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에 떠나는 강화 올레는 모내기가 끝난 논을 끼고 돈다.
이유명호
8월의 햇볕은 따가웠고 달궈진 땅은 푹푹 쪄댔다. 폭염과 매연에 바람조차 숨죽인 서울을 떠나 강화도 북단을 걸었다. 돈대 위에 제비꼬리처럼 날렵하고 아리따운 연미정이 있다. 철조망 너머 바다로 흘러드는 한강 하구가 보이고 지척의 북한 땅은 민둥산이다. 한여름에도 벌건 흙빛의 헐벗은 산은 안타까웠다.
헝겊수건이 달린 밀짚모자를 쓰고, 김매는 대신 걷는 여자들. 줄줄 땀은 흐르지만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식혀주니 이래서 자연산이 최고라고 웃는다. 가요부터 동요 메들리, 새타령을 부르며 팔 휘젓고 빙그르 돌다가 마무리는 노들강변이 되어 버린다.
이 호젓하고 아름다운 길에 걷는 이가 아무도 없다. 섬 전체가 유적지이고 관광지라서 전 국민이 다 아는 강화지만 나는 '걷기 천국'임을 덧붙이고 싶다.
햇살 양명한 들판은 너르고 풍요로워 보기만 해도 배부르지. 해수면에서 우뚝 솟은 고려산, 진강산, 봉천산, 혈구산은 기개 출중하지만 삼사백 미터밖에 안 되어 올라가보면 북한산과 황해도 개성 송악산까지 바라보여 감탄을 금치 못한다.
해안선을 따라 섬 한 바퀴 걸어서 도는 데 삼사 일. 길가에서 익어가는 앵두나무와 장미덩쿨, 저수지에 비치는 산 그림자. 들판이 주는 평화로움에 고깃배가 쉬고 있는 서해 바다에 내려앉는 저녁노을, 섬 일주 걷기는 완결의 뿌듯함과 기쁨이 있다.
청동기 시대부터 근현대사까지 역사가 켜켜이 쌓이고 분단의 현실까지 사색할 수 있는 강화 땅을 꼭 아이들이 걸었으면 좋겠다. 자동차를 버리고 몸의 속도로 생각하며 천천히.
가을, 산에 올라 황금벌판을 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