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방위 장비 전시대
이장연
민방위 교육훈련 대상자들은 '교육 10분 전 입실'이라는 안내에 맞춰 계단을 터벅터벅 내려갔습니다. 그들을 쫓아 지하에 내려가니 다소 어두운 형광 불빛 아래 사람들이 여기저기 보였고 교육장 앞 복도에는 민방위 장비들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하나같이 볼품없는 것들이었는데 가장 눈에 띈 것은 '국민방독면'이었습니다. 2006년 당시 정부가 지하철역 등에 보급한 방독면 가운데 41만 개가 '불량'으로 판정되어 사회적 물의를 빚은 바 있습니다. 민방위 교육장에 전시된 '국민방독면'은 불량제품은 아니겠지만, 허술한 정부의 국민방독면 보급사업으로 돈을 챙긴 이들이 떠올랐습니다. 파마머리에 화장을 하고 아이보리색 민방위복과 완장을 찬 마네킹도 눈에 띄더군요.
전시장비를 구경하는 사이 공익근무요원들이 나와 자리를 잡더니, 좌석번호가 적힌 교육확인표 용지를 나눠주면서 신분증을 대조해 본인 여부를 확인했습니다. 늘어선 줄을 따라 교육확인표 용지를 받아 인적사항을 기재하고는 교육장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여기서도 주민등록번호를 기재해야 하더군요.
교육장은 널찍한 지하 강당이었는데 프리젠테이션을 하려는지 빔프로젝트와 노트북이 무대 앞에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교육관은 교육확인표를 작성 중인 사람들로 하여금 교육장 안 해당 좌석에 앉으라고 재촉했습니다. 교육확인표를 꼭 가지고 있어야 하고 교육 중에 해당 좌석에서 벗어나지 말라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또한, 전날 민방위 훈련을 예로 들며 몰래 빠져나가거나 말을 듣지 않으면 훈련을 다시 받아야 한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습니다.
이런 알쏭달쏭한 경고는 의례적으로 하는 말인데, 사람들은 이 말에 꼼짝달싹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번거로운 민방위훈련을 또 받아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감 때문입니다. 둘러보니 모두 하나같이 교육확인표를 손에 꼭 쥐고 있었습니다.
"교육 중 자리 이탈 시 불참 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