  2. 2 한동훈 표정 묻자 "해가 져서...", 이어진 기자들의 탄성 한동훈 표정 묻자 "해가 져서...", 이어진 기자들의 탄성
  3. 3 천재·개혁파? 결국은 '김건희 호위무사' 천재·개혁파? 결국은 '김건희 호위무사'
  4. 4 미 대선, 200여 년 만에 처음 보는 사태 벌어질 수도 미 대선, 200여 년 만에 처음 보는 사태 벌어질 수도
  5. 5 [단독] 명태균 "검찰 조사 삐딱하면 여사 '공적대화' 다 풀어 끝내야지" [단독] 명태균 "검찰 조사 삐딱하면 여사 '공적대화' 다 풀어 끝내야지"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