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기가 자르르
김대갑
그러나 지난 토요일의 어느 날, 지인들과 산행을 즐긴 후 나 혼자서 집으로 터벅터벅 돌아가던 길에 눈에 번쩍 뜨이는 물건 하나를 발견했다. 한 눈에 보기에도 범상치 않아 보이는 재첩. 시중에서 파는 재첩과는 모양부터가 판이하게 다른 재첩이 국산 재첩이라는 가여운 표지 아래 우람하게 앉아 있었다.
옻빛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그 재첩은 우선 크기부터가 달랐다. 시중에서 파는 재첩보다 거의 두세 배의 몸체였고, 물 속에서 투명한 혀를 내미는 재첩의 움직임은 싱싱함 그 자체였다. 무심코 지나쳤다가 다시 그 자리로 돌아와 할머니에게 가격을 물었다. 5천원이란다. 누가 가져갈세라 냉큼 사서 한달음에 집으로 달려갔다. 아내더러 어서 끓이라고 성화를 퍼부었다. 덤으로 산 전구지 한 단을 함께 내밀면서 말이다.
잠시 후, 냄비에서 뽀글뽀글 끓는 재첩국. 국물이 어찌 그리 맑은지. 시중에서 파는 재첩과는 국물 빛이 달랐다. 냄비에는 온통 연푸른빛이 감돌고 있었다. 청명한 가을 하늘이 이처럼 맑을까, 아니면 남태평양의 에메랄드 바다가 이처럼 고울까. 그 연하 디 연한 푸른 색감은 결코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을 것이다.
식탁에 앉아 재첩국의 향훈을 감상하는 것 자체가 즐거운 일이었다. 사기그릇에 가득 담겨져 나온 재첩국. 정구지를 숭숭 썰어 살짝 띄어 놓고, 재첩국이 피워 올리는 향을 흠뻑 들이 마시며 국물을 떠먹었다.
아, 절로 나오는 탄성. 그 예전 골목길 어귀에서 만난 재첩국 맛이 그대로 혈관 속으로, 심장 속으로 흐르고 있었다. 시원하다 못해 신선함이 물컹물컹 묻어나는 재첩국. 처음엔 심심한 듯 하다가 이내 깊은 뒷맛을 안겨주는 토종 재첩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