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골, 그 능선을 걸어서 가쁜 숨 몰아가며 비탈진 산길을 올라간다. 오랜만에 하는 등산이라서 그런지 이내 땀방울이 솟고 등줄기로 타고 내린다. 가다가 힘들면 퍼대지고 쉰다. 쉬엄쉬엄 올라가다 보니 드디어 산꼭대기가 보인다. 높이 1124m의 시루봉이다. 일행이 산불 경비 초소를 향하여 인사를 건넨다. 우리처럼 인사를 건네는 사람은 드문 일이라고 한다. 대부분 파김치가 되어 몸을 제대로 가누기 힘들어 한다면서 찬사를 보낸다. '아하 그랬구나'.
팔각정 정자 위에 오르니 바로 눈앞 산골짝에 작은 들판이 펼쳐지고 속리산 말티고개 같은 구불구불한 산길이 눈 안에 들어온다. 저 산길을 따라서 승용차로 보현산 천문대까지 오를 수 있다. 이렇게 땀 흘리지 않고도 오를 수 있는 길이지만 산은 이렇게 땀을 흘리며 오르는 데 그 맛이 있지 않을까. 편안한 길을 두고도 굳이 이렇게 험한 산길을 오름으로써 등산의 맛을 즐긴다.
옷을 모두 벗어젖힌 겨울나무를 보며 상상에 젖는다. 남녘에서는 진달래가 지고 있다는데 보현산에서는 이제 봉오리를 만드느라 여념이 없다. 앙상한 산철쭉으로 뒤덮인 보현산에 철쭉꽃이 꽃밭을 이루는 모습은 장관이지 않을까. 시루봉 '천수누림길데크로'는 참 아름답다. 천수 누림길이라니 이름도 멋있다. 천수가 뭘까. 천년을 산다는 말인가. 아니 하늘이 준 목숨대로 다 누린다는 말이겠지.
천수누림길데크로 쉼터를 별 모양으로 만들어 놓았다. 천문대가 있어 그랬나 보다. 우리는 이 별나라로 들어가 준비해온 도시락으로 밥상을 차렸다. 하늘 속 별나라에 온 기분이 되어 매화주 한 잔으로 흥을 돋우어 본다. 그때 갑자기 음악이 흘러나온다. 풍악소리다. 소리 나는 곳을 찾아 한참을 헤맸다. 소리통은 데크로 밑에다 걸어 놓았다. 햇빛 발전소가 가로등처럼 우뚝 서 있다. 계속 음악이 흐르는 것이 아니라 햇빛 발전으로 충전이 되면 그때마다 음악소리를 내놓는가 보다.
천문대에 이르렀다. 수많은 승용차들이 주차장에 즐비하다. 저렇게 차로 올라온 사람들과 우리처럼 땀 흘리며 산등성이를 타고 올라온 사람의 느낌은 서로 다르지 않을까. 그들은 산 위에 걸린 푸른 호수 같은 하늘을 느끼지 못한 것은 아닐까. '파랗다' 못해 저다지 푸른 하늘을.
보현산 천문대는 1996년에 완공되었다고 한다. 1.8m의 반사 망원경과 태양 플레어 망원경이 유명하다는데 이들을 직접 볼 수 없는 것이 아쉽다. 들리는 말로는 첫째 토요일에 개방을 한다는데. 아쉬움이 남는다. 이 아쉬움이 씨앗이 되어 뒷날 보현산 밤하늘을 찾으려나.
천문대가 있는 보현산은 역시 밤하늘을 보아야 어울리지 않을까. 밤이면 푸른 하늘에 걸린 별을 딸 수도 있지 않을까. 크고 뚜렷한 별이 쏟아질 것 같은 보현산의 밤하늘을 상상해 본다.
산을 내려 올 때는 올라갈 때와는 다른 절골 산길을 따라 별빛 마을로 돌아왔다. 별빛 마을, 누가 이렇게 곱고 예쁜 이름을 지은 것일까. 마을 사람들에게 물으니 본래 이름은 정각마을 절골이라고 한 것을 천문대가 생기고 나서 '별빛 마을'로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천문대 마을, 아님 성산마을로 이름 붙이지 않고 별빛마을로 이름 붙인 그 재치가 가상타.
보현산 절골. 이 산 이름은 불교의 보현보살에서 따온 이름임은 분명할 터. 도 문화재인 돌탑의 크기로 보면 제법 큰 절이 있었을 법하다.
별빛 마을엔 청정 미나리가 유명하다. 일행은 미나리를 사려고 하니 먼저 주문받은 미나리로 일손이 딸려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무료한 시간을 청정 삼겹살에다 미나리 보쌈으로 소줏잔을 기울였다. 술시가 따로 있나. 대낮부터 신선이 따로 없다. 별빛 마을 느티나무 또한 온 여름을 다 덮을 정도로 큰 가지를 뻗고 있다. 우리는 따뜻한 가슴을 안고 햇빛 쏟아지는 별빛 마을을 나왔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