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타니 겐지로가 쓴 <아이들에게 배운 것> 겉 표지
양철북
<아이들에게 배운 것>을 쓴 하이타니 겐지로는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 <하늘의 눈동자>, <바다의 풍경> 등 국내에도 널리 소개된 세계적인 어린이 문학작품을 쓴 일본 작가다. 국내에 소개된 그의 책은 대표작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를 비롯하여 40여 권에 이른다.
현대 일본아동문학의 대표적인 작가인 하이타니 겐지로는 수많은 작품을 통해서 이른바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파괴되는 나약한 인간성을 성찰하고, 참된 인간으로 살아가는 길 그리고 참된 교사로서 살아가는 길을 보여준 작가였다.
특히, 인간과 인간의 관계,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연기적 세계관과 자연주의적 생명사상으로 그려냈을 뿐 아니라 17년간의 교사 생활을 바탕으로 아이들의 삶과 참된 교사로서 길을 섬세하게 표현하는 작품들을 많이 남겼다.
그중에서도 <아이들에게 배운 것>은 그가 작품 활동과 생활 속에서 깨달은 인생철학을 압축한 것으로 '어린이는 인간의 뛰어난 원형'이라는 생각과 교사는 '아이들에게 배운다'는 교육원리를 잘 보여주는 어린이론과 교육론을 담고 있는 책이다.
<아이들에게 배운 것>은 NHK의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인간대학'이라는 교양강좌 시리즈에 약 2개월에 걸쳐 방영했던 내용을 활자로 옮겨 쓴 12편의 에세이를 모은 책이다. 첫 번째 에세이 '어른보다 어른이 아이들' 편에서는 어린이 잡지 <기린>에 실린 아이들의 마음이 잘 드러나는 몇 편의 글을 소개하고 있다.
그중에서 특히 마음에 가는 작품은 1학년 야마쿠치 마사요가 쓴 것이다.
인형은백화점에서얼마든지 살 수 있지만,나는 어디에서도 살 수 없다.온 세상에나는 딱 하나그런데 엄마는 나를 야단친다.(본문 중에서) 이 책에 나오는 여러 편의 아이들 글 중에 가장 마음에 닿은 글이다. 아이들 키우는 부모들에게 꼭 읽어보라고 권해주고 싶은 글이다. 다른 글을 한 편 더 읽어보자.
사람을 키우는 가치 있는 교육이란?
"소가 병이 났습니다. 가즈마사네 집 소보다 엄청(심한) 병에 걸렸습니다. 내가 소 외양간에 들어가서 소 다리를 지푸라기로 문뎠더니(문질러 주었더니), 눈물이 마음 속에서 울고 있습니다." (본문 중에서)하이타니 겐지로는 6학년이 되도록 맞춤법을 제대로 익히지 못한 사와 마사히코라는 어린이가 소에 대하여 쓴 산문 글을 소개하면서 아이들에게 '가치 있는 교육은 무엇일까?'하는 질문을 독자들에게 던집니다.
"교육은 양날의 칼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어린이가 생명에 대해 품는 연민을 인간의 아름다운 정신이라고 보는 것도 교육이 아닐까요? 혹은 그런 것은 무시하고 표기법이 잘못됐으니 고치라고 하는 것을 교육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어느 쪽이 사람을 키우는 가치 있는 교육일까요?" (본문 중에서)여러분은 어느 쪽이 더 가치 있는 교육이라고 생각하세요? 많은 경우 우리는 머리로는 쉽게 생명에 대한 연민을 품는 아이의 마음을 교육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표기법을 고치라고 교육하면서 살아가고 있을지 모릅니다.
사람은 누구나 어른이 되면 아이를 가르치는 사람이 되지만, 많은 아이들은 어른이 되고 나면 배우고 가르치는 일은 이제 자신과 관계가 없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다. 사람은 죽을 때까지 배우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잊고 살아가기 때문에 어린이가 배우는 것은 당연하지만, 어른은 더 이상 배우지 않는다는 생각에 빠지기 쉽다는 것이다.
교사는 아이들에게 배운다하이타니 겐지로는 사람은 죽을 때까지 배울 뿐만 아니라 배움은 반드시 어떤 상대를 통해서 일어난다고 이야기합니다.
"배우고 변화하는 것은 혼자서는 할 수 없습니다. 동료가 필요합니다. 동료란 선생님이기도 하고 부모님이기도 하고 친구이기도 하고 혹은 자연이기도 합니다. 책도 그중에 포함되겠지만 책은 어차피 사람이 쓴 것이니 그냥 사람의 변형이라고 생각합시다." (본문 중에서)나와 상대는 서로 배우는 관계이고, 그것은 교사와 어린이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하이타니 겐지로는 초임 교사 시절에 만났던 '마코토'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들려줍니다. 그가 2학년인 마코토를 만났을 때는 학교에서 이 아이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의 말썽꾸러기였다고 합니다.
어느 미술시간, 마코토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도화지를 여러 장 가지러 나옵니다. 역동적인 그림을 그리던 아이는 여러 장을 연결해서 그리는 것이 불편하자 더 큰 종이를 달라고 합니다.
젊은 하이타니 선생은 더 큰 종이를 요구하는 아이를 위해서 윤전기에 사용하는 두루마리 종이를 사다주고 넓은 강당 바닥에 펼쳐놓고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해줍니다. 그러자 마코토라는 말썽꾸러기는 대형벽화를 완성시키고, 돔을 그려 장식하는 굉장한 그림을 그려냅니다.
하이타니 겐지로는 마코토를 통해 어린이들이 가진 가능성, 엄청나게 큰 가능성을 배울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한 시간에 한 장의 그림만 그려야 한다는 것은 교사가 만든 틀에 지나지 않습니다. 어린이가 그 틀에서 빠져나갈 정도로 큰 힘을 보일 때에는 교사가 그 틀의 제한을 없애 주어야 합니다." (본문 중에서)마흔 명의 아이를 맡은 교사는 아이들에게 맞는 마흔 가지 방법을 생각해내야 한다고 말 합니다. "마흔 명을 하나로 뭉뚱그려서 하나의 답만을 가르친다면, 그것은 교육도 뭣도 아니"라고 말합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오늘날 우리는 마흔 명이 아니라 나이가 같은 전국에 있는 수만 명의 아이들을 하나로 뭉뚱그려 하나의 답만을 가르치는 교육도 뭣도 아닌 짓을 반복하는 어리석은 일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렇게 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것이 교사가 할 일이라고 강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