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소산 자락에서 만난 젊은 도예가의 조선 사랑

일본 큐슈로의 나홀로 기차여행 4

등록 2009.03.24 20:27수정 2009.04.06 10:11
0
원고료로 응원

 세쨋날 2 

 

12시 40분에 정확히 아소고원 관광버스가 도착했습니다. 아소산에 들어서는 초입을 지나자 마자 함지박 눈송이가 새차게 떨어지고 있었어요. 온 천지가 새하얀 눈의 왕국입니다. 나무의 여린 가지에도, 길가 솜털 같은 억새풀 위에도 눈이 하얗게 내려앉아 있습니다. 탁 트인 하얀 들판위에 눈과 함께 빛이 가득 펼쳐질 때면 그 빛이 눈밭에 닿아 순간 허공으로 반사되어 눈이 부셨답니다.

 

얼굴에 하얀 분을 짙게 바른 50대 일본아줌마 안내원이 마이크를 들고 연신 관광안내하시네요.  바깥 설경을 열심히 설명하시는 듯합니다. 목소리는 가늘고 야들야들한데 그 톤이 높지 않아서 좋습니다. 덕분에 다들 저 처럼 창밖 은빛세계에 더욱 정신을 팔고 있는 거 같습니다. 구불구불 아소산 정상을 향해 오르고 있습니다. 

 

정상에 도착합니다. 2시 10분까지 버스로 돌아오라는 안내를 듣습니다. 한국인 관광객이 두 팀 6분이 있네요. 가족팀과 같이 움직이게 되었습니다. 꼬마가 무척 귀엽고 장난이 심하네요.

 

"아줌마, 왜 혼자 다녀?"

 

"왜 혼자야... 이렇게 친구를 만나게 되는데...하하.." 

 

꼬마의 손을 잡고 케이블카를 타고 오릅니다. 자연의 모습이 그야말로 대장관입니다. 완벽합니다. 이 순간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어요! 아이의 손을 잠시 놓고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에 섰습니다. 깊은 골골마다 눈이 얼마나 쌓여있을 지 가름할 수가 없네요.

 

'오늘은 걸어서 내려오기는 어렵겠구나.'

 

하지만, 이 야성의 대자연 앞에 그만 경건한 마음으로 가슴 벅차기만 합니다. 뭔가 가슴밑바닥에 메말라 있던 부분이 적셔지고 시원하게 뚫리는 듯한 느낌입니다. 케이블카에서 내려 바깥 분화구 쪽으로 걸어 나가는 길은 짧았지만 한 걸음 한 걸음 내딛기 어려웠습니다. 바람이 너무 심한데다가 눈이 바람을 타고 날리는 바람에 시야가 어지러웠거든요. 분화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유황가스 냄새가 코를 찔러왔습니다. 그러나 분화구 안은 눈안개만 자욱할 뿐 한 치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음이 오히려 더 아득한 깊이로 다가왔습니다. 눈 회오리 바람에 밀려 다들 일찌감치 대기실로 철수하고 몇몇 관광객들만 사진 찍느라 조금 더 지체하고 있었습니다. 궂은 날씨 앞에 관광은 힘들었지만, 저는 싫지 않았어요. 인간으로 하여금 쉽게 다가오지 못하도록 어떤 한계선을 보여주는 자연을 마주하는 것이 어쩌면 축복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직 시간이 좀 더 남아있었으므로 버스주차장 근처의 아소산 주변을 걷기로 했습니다. 푹푹 빠지는 눈밭은 그야말로 순결한 처녀림의 느낌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티 하나 없이 하얀 눈 위에 잠시 멈춰서 내려다봅니다.

 

'아! 아무것도 없구나. 희다는 의식조차 없는 이 막막한 느낌.'

 

눈을 감았을 때의 느낌 그대로입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어둠이 없는 흰빛이란 빛이 없는 어둠과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인가 봅니다. 세상이 온통 희다면 희다는 의식을 잃게 되는가 보지요.

 

그러니까 말이죠. 빛과 어둠과 같이 행복과 불행도 마찬가지가 아닐까하는 생각. 그래서 불교에서는 불행이란 우리가 이미 행복을 느끼기 때문이므로 사실 행복과 불행이란 둘이 아니라 하나라고 가르치나 봅니다. 본디 하나인 것을 둘로 나누어 좋고 나쁨으로 구분 짓는 이러한 이분법과 분별심이 우리로 하여금 진정한 행복에 이르지 못하게 한다고요. 불행하게 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하더군요.  갖고 싶은 것을 갖지 못해서. 갖고 싶은 걸을 모두 가졌기 때문에.

