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유시민은 "양복 입은 침팬지에게 잡아먹히지 않으려면, 깨어 있어야 한다"고, "다른 사람을 깨우고, 깨어 있는 다른 사람과 손잡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럼 한 손에 들어야 할 '무기'는 무엇인가. 유시민에게는 역시 '헌법'이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꿈과 비전은 대한민국 헌법에 다 들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유시민의 헌법 해설 몇 가지만 보자.
모든 국민에게는 신체의 자유가 있다. 경찰이나 검찰은 판사가 발부한 영장이 없이는 국민을 잡아갈 수 없다. 헌법 제12조다. 촛불 집회 강제 연행에 맞서는 방법이 나온다. 국민은 자기가 살고 싶은 곳에 살 수 있고 어디든 가고 싶은 곳에 갈 수 있다(제14조)는 대목에서는 '용산 참사'가, 국민은 자기가 생각하는 바를 마음대로 말할 수 있고 책으로 낼 자유가 있다(제21조)를 통해 '미네르바'와 '사이버모욕죄'가 떠오른다.
"우리 마음 속의 왕을 죽여야 민주공화국이 산다"
나아가 유시민은 대통령 취임 선서 첫 구절 역시 "헌법을 준수한다"임을 상기시킨다. 대통령은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게 아니라 헌법에 따라서 나라를 다스려야 하는 존재임을, 5년 계약직 최고위 공무원에 불과하다는 사실에 눈을 뜨자고 강조한다. 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란 '당위'를 '존재'로 전환하는 주체는, '후불'의 당사자는 바로 시민 개개인이기 때문이다.
"왕국의 신민에게는 자애로운 '국부'와 '국모'가 필요하다. 그러나 공화국의 주권자에게는 대통령과 영부인이 필요할 따름이다. 우리 마음 속의 왕을 죽여야 민주공화국이 산다. 대통령을 왕으로 생각하는 견해는 우리의 문화유전자 안에 남은 침팬지의 그림자일 뿐이다. 대통령은 무소불위의 권력자가 아니며 또 그래서도 안 된다."
지극히 주관적인 평점
신영철 대법관 ★★★★★
최근 사회 변화가 역사퇴행이라 생각하는 사람 ★★★☆
그래서 숨을 깊게 들이쉬고 천천히 내쉬며 걸어가고자 하는 사람 ★★★
구체적인 대안까지 찾고 싶은 사람 ★★☆
헌법 주요 조문이 잘 암기되지 않는 수험생 ★★★★
'좌파 정권' 꼬투리를 잡고 싶은 사람 ★★☆
이제야 나라가 제대로 서고 사회와 역사가 올바른 길에 접어들었다고 생각하는 사람 ☆
이번에 돌베개에서 나온 유시민의 <후불제 민주주의>는 크게 1부 '헌법의 당위'와 2부 '권력의 실재'로 나뉜다. 1부를 통해 헌법은 당위일 뿐이고 개개인의 주권의식을 높여야 한다는 '당위'를 강조한다면, 2부에서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권력의 실재와 헌법의 당위 사이의 거리를 논하고 있다. 덕분에 유시민의 '성깔'이 제대로 나오는 것은 역시 2부다.
1부를 통해 현 정권을 '양복 입은 침팬지'로 빗대 우회적으로 비판했다면, 2부에서는 작심한 듯 '위험수위'를 넘나든다. 이명박 대통령을 "표를 얻기 위해서는 무슨 말이든 하는 정치인"이자 "각종 헌법기관까지 사유화하여 언론장악과 정치보복의 첨병으로 동원하는 위선적 대통령"이라 규정한다. 정말 대책이 없다는 대목에서는 이런 글도 나온다.
"진짜 심각한 사태는 대통령이 지성이 부족해 보고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사실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자기가 제일 잘 안다고 생각해 참모의 보고를 제대로 듣지 않거나, 대통령의 개인적 판단과는 다른 의견을 낸다고 참모한테 역정을 내는 경우에 발생한다. 이런 때는 대책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다."
유시민의 '성깔'은 곧 이명박 대통령 주변으로 확대된다. 욕설 파문 등을 예로 들며 유인촌 장관을 "근자에 본 장관 가운데 제일 아무렇게나 '장관질'을 하는 사람"이라 하는가 하면, YS 시절 재야인사 영입과 후보 공천 과정에서 "수억 원 돈 가방과 지구당 사무실, 승용차와 비서까지 패키지로 장만해줬다 한다"면서 "그런 케이스"로 이재오 전 의원, 김문수 경기 지사, 심재철 의원 등을 지목한다.
조중동도 예외는 아니다. "매일 천만부 가까운 부수를 찍는 거대 보수신문들이 한목소리로 똑같은 '악플'을 5년 내내 달아대면 어느 대통령, 어떤 정부도 견디기 어렵다"며 과거 권력의 나팔수였던 언론이 '알바 언론'이었다면, 노무현 정부 시절 조중동은 '악플 언론'이라 칭한다. 지금은 '선플'로 표변했다는 비틀기도 빠지지 않는다.
노무현 정부 시절 비화 몇 가지도 눈길을 끈다. 애초 노무현 전 대통령의 복심은 '정동영 = 보건복지부 장관', '김근태 = 통일부 장관'이었다며, "소위 노인 폄하 발언 때문에 크게 상처 입은 점을 세심하게 배려했는데, 정동영 장관이 이 제안을 거부한 것은 지금 생각해도 매우 안타까운 일"이라 회고하고 있다. 임기 말 노 전 대통령이 유 전 장관에게 "결과적으로 계몽주의에 빠지는 오류를 저질렀던 것 같다"고 털어놨다는 것도 인상적이다.
그렇다면 노무현 정부를 유시민은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그는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는 시대적 과제에 잘 대응했지만 정치적으로는 성공하지 못했다"고 평가한다. 허나 "참여정부가 왼쪽 깜빡이를 켜고 우회전을 했다는 진보세력의 비판은 정확한 것이 아니"라며 "노무현과 이명박은 똑같은 보수 정치인이고 똑같은 신자유주의자"란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결국 "참여정부를 가운데 두고 보수, 진보 양쪽이 동시에 전개한 '담론 전쟁'의 결과를 보면, 진보세력은 사실상 빈손이었고 값진 전리품은 거의 모두 한나라당과 보수진영이 챙겨갔다"는 것이 유시민의 결론이다. 끝으로 유시민은 "정당개혁운동가로서 나는 지난 5년 동안 정말 비참한 실패를 겪었다. 이 실패 때문에 마음의 고통을 느낀 모든 분들에게 용서를 청하고 싶다"고 덧붙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