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형 외톨이' 전문가, 여인중 동남신경정신과 원장
홍현진
'(방 안에) 틀어박히다'라는 뜻인 '히키코모루'의 명사형인 히키코모리는 '6개월 이상 집밖 출입을 안 하고 가족 이외에 친밀한 관계가 없는 사람'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히키코모리를 정의하게 되면, 히키코모리의 범위가 매우 넓어진다. 발명가가 구상을 하느라 6개월 동안 밖에 안 나가도, 누군가 다리가 부러져 6개월 동안 집밖 출입을 못해도 모두 히키코모리의 범주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혼란을 막기 위해 여인중 원장은 기존 히키코모리 정의에 두 가지를 더했다. 첫 번째는 '생산성이 없다는 것', 두 번째는 '혼자 지내는 게 괴롭다는 것'이다. 그는 흔히 히키코모리의 특징이라고 생각되는 인터넷 중독의 경우, 중독은 즐거움의 개념이기 때문에 히키코모리가 아니라고 말했다. '마니아'를 뜻하는 '오타쿠' 역시 마찬가지다.
"히키코모리라는 것이 보통명사화 돼 버렸다. '틀어박혀 있는 사람'이란 뜻으로 굉장히 광범위해졌다. 우리나라도 똑같다. '창의적 외톨이'라는 게 있다. 우리나라 위인들 중에도 그런 사람들이 많다. 내가 '반사회적 외톨이'라고 부르는 '범죄형 외톨이'도 있고, '은둔형 외톨이'도 있다. 외톨이지만 다 다르다. 그런데 은둔형 외톨이가 보통명사화되면서 이 사람 저 사람 다 끼워 넣는다. 범죄만 일어나면 은둔형 외톨이 이야기하는데 그 사람들은 은둔형 외톨이가 아니다. 그런데 단지 혼자 지냈다고 해서 은둔형 외톨이라고 해버린다. 니트(NEET, 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 '구직활동포기자'를 뜻함) 같은 경우에도, 은둔형 외톨이랑은 개념이 다른데 자꾸 섞어 쓰니까 개념이 모호해진다.
일본에서 흉악한 범죄가 일어나면 '히키코모리'라고 안 한다. '히키코모리 상태'인 사람이라고 하지. 우리나라도 범죄자를 은둔형 외톨이라고 표현하면 안 된다. 그러면 사람들이 은둔형 외톨이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을 갖게 된다."일본의 히키코모리와 한국의 은둔형 외톨이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여 원장은 히키코모리를 '에스프레소'에, 은둔형 외톨이를 '카페라테'에 비교했다. 일본의 히키코모리가 한국의 은둔형 외톨이에 비해 은둔 기간도 길고, 증상도 더 심하다는 것. 이는 일본의 사회문화적 배경과도 관련이 있다.
"일본은 혼자 지내는 것에 대해서 별 상관을 안 한다. 사회도 혼자 지내는 게 편하게 돼있다. 그런데 한국은 밥 혼자 먹으러 다니면 이상한 사람이라고 한다. 혼자 있는 걸 그냥 내버려두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은둔형 외톨이는 6개월 이상이 아니라 '3개월 이상 집밖 출입을 안한 것'이 기준이 된다. 그리고 '사람과 관계'라는 개념이 들어간다. '외톨이'라는 말에도 사람과 맺은 관계가 없다는 의미가 포함돼 있다." 은둔형 외톨이는 왜 생기는 걸까은둔형 외톨이의 원인은 무엇일까. 여인중 원장은 사회적인 원인보다는 개인적 성향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물론 가정·학교·사회가 영향을 줄 수 있지만 근본적인 원인이라고는 보기 어렵다. 제일 중요한 건 개인적인 성향이다. 그게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좌절을 겪으면 헤어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살면서 좌절은 수도 없이 많다. 학교를 떨어지든 왕따를 당하든 애인과 헤어지든. 그런데 은둔형 외톨이는 그러한 좌절을 극복하지 못하고 틀어박히게 되는 거다."여 원장은 감기를 예로 들면서 "감기는 바이러스가 원인이지만, 면역력이 강한 사람은 감기에 잘 걸리지 않는다"면서 "은둔형 외톨이는 좌절에 대해 면역력이 약한 사람들이다"고 말했다. 이어 여 원장은 "은둔형 외톨이는 커뮤니케이션을 못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커뮤니케이션을 못하니까 혼자 있는 거다. 그런 아이들에게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 능력을 가르쳐주고, 좌절했던 마음을 달래주는 게 정신과 의사의 일이다. 물론 이 아이가 히키코모리가 아닌 아이들처럼 사회생활을 잘할 순 없겠지만 자기 나름대로의 역할은 할 수 있게 도와준다.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한다."여인중 원장은 은둔형 외톨이를 '생물학적인 병'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진단을 하고 치료를 해야 하는, 그리고 치료를 하면 나을 수 있는 병이라는 것이다.
그는 "보통 병원에 오는 은둔형 외톨이들은 감기 걸리듯이 갑자기 오는 게 아니라, 2, 3년씩 방안에서 견디다 못해서 오는 아이들"이라며 "그룹치료·리듬치료·약물치료 등 8가지 치료방법을 복합적으로 쓰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여 원장은 "방문치료를 통해 3~5년 동안 방안에 있던 아이들이 나은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문제는 병원을 찾는 은둔형 외톨이들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다.
"10년 동안 진료를 했지만 은둔형 외톨이 환자는 220명 정도밖에 없었다. 은둔형 외톨이는 치료가 돼야 하는 질병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걸 잘 모른다. 그냥 나으려니 생각하다가 5년, 10년 시간이 흐른다. 제일 중요한 게 진단이다. 정신분열증과 우울증의 치료법이 따로 있듯 외톨이 치료도 방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언론은 왜 범죄사건만 터지면 은둔형 외톨이 찾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