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장정년퇴임 교원들이 주로 받는 옥조근정훈장.
장호철
언제부터일까, 더 이상 평교사로 정년을 맞이하는 이들을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일은 드물어졌다. 젊은 교사들을 중심으로 의연하게 교단을 떠나는 이들 선배들을 기리기도 했다. 승진은 이제 일정 경력을 쌓은 교사들이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 과정이 아니라 선택이 된 것이라고 하면 지나칠까.
주변에는 여전히 승진을 꿈꾸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들은 자기 생활의 상당 부분을 승진을 위한 활동에 투자한다. 평정권자인 학교장의 근무평정은 1등급 수를 필수적으로 받아야 하고, 연구점수와 벽지 점수, 보직점수 등도 체계적으로 관리하여야 한다.
그런데 국외자의 눈으로 볼 때 그 길은 만만치 않은 길이다. 그들의 눈물겨운 노력은 때때로 동료들의 신망을 잃는 걸 감수해야 하고, 경쟁자와는 교장에 대한 충성 경쟁을 벌여야 한다. 점수를 위해서라면 교육의 주체로서 자기 정체성 따위를 내버려야 하는 사태에 이를 수도 있다.
그것이 이른바 '교포'들이 승진에 목을 매기 꺼리는 이유 중의 하나다. 그들은 승진을 포기하는 대신 '자유로운 삶'과 간섭받지 않는,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는 길을 선택한다. 시간이 갈수록 이런 이들이 늘어나는 추세임은 삶을 새롭게 바라보려는 가치관의 변화에서 비롯되는 듯하다.
교단에서의 삶의 성패는 결코 승진 여부로 갈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건 분명하다. 일반적인 관점에서라면 교감을 거쳐 교장을 지내고 퇴임하는 모양이 한결 좋아 보일지는 모르지만, 정작 현장을 지키는 교사들의 생각은 다른 것 같다.
승진 여부가 교단에서의 '성패'를 가르는 것은 아니다어쩌다 보니 나는 그간 여러 학교에서 정년을 맞은 선배 교사들을 보아왔다. 특히 교장의 퇴임은 모두 다섯 차례나 겪었다. 어떤 형식으로든 퇴임식을 마치고 떠나는 그들을 배웅하면서 느낀 것은 일종의 환멸이다. 유감스럽게도 나는 그들 중 단 한 사람도 마음으로 배웅하지 못했다. 그들이 떠나간 다음, 후배교사들이 벌이는 후일담은 결코 유쾌하지 않다.
재임 중에 그가 보였던 불합리와 억지, 편협하고 비상식적인 경영 관리, 탐욕으로 점철된 회계 관리 등으로 인해 그들은 마치 온갖 불합리와 비리의 반면교사처럼 비친다. 아무리 접고 들어가도 마음으로 경의를 바칠 만한 이를 겪지 못한 것은 나만의 불운일까. 돈 문제에 담백했던 이들은 그나마 후한 점수를 받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퇴임식을 마치고 그들을 떠나보내며 나는 불현듯 달려드는 환멸을 가눌 수 없었다. 아이들은커녕 후배 교사들로부터 단 한 뼘의 존경도 받지 못하고 떠나는 삶일진대, 그들이 받는 국가 훈장과 사십몇 년의 세월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그것은 그가 받아든 자기 삶의 성적표가 아니던가 말이다.
그러고도 세월이 많이 지났다. 10여 년 전에 비기면 터무니없는 관리자도 많이 줄긴 했다. 그러나 교사들이 모이는 자리에서 안줏감으로 떠오르는 각급학교의 관리자들 얘기를 들어보면 세월은 여전히 거기쯤에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언제쯤 내가 학교를 떠나게 될지는 알 수 없다. 정년까지 갈 것인지, 아니면 한두 해 일찍 떠나게 될는지는 아직도 결정하지 못했다. 그러나 두려운 것은 비록 평교사로 학교를 떠날지라도 나를 마음으로 배웅해 주는 후배 교사가 몇이나 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지난 적지 않은 세월 동안, 내가 쏟아낸 말들은 다시 부메랑이 되어 내 뒤통수로 꽂히지는 않을까…….
나이를 먹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저 세월 가기만 기다려도 생물학적인 나이야 한 살씩 더해지는 것이니까. 그러나 지혜로워지는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주책과 망발 없이 늙어가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새로 봄을 맞으면서 나는 문득 두 가지 사실을 은근히 꿈꾸어 본다. 교직을 마치기 전에 마음으로 배웅하고 싶은 교장, 교감을 한 분이라도 만나고 싶은 것이 하나요, 언제 어느 때 떠나더라도 한두 사람쯤, 후배 교사로부터 마음의 배웅을 받고 싶은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 소박한 바람도 쉬 이루어질 것 같지 않으니 불현듯 스산해지는 마음을 가누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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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이 넘어 입문한 <오마이뉴스> 뉴스 게릴라로 16년, 그 자취로 이미 절판된 단행본 <부역자들, 친일문인의 민낯>(인문서원)이 남았다. 몸과 마음의 부조화로 이어지는 노화의 길목에서 젖어 오는 투명한 슬픔으로 자신의 남루한 생애, 그 심연을 물끄러미 들여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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