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서사 축서사
김수종
1,300년을 넘게 이어오던 축서사는 구한말 을사보호조약(서기 1905년)과 정미 7조약(서기 1907년)으로 일제가 조선침략야욕을 드러내자 백성들이 분개하여 의병으로 뭉쳐 무장 투쟁을 할 때, 일본군들이 의병토벌을 위해 방화하여 대웅전만 남기고 전소시켰다. 이 때문에 축서사는 하루아침에 잿더미가 되었고, 오랫동안 전해 내려오던 수많은 유물들이 없어지고 말았다.
그 후 한동안 폐사로 있다가 일제 말에 삼성각과 한국전쟁 직후 요사채를 신축하여 사찰의 체모를 유지하다가, 1980년 전후에 요사채와 토굴 2동을 신축하였다. 이후 제대로 된 절의 모습을 갖춘 것은 최근의 일이다.
문화재급 보물로는 대웅전의 석조비로자나불로, 높이 108cm의 이 석불은 창건 당시 의상이 봉안한 것으로 통일신라 말기의 불상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이외에도 석등 및 석탑이 있다. 이밖에 잘 다듬었던 흔적이 보이는 맷돌, 주춧돌, 석축 등 석재들이 사찰 주변 곳곳에 흩어져있다.
또 하나의 자랑거리는 괘불이다. 서기 1768년에 점안한 괘불로서 크기는 가로 550cm, 세로 880cm, 면적 48.4제곱미터로 대형이다. 입상 아미타불로서 성스러운 존안과 특이한 육계, 풍만한 가슴과 부처상으로 보기 드물게 화려한 의상 및 특이한 후광배는 불자들을 놀라게 한다. 큰 회화이면서도 적당한 구도와 섬세하고 뛰어난 솜씨는 관람자를 감탄케 한다.
실재로 문수산 아래 축서사를 가보면 부석사를 방문했을 때의 감탄사 이상의 경탄사가 나온다. 독수리를 닮은 절 뒤의 산세도 놀랍고, 대웅전 앞에서 바라본 정면의 풍광도 부석사와 비등하다.
봉화군을 찾는 많은 관광객들이 청량산과 청량사를 주로 방문하지만, 사실 문수산의 축서사를 찾지 않고 봉화를 보았다고 말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좋은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