 

그럼 행복이란 늘 불행을 전제로 느껴지는 불안한 정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진정한 행복과는 거리가 먼. 그러고 보니, 행복을 느끼는 순간에 조차 이 행복을 잃을 까봐 이 순간을 좀 더 연장하고 싶어서 노심초사한 경험이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 행복한 시간이란 영원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우리들은 추억을 애써 만들고 사진을 찍어서 남기고 싶어 하고 과거를 놓치 못하나 봅니다. 그리고 새로운 행복할 사건을 만드느라 분주했었구요.

 

재빠르게 발자국을 꾹하고 찍어봅니다. 다시 현실감이 살아납니다. 제 발자국은 제가 서있는 이 곳이 땅위란 것을 분명하게 알려 주고 있었으니까요.                 

 

버스를 타고 다시 아소역으로 내려가고 있습니다.  아줌마 승무원의 안내멘트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노래를 부르시는 거예요! 시킨 사람도 하나 없는데....

 

노랫말에 무슨 뜻이 담겼는지 알 도리는 없지만 "아소, 아소"란 말귀가 들리는 걸 보면 아마도 아소산과 관련된 노래인가 봅니다. 가사와 상관없이 뜻밖에 제 귀가 찡긋찡긋 이 분의 노래소리에 빠져 들어갑니다. 구비치는 구성진 가락... 우리네 민요 같은 분위기...저 분은 아마도 평생을 이곳 아소산 자락에서 보낸 건 아닐까하는...지난 삶의 회한과 정이 노랫가락에, 그리고 진한 화장에 그어진 주름살 골골에 배어나는 듯합니다. 날씨 탓에 분위기가 더욱 살았던 것일까요?

 

아무튼 좋군요. 좋은 선물이었어요. 오늘 아소산 여행은 참으로 좋습니다. 노래가 끝나자 우리들은 일제이 박수를 보냈습니다. 감사합니다. 일본아줌마 승무원 그대는 멋지십니다! 

 

2시 40분에 다시 아소역 도착. 버스에서 내리자 다시 혼자가 되었습니다. 왠지 일정을 바꿔 이곳 아소산 근처 마을에서 오늘 밤을 묵고 싶어지더군요. 예정대로라면 바로 벱부로 이동해야하지만 여행 중에는 마음 가는 데로 갈 수 있으니 이 또한 매력 아니겠어요? 마음 가는 곳이 없을까를 오히려 두려워할 뿐입니다. 일단은 시간이 여유로우니 아소산 정상에서 맘껏 걷지 못한 한을 이곳에서 풀기로 했습니다. 마을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 보기로 했어요.

 

계속 걸어 봐도 뒷골목이 오히려 더욱 깨끗하리 만큼 깔끔한 농촌 마을입니다. 어느 집을 지나려하는데 마당에 나무 한 그루가 눈에 띄더군요. 부리가 하늘로 향해 서있는 두루미 한 마리 모양으로 가지치기를 했지 뭐예요. 그러고 보니 집안채로 들어가는 마당 구석 구석에 디즈니 만화의 주인공들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들, 도날드 닥, 피노키오 등  꼬마아이 몸집만한 크기의 인형들이 사방에 놓여있었어요. 마지막으로 방문 앞 디딤돌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꼬마신발 한 켤레가 보이구요. 그 꼬마는 이 세상에서 참으로 드물게 행복한 아이일 거라는 믿음이 생겼어요. 네...아이는 지금 신나는 꿈을 꾸고 있지는 않을까요?

 

이 마을에도 역시 신사가 있습니다. 그리고 커다란 나무 옆 구석에 자그마한 1m가 체 안될 것 같은 투박한 돌부처상이 젖먹이 아기처럼 알록달록 천으로 된 턱받이를 하고 있네요. 절이나 마을에 작은 불상들은 예외 없이 저런 턱받이를 하고 있더군요.(꺄웃뚱!) 그러고 보니 일본에 오면서 그 흔하디 흔한 상징물이 통 뵈지 않네요. 교회가 없네요. 십자가가 없습니다. 기독교신자가 전체인구의 1%미만이란 말이 사실인가 봐요. 그러나 그보다 더 인상적인 건 이들 신사와 부처상이란 그저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일본인들의 생활의 중심에 여전히 살아있는 거였어요.

 

그러고 보니, 우리에게도 오래 전 뒷산에 성황당있었고, 마을 중심이나 집에 조상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사당, 그리고 정자나무 아래 미륵불이나 바위에 새겨놓은 마애불이 있었잖아요. 그러나 지금은 우리들의 마음에서 멀리 사라지고, 우리 생활과는 거리가 있는데요. 안타깝습니다. 지켜야할 것이 없어지고, 과거와 미래를 이어주는 가치가 사라지고, 현실에서 받을 수없는 위로를 주는 정신영역을 잃어버린 것만 같습니다. 어쩌면 일본인들은 이들의 가치를 알고 있었기에 일제강점기에 우리네 마을에서 일사분란하게 뿌리를 뽑아버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들이 갖는 가치를 없애버림으로써 조선백성들은 혼을 잃은 박제 같은 백성이 되어 부리기 쉽다고 생각했던 것만 같습니다. 이제는 서양문화에 길들여져 다시는 돌아갈 수없는 강을 건넌 것만 같은 느낌으로 씁쓸합니다. 일본인 마을을 지나며.....이런 생각을 다 합니다.

