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씻기...손을 씻을 때도 물이 콸콸 나오게 하고 씻어야 개운하다.
이현숙
특히 목욕탕에는 작은 대야 하나만 들여 놓아도 물을 절약할 수 있는데, 그것 때문에 목욕탕이 지저분해 보인다는 이유로 그냥 물을 흘려보내기 일쑤다. 따뜻한 물이 나오기 전이나 마지막 헹굼물을 대야에 받아 놓았다가 바닥청소라도 하면 그만큼 물이 절약되는데. 마구 쓰고 있기는 하나 물 부족에 대한 위기감이 그날 우리들의 화제였다. 뭔가 대책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통한 것이다.
"제한급수를 하든지 해야 물을 적게 쓰지."
언니의 말이었다.
"아냐, 수도요금을 대폭 올려야 돼."
두 아이를 키우는 조카의 얘기였다.
"얘야, 그러면 부유층들은 그대로 펑펑 쓰고 없는 사람들은 그 흔한 물도 못 쓰고 더 힘들어 진단다."
"그래도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어쩔 수 없어. 값을 올려야 더 절약을 한다구."
언니와 조카가 주고받는 말을 듣다가 퍼뜩 그게 생각났다. '정량제!'
"아, 정말 수돗물은 정량제를 할 수 없을까? 집집마당 할당량을 정해 놓고 그만큼만 나오면 더 나오지 않게 만드는 거 말야."
"글쎄, 그거 하면 좀 덜 쓰긴 할 거 같다. 그런데 또 지나친 규제라고 반발하는 건 아닐까?"
정말 대단한 발상인 것 같지만 시행하기는 어째 좀. 그렇더라도 우린 물에 대한 대책 회의라도 하는양 심각하게 말을 주고 받았다. 얼굴이고 그릇이고 빨래고 철철 물을 흘려 보내면서 쓰고도 아깝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으니, 강제로라도 우리를 말려 주었으면 하는 게 공통의 희망사항이었던 거다.
지나치게 깨끗한 걸 좋아하는 것, 그리고 모든 걸 급하게 서두르는 것이 문제일 것이다. 물을 철철 흘려보내면서 닦아야 제대로 닦아진 것 같고, 뭐든지 빨리빨리 해야 하니 물 받는 시간도 지체할 수 없어 수도꼭지를 세게 틀어 놓고 해야 직성이 풀리는 습관이.
우리가 어릴 땐 집집마다 우물이 있지 않았다. 우물이 있는 몇 집 빼고는 거의 동네 공동우물을 사용했다. 그래서 동네 우물은 늘 소문의 근원지였다. 빨래를 하면서 또는 물을 길러 와서 몇몇이 모여 수군거린 게 씨가 되고 꽃이 피어 온동네를 돌아다니게 했던 그 공동 우물. 대중가요 가사처럼 우물가에서 바람난 처녀도 있었고, 아무 근거도 없는 뜬소문이 온동네를 돌아다닌 적도 있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빨랫바구니를 들고 다니기가, 또 일일이 물동이를 이고 다니기가 힘들다고 각자 집안에 우물을 파기 시작했고, 결국 동네우물은 버림 받았다. 그러다 집안에 있는 우물에서도 두레박으로 물을 퍼올리기 힘들다고 파이프를 연결해 수도꼭지를 끼웠고 우물둥지만이 아닌 부엌이나 목욕탕까지 물이 콸콸 나오도록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