 

마을은 아소산 초입까지 넓게 자리 잡고 있었나봅니다. 한참 돌아다니다 보니 어느새 아소산 골짜기로 들어가는 길 위에 서있었어요. 눈발이 많이 가늘어져있네요. 산 쪽으로 혼자 터벅터벅 걷고 있습니다. 연줄에서 툭 떨어져 바람 따라 허공에 떠다니는 연이 된 듯한 심정입니다. 두 다리가 절로 움직여주는 것이 고마울 뿐입니다. 이대로라면 다시 아소산 정상까지라도 오를 것만 같습니다.   

 

한적한 숲길 오른쪽으로 좁디 좁은 돌계단이 보입니다. 계단이 끝나는 곳에 나무건물이 있고 창가에 따뜻한 불빛이 보입니다. "阿蘇坊窯"라는 간판이 붙어있습니다. 아마도 아소 도예 공방 쯤 되나봅니다. 인기척을 느꼈던지 누군가 문을 열고 나옵니다. 발끝까지 내려오는 작업용 앞치마에 누런 흙을 잔뜩 묻힌 체 맑은 눈빛을 굴리며 이 초대하지 않은 손님을 마중 나온 이는 이 공방의 作陶家 山下 太 상입니다. 35살의 이 젊은이는 고향은 하카타로 이곳 아소산 자락에 자리 잡은 지 6년. 혹시나 도예가 집안인지 궁금했습니다. 그렇지 않다고 하네요. 아소산에 들어온 이유는 좀 더 조용한 자연에 가까운 곳을 찾았다는 것과 아소산의 붉은 찰흙을 마음껏 삽질해서ㅋㅋ 퍼올 수 있기 때문이라해요. 자연의 혜택을 톡톡히 누리는 셈이지요. 그런데 그뿐이 아니었습니다.

 

작업실을 지나 전시실로 쓰는 공간으로 안내해줍니다. 그의 작품들은 모두 흙에서 태어난, 흙의 단단하고 따뜻한 기운을 품고 있었어요. 선들은 어딘지 모르게 사람의 손길이 아닌 자연의 손길에서 만들어진 것 같은 자연스러움이 묻어있었고요. 그동안의 보아온 일본사람들 작품의 섬세한 균형과 완벽미가 결여된 대신 단순하면서 훨씬 유연한 부드러움이 느껴지더군요. 그가 커피를 한 잔 내놓습니다.

 

"자연을 많이 닮은 거 같아요. 선에 자유로움이 묻어있어요. 자연스럽게 흐르는 선인데 어떤 규칙이 없어서 좋은 거 같아요..."

"그렇게 보셨다니 고맙습니다...제가 알기로는 한국이야말로 뛰어난 도자기 장인들이 많은 걸로 알고있습니다."

"이곳 큐슈에도 임진난때 끌려온 조선인 도예촌이 있는 걸로 들었어요.."

"맞습니다. 저는 정식 교육기관을 통해 도예를 배운건 아니예요. 제 스승님 아래에서 개인적으로 사사를 받은 건데요. 그 분을 통해 조선도예가의 장인정신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들은 도예를 통해 '흙'의 기운을 인간들 삶 가까이 가져오는 법을 알고있다고요. 조선사람이던 일본사람이던 자연을 통해 삶을 배우는 마음이 있다면, 굳이 국적이 뭐 대수겠어요? 이미 하나가 아닐까요? 그런 의미에서 조선사람을 사랑합니다..하하하.."

"기분 좋은 데요...솔직히 일본인을 통해 한국인의 정신적 가치를 인정하는 말씀 들어본 적 없었어요.  물론, 이렇게 가까이 일본분을 만나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눈 적도 없지만..하하.." 

 

그는 두터운 사진첩 두 권을 보여줬어요. 사진 속에 아소산의 크고 작은 형상들이 빼곡이 담겨있었는데요. 멀리 구름과 산이 만나는 모습부터 비온 뒤 고인 물웅덩이, 물위에 떠 있는 낙엽들, 눈 속에 파묻힌 나뭇가지, 연잎 위에 고인 물방울들,  겨울철 개울가 위에 맺힌 얼음 무늬들...조각돌 무덤...그러고보니, 이 모든 것이...네..그의 눈에 비친 모든 것들은 그대로 흙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었던 거예요.

 

"저는 이 사진들로 도자기의 모양과 선을 본 따 만들려고 노력해요. 점이 모여 하나의 선을 이루고 선이 모여 하나의 형상을 이루죠. 그러니까 점 하나 하나가 저마다의 개성으로 살아있어야 형상이 살아있게 되는 겁니다. 자나 콤파스에 의지해서는 살아있는 선이 나올 수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분이 아소산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거 같더군요. 그의 얼굴을 다시 한번 바라봅니다. '우연이란 없구나...'를 다시 한번 느낍니다.

 

그가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어졌습니다. 우리들은 작업실로 돌아왔고요. 물레가 다시 돌아가기 시작합니다. 빙글빙글 물레는 돌아가고 그의 두 손이 촉촉이 반죽이 된 흙덩어리를 감싸안을 때마다 흙은 수줍은 듯 움찔움찔하지만 결국 그의 손끝 따라 모양이 끊임없이 변합니다. 그가 어느 정도 몰입한 듯합니다. 저는 조용히 그곳을 빠져나옵니다. 

 

해가 상당히 기운 것을 알겠습니다. 여행자는 하루 중 이 시간대가 가장 바빠지는 거 같아요. 당장에 쉴 곳을 마련해야하니까요. 일단 마을 쪽으로 돌아서 내려가기로 했습니다. 좀 빠른 걸음으로 십 여분이나 지났을까요. 팻말이 두 개 보입니다. 아소역으로 1.4km 팻말과 아소유스호스텔을 가리키는 팻말. 참 잘되었습니다. 아소유스호스텔(0967-34-0804)이 바로 이곳에 위치하고 있었네요. 거침없이 문을 열고 들어갑니다.

 

넓은 홀이 나오는데 홀 안은 빈 공간 없이 어수선 그 자체더군요. 크고 작은 테이블과 그 위에 널브러져있는 온갖 관광안내 팜플렛, 소품들, 잡동사니와 잡지류. 진정한 유스호스텔답게 배낭여행자들의 흔적들이, 이 유스호스텔의 오랜 역사를 대변해주는 듯했어요.

 

부엌 쪽에서 한 여행자가 코펠을 들고 나옵니다. 의자 위에 놓여있는 그의 배낭 크기가 대단합니다. 이 친구는 대만에서 온 배낭족으로 배낭 속에 텐트까지 짐어 지곤 일본일주를 하는 중이라더군요. 그는 손수지은 스파게티와 렌지에 데운 돈까스를 우적우적 먹으며,

 

"Jack이라고 불러주세요. 일본여행에서 제일 힘든 게 뭔지 아세요? 도대체 일본식당에서는 먹어도 먹어도 채워지지 않는 이 놈의 허기예요. 하하하...그래서 직접 수퍼에서 사다가 간편조리해서 먹기로 했죠. 좀 드실래요?"

 

그러고보니 저녁을 아직 해결하기 전이었어요. 둘러보니 컵라면을 100엔에 팔고있네요.

 

"오! 싼 거예요. 보통 슈퍼에선 150엔 이상 해요."

 

국물 맛이 좋았어요. 레멘을 먹고 나선 그가 꺼낸 사과와 제가 꺼낸 토마토 귤을 테이블에 벌려놓았습니다. 그리고 10엔짜리 동전 두개를 동전통에 집어넣고 홍차와 녹차 한 잔씩을 곁들였습니다. 훌륭한 후식입니다. 우리는 서로 웃으며 행복한 한 때를 보냈습니다. 오랜만에 부담 없는 대화를 실컷 나눈 거 같더군요.

 

방은 도미토리로 8개의 침대가 위 아래로 포개져있었지만 각각 독방을 쓰는 셈이었으니 오히려 경제적인...착한 가격? (ㅋㅋㅋ)인 거지요. 잠이 잘 올 거 같습니다.

 

'오늘은 참 좋은 날이었어. 아소산과 아소산의 사람들 모두!'

2009.03.24 20:27ⓒ 2009 OhmyNews
#일본여행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여행을 좋아하는 자.

이 기자의 최신기사 여행하는 자여! 자유로워라!

AD

AD

AD

인기기사

  1. 1 어린이집 보냈을 뿐인데... 이런 일 할 줄은 몰랐습니다 어린이집 보냈을 뿐인데... 이런 일 할 줄은 몰랐습니다
  2. 2 "한 번 씻자고 몇 시간을..." 목욕탕이 사라지고 있다 "한 번 씻자고 몇 시간을..." 목욕탕이 사라지고 있다
  3. 3 49명의 남성에게 아내 성폭행 사주한 남편 49명의 남성에게 아내 성폭행 사주한 남편
  4. 4 '나체 시위' 여성들, '똥물' 부은 남자들 '나체 시위' 여성들, '똥물' 부은 남자들
  5. 5 이창수 "김건희 주가조작 영장 청구 없었다"...거짓말 들통 이창수 "김건희 주가조작 영장 청구 없었다"...거짓말 들